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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May 26. 2022

싫어하던 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서울  |  집 앞

 5월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가 요 며칠 계속되고 있다. 해가 지날수록 여름이 길어지는 모양새다. 뚜벅이 여행자에게 여름은 내가 택한 고난을 즐기고, 이겨내고, 버텨내야만 하는 계절이다. 내리쬐는 볕은 허들을 넘는 달리기처럼 같은 길을 더 어렵게 걷게 만든다. 한 달 정도 더 지나면 당분간 여행은 어렵겠구나 아쉬움이 찾아드는 순간 창문 너머로 툭, 투둑, 투두둑, 투두둑 소리가 들리더니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진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유화처럼 선명하던 창 밖 세상의 색감은 금세 수채화가 되어 간다.

 작업 책상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면 계절의 변화를 시시각각 알아챌 수 있다. 열린 창문은 1년 내내 매일같이 변하는 그림이 되어 준다. 1년 3개월 정도 살고 있는 이곳은 어귀부터 언덕이 있는 곳이다. 덕분에 풍경은 수평이 아닌 수직이 되고, 시선은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 눈과 머리를 쉬고 싶으면 창문을 열어 수직의 풍경을 바라보곤 한다.


 이날은 재택근무를 하다 따가운 햇살이 문득 보고 싶어 시선을 창문으로 옮겼다. 바로 보이는 어느 집 앞 담벼락에 지금 봐야만 할 것 같은 탐스런 장미가 붉게 피어 있었다.

 줄기에 가시를 돋아내 꽃봉오리를 보호할 만큼 예쁘다고 생각한 적도, 향기가 매혹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왠지 카메라를 들고나가야 할 것 같아 상의만 갈아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를 들고 약간의 언덕을 올라 장미가 가득 피어있는 담벼락 아래로 나갔다.


 이렇게 예쁜 나를 봐달라는 듯 잔뜩 만개한 장미를 나도 모르는 사이 카메라 뷰 파인더로 보고 있었다. 셔터를 누른다. LCD로 결과물을 확인하고 구도를 바꿔 다시 셔터를 누른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요즘 오랫동안 갖고 있던 편견을 깨는 사건이 많아지다 보니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 실감된다. 전보다 성숙해졌구나, 시야가 깊어졌구나, 나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짧은 순간에 많은 감정이 지나간다.


 꽃을 피어내고 열매를 맺어내는 식물은 아름다움을 뽐낼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그마저 기간이 짧다. 사람은 삶도 길고 전성기가 언제 올 지 아무도 모른다. 식물을 보며 지금까지 살았던 내 삶에 전성기가 있었는지 생각해본다.

 어느새 소나기는 자리를 떠났고, 빗물이 내려앉은 나뭇잎은 싱둥했다. 비를 맞아 지면으로 떨어진 꽃잎을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싫어하던 꽃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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