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길을 열어요

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by 이지니


친한 H양의 추천으로 이지성 작가의 《스무 살, 절대 지지 않기를》이란 책을 만났어요. 책 제목에 박힌 ‘스무 살’이라는 단어가 올해 서른 중반이 된 내게 낯설게 다가왔죠. 스무 살이 지난 지 벌써 15년이나 된 지금,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은 덤이었고요. 하지만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블랙홀처럼 온전히 책 속으로 빠져들었어요.


‘꿈의 길을 간다는 것은 내 안의 부정적인 자아와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른다는 것을 의미해. (중략)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 하나, 지나간 일들을 떠올리지 말 것. 둘, 이미 일어난 일들을 후회하지 말 것. 셋, 바꿀 수 없는 것들을 아쉬워하지 말 것. (중략) 하나님께서는 날개를 가진 사람만 벼랑 끝으로 몬다. 왜냐하면, 벼랑 끝으로 떨어질 때라야 비로소 그가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내가 벼랑 아래로 추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십 대의 그 시간들, 사실은 날개를 펴고 날아가던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 날개는 도대체 몇 쌍이나 됐단 말인가요? 지우고 싶은 흔적이 결국 날개를 펴고 날아오른 시간이었다니… 소름과 함께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게 한 구절이에요. 그럴 수만 있다면 가위로 도려내고 싶은 과거가 왜 없겠어요. 후회되는 일들이 어디 한둘일까요 하지만 지난 시간을 뒤돌아 볼 필요는 없어요. 그 누구도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해 후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말아야 해요. 눈앞에 펼쳐질 미래를 신경 쓰기에도 모자란 시간이니까.



과거에 우유부단했고, 귀가 얇았던 나지만 자랑할 수 있는 하나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이에요. 작사 역시 그랬어요. 마음이 원하는 일이기에 결단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바로 전문학원에 등록했죠.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으니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어요. 가사가 없는 멜로디를 온종일 들으며 어떤 노랫말이 어울리지를 고민하는 일은 어느 것보다 설레고 행복했어요. 실제로 과제를 하면 선생님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하늘까지 치솟은 광대는 숨길 수 없었어요.


6개월째가 됐을 무렵, 통장에 빨간불이 들어왔어요. 더는 수업을 이어갈 수 없었죠. 수업을 가지 않는다고 해서 작사에 손을 뗀 것은 아녜요. 혼자 팝송이나 중국 음악을 들으며 어울리는 한글을 입히기도 해요. 2015년부터는 우쿨렐레라는 악기를 배우고 있어요. 제대로 작사를 배우면서 느낀 건, 작곡도 할 줄 알면 작업하기에 좋기 때문이에요. 중학교 때부터 혼자 흥얼흥얼 대며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터라 작곡 역시 꼭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긴 해요. 아직은 누구한테 보여줄 정도는 아니지만 내가 만든 노래를 들려줄 날이 머지않았음을 믿어요.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깬 나는 이메일이 확인하고 싶어 졌어요. 반쯤 뜬 눈으로 받은 메일을 누르는데…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졌어요. 가수 K 씨한테 메시지를 받은 거예요.


‘안녕하세요. 가수 K입니다. 지니 씨의 블로그를 보니 중국어를 좋아하고, 또 잘하시는 것 같아요. 다름이 아니라 제가 중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데 중국어로 된 가사가 필요합니다. 혹시 한글로 된 가사를 중국어로 바꿔주실 수 있나요? 물론 중국어 앨범을 낼 때, 작사란에 지니 씨 이름을 넣어드릴 것입니다.’


세상에! 이름만 들어도 알만 한 가수가 소속사를 통해서도 아니고 내게 직접 연락을 해온 거예요. 감사하게도 가끔씩 블로그에 중국 노래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올렸고, 전문학원에서 배운 적이 있기에 작업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세 곡의 노래를 의뢰했던 그에게 나는 두 곡을 해서 보냈어요.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괜찮아요. 작사가로 가는 길에 한 걸음 나아갔다는 자체만으로도 큰 기쁨이고 영광이니까.




“지니야, 우리 같이 좋은 프로그램에서 만나자!”


어릴 때부터 개그우먼이 되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탓인가요? 나 또한 연예인에 관심이 많아요. 스무 살 때는 개그우먼 송은이의 팬카페 회원이었어요. 당시에 열린 팬미팅에 참석한 나는 그녀에게 사인을 받고, 함께 사진도 찍었죠. 게다가 그녀의 절친인 배우 최강희 씨까지 만날 수 있었어요. 언니는 내게 위와 같은 글귀를 써 줬어요. KBS 개그맨 공채시험에 지원한다고 했더니 방송국에서 만나자는 글귀를 남긴 거예요. 15년이 지난 그 사인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는 믿어요. 저 문구가 그냥 쓰인 게 아님을. 아직은 모르지만 반드시 이유가 있음을.




대학교에 다닐 때 방청객 아르바이트와 영화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영화 <연애소설>에 엑스트라를 했을 때예요. 내가 맡은 역할(?)은 지나가는 여자1 이었어요. 주연 배우는 차태현, 손예진,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된 이은주 씨였는데 그들과 가까이에 있는 자체가 신기하고 기뻤어요.

뜨거운 태양이 들끓을 때 촬영이 시작됐고, 출연진과 스텝 모두는 살결이 타들어갈 듯 고생했어요. 3시간이 지나 겨우 한 장면이 끝났을 무렵, 갑자기 차태현 씨가 다가왔어요. “오래 기다렸지? 이제 밥 먹으러 간대. 같이 가자.” 그는 엑스트라인 나와 친구까지 챙겨줬어요. 화면을 통해 듣던 자상함이 실제 내 눈 앞에 드러나는 순간이었죠.


그날의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함께 사진을 찍었어요. 가끔 사진을 볼 때마다 그때의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흘러요. 사실 날이 더워서, 생각보다 급여가 적어서 가지 않으려 했어요. 하지만 안 좋은 결과를 생각하기보다 좋은 쪽으로 생각했어요. 모든 경험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날 만난 배우 차태현은 내게 꿈을 심어줬어요.

‘나도 저 배우처럼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언제나 겸손해야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지.’

이전 10화수백 번 외쳐도 질리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