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정말 못했어요. 겸손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으니, 숫자로 정확히 말할게요. 52명인 한 학급에서 뒤에서 5등 즉, 48등까지 해봤어요. 수학은 한 번호로만 찍어도 두 자릿수 점수는 나왔을 텐데 나름 양심의 가책을 느껴 푼다고 한 게 8점이었고요. 90년대 후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한 교실에 50여 명은 기본이어요. 당연히 담임선생님은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 혹은 말 안 듣는 문제아만 기억할 뿐, 이도 저도 아닌 나는 눈에 띄지 않았을 거예요.
‘예의 바르고 청소를 열심히 하나 성적이 부진해 늘 아쉬움.’
생활 통지표에는 위와 같은 문구로 채워졌어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이렇게 총 12년의 학창생활을 하면서 내게 따듯한 용기의 말을 건네주고, 비록 현실은 뒤에서 상위를 달리고 있지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건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난 이옥순 선생님뿐이어요. 반에서 조용했던 나는 유독 중국어 시간이 좋았어요. 선생님의 열정이 좋았거든요. 본인의 중국 유학 시절을 생생하게 들려줬고, 관련 책이나 물건을 가져와 우리의 오감을 자극했어요. 가뜩이나 한자(漢子)를 좋아한 내가 선생님까지 좋으니 중국어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고요.
다른 건 몰라도 중국어 과제를 할 때가 세상 가장 행복했어요. 교과서와 노트를 투명한 책 포장지로 쌌고,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한 기억이 나요. 선생님이 남기는 글귀도 한몫했어요.
“중국어를 예쁘게 잘 썼구나.”
“지니는 중국어 발음도 참 좋은 것 같아.”
“이번 기말고사도 100점 맞을 수 있지?”
반에서 48등인 내가 중국어만큼은 전교 10등 안에 들었어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선생님의 관심과 사랑에 중국어와 더 친해졌고 잘하고 싶었어요.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이 과연 명중했죠.
이옥순 선생님처럼 나를 변화시킨 말이 하나 더 있어요. 공부를 잘한 언니와는 달리 우등상장을 건네 드린 적은 없지만 부모님은 나를 그 누구보다 똑똑한 딸로 여기셨어요. 내 나이 서른 중반이 된 지금도 집에서 ‘똘똘이’로 불려요. 부모님 휴대폰에 나는 ‘똑똑한 막내딸’로 저장되어 있을 정도예요.
“똘이야, 어서 밥 먹어.”
“우리 똘이가 오늘은 왜 기분이 안 좋아?”
누가 들으면 어이없고 당황스럽겠지만, 이미 귀에 못이 박혀도 수천 개가 박혔기에 또 다른 내 이름 같아요.
“그런데 왜 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우리 막내딸은 똘똘하니까!”
“늘 실수만 하고 제대로 이뤄 놓은 것 하나 없는데…”
“무슨 소리야, 아직 때가 안 온 것뿐이지, 우리 딸은 분명 잘할 수 있어! 남들보다 늦은 건 없어. 그건 인간의 잣대잖아. 엄마 아빠는 항상 너를 응원해.”
세상의 스펙으로 보면 명함도 못 내밀지만 부모님 눈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딸인 거죠. 작가의 길을 걷고자 한 발 한 발 내딛을 수 있는 힘은 바로 두 분의 말 때문이에요. 말과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된다고 믿어요. 타고난 천재는 있어도 타고난 긍정은 없으니 수시로 노력을 해야죠.
말로 뱉은 것이 마침내 사실이 됐을 때 우리는 말이 씨가 된다,라고 하죠. 여기서 ‘씨’는 식물의 씨앗이 아니라 비유적인 의미로 어떤 일의 원인이나 근원을 뜻하고요. 무심코 했던 그 말이 어떤 일의 원인이나 근원이 되어 현실로 이뤄짐을 말하죠. 말과 생각하는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달아요.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씨가 되어 현실화가 돼요. 결국,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는 거죠.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은 자신감과 용기를 잃게 하고, 내면에 잠재된 재능과 능력을 파괴할 뿐이에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고스란히 삶의 방향으로 정착한다고 믿어요.
누구는 사는 대로 생각하고, 다른 누구는 생각하는 대로 살아요. 끌려가는 인생이 아닌, 주동적으로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해요. 생각의 한 끗 차이의 힘은 대단해요. 자살을 반대로 하면 ‘살자’가 되는 것처럼 지금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오늘과 내일을 넘어 미래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금의 모습은 과거에 자신이 내린 수많은 선택의 결과인 셈이죠. 혹시 지금까지는 아니었다면 이제부터라도 긍정 옆에 찰싹 붙어있는 건 어때요?
나는 오늘도 외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