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니 에세이 <아무도 널 탓하지 않아>
죽어라 결심과 후회만 반복하는
그럼에도 한 발 한 발 내딛어 보려는
소심하고 서툰 청춘들에게
책 겉표지에 작은 폰트로 적힌 세 줄의 카피가 나를 잡아끄네요. 김선경의 에세이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은 출간된 지 벌써 7년이 지났지만 스테디셀러답게 여전히 독자의 손에 닿고 있어요. 책이 출간된 2010년 늦가을, 당시 20대였던 나는 곧 맞이할 서른 살임에도 불구하고 먼일인 냥 책을 집지 않았어요. 심지어 제목에 꽂혀 몇 번을 만지작거렸음에도 말이에요. 아마도 서른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그 후로 7년이 지났고, 내 나이는 계란 한 판도 모자라 몇 알을 더 얻었어요. 그리고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이 책을 다시 만났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대한민국 청춘 20만 명에게 선택받은 이유를 봤어요. 저자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선뜻 말로 끄집어내기엔 멋쩍은 ‘그것’을 튀지 않게 선보여요. 읽는 내내 “어머, 나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혹은 “아, 서른이 다 지나기 전에 알아서 다행이야.”라는 혼잣말을 수없이 꺼냈죠. 책 표지에 적힌 것처럼 서른 살이 되는 후배들에게 주고 싶은 책임에 틀림없어요. 그녀는 책 속에서 이렇게 말해요.
‘나쁜 선택이 반드시 나쁜 결과를 맺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애초에 안전한 길, 위험한 길이란 없다. 어떤 선택을 했건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뿐이다. 그처럼 삶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김미경 기자는 뉴욕으로 날아갔으며, 서툰 영어에도 한국문화원에서 안내원으로, 도서관 사서로 분투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출발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즐겁고 유쾌하게 비겁하지 않게 살 수 있다.’라고.
고등학교를 졸업 후 지금까지 십 수년이 지났어요. 서른다섯 개가 넘는 일을 경험하면서 한 우물을 파지 못하는 나를 자학했고, 승진하는 지인들을 부러워했어요. 도대체 난 뭐가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때마다 견디기 힘들었죠. 늘 돈에 쫓기는 삶도 지긋지긋했고요. 그럼에도 감사한 건, 수많은 경험이 모여 꿈으로 가는 길로 인도했어요.
‘돈에 맞춰 일하면 직업이고, 돈을 넘어 일하면 소명이다. 직업으로 일하면 월급을 받고, 소명으로 일하면 선물을 받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김구 선생이 위 같은 말을 남겼어요. 돈이 아닌 소명을 봐야 함을 비로소 깨닫네요.
의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방청객 아르바이트, 레스토랑, 면세점, 방송작가, 중국어 교육업체, 중국어 통역과 번역일 등을 거치며 나는 성장했어요. 서른 여개가 넘는 직업이 지금의 나를 만든 거예요. 이 과정이 없었다면 글에 담을 이야기가 없을 것이고, 쓴다고 해도 속 빈 강정처럼 의미 없는 글자들의 나열이 되었을지 모르죠. 문뜩 지인과 나눈 이야기가 생각나요. 그녀는 마흔이 넘을 때까지 이렇다 할 풍랑 없는 삶을 살았대요. 인생의 파도를 글로만 접한 사람이래요.
“지니야, 난 네가 부럽다.”
“부러워요? 뭐가요?”
“너는 참 많은 경험을 한 것 같아.”
“음, 부정은 못하겠네요. 하하.”
“다른 것보다 서른 가지가 넘는 일을 했다며? 대단하다.”
“대단하긴요, 한 회사에 10여 년을 넘게 일한 언니도 만만치 않은데요?”
“하지만 그것뿐이잖아. 내가 왜 배우를 부러워하는지 아니? 연기를 하면서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 있잖아. 네가 그런 셈이잖아.”
“그럼 난 연기자의 삶을 라이브로 살아내고 있네요. 하하.”
지인의 말을 들으니 한 우물을 파지 못한 나를 부끄러워하고, 루저라 생각한 과거를 반성했어요. 누군가는 돈을 주고도 얻지 못할 경험을 나는 공짜로 받았으니까요. 결국 내가 겪은 일이 목표를 만들어줬어요. 돈만 쫒던 내가 이제는 소명을 좇으며 나아가게 된 거예요. 저자 정호승은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에 이렇게 말해요.
‘목표를 세우면 그 목표를 내가 따라가는 것 같지만 실은 그 목표가 나를 이끕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하려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형성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능력이란 가만히 있는데 미리 주어지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목표를 가질 때 잠재능력이 일깨워집니다. 저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시인이 되었습니다. 평생 시를 쓰면서 살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시키는 일. 내 심장이 하고 싶고,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것이야 말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이에요. 실력은 나중 문제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지금의 전문가들도 실수하고, 실패하던 신인의 시절이 있었잖아요. 서른다섯 개의 선물은 자존감이 낮은 나를 높이고, 더 사랑하게 만들었어요.
자꾸만 실패하고 있나요? 그건 실패가 아니에요. 몰라서 실수한 거지. 그리고 그 실수는 어마한 선물이 될 거예요. 그러니 절대 기죽지 말아요. 우리는 반드시 해낼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