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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n 26. 2022

여름 내음

서울 |  평창동 & 성북동 

 타는 목마름에 생기를 잃었던 식물에게 며칠 전 내린 비는 살아감에 대한 동기를 부여해준 듯 보였다. 메말랐던 흙은 흠뻑 맞은 비로 충분히 젖어 있었고, 젖은 땅 위로 피어난 식물에서 푸른 여름 내음이 퍼진다.

몇 년 만에 제약 없이 숨을 쉬고, 들숨을 따라 코 끝으로 들어오는 눅눅한 공기를 상쇄하는 초록의 나무와 잎새가 뿜어내는 내음은 반갑기 그지없다. 


 북한산 둘레길 6구간을 따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평창동의 한 조용한 골목. 작은 사찰 앞 주택에는 쨍한 주황빛의 나리꽃이 피어있었다. 평소 좋아하는 백합이 꽃다발 속이 아닌 길에 피어 있으니 괜히 반가워 사진으로 남겨본다. 꽃술마저 아름다웠던 이날의 백합은 기분을 고양시키기에 충분했다. 


 평창동, 부암동 일대는 산책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작은 사찰들을 볼 수 있다. 이곳 청련사도 그런 곳이다.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골목 끝에 위치한 청련사는 북한산 둘레길 6구간 평창마을길에 위치한 사찰이다. 아주 작은 사찰이지만 화려함은 남부럽지 않다. 노란 건물벽과 색색의 단청은 차분한 평창동의 분위기와 대비돼 더욱 화려해 보인다. 삼각산 중턱 즈음에 위치해 늦은 저녁에 소소히 야경을 보러 와도 괜찮을 것 같았다. 

 자리를 옮겨 성북동 길상사로 떠나본다. 나무의 품 속에 자리한 곳은 계절이 주는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점이 매력적이다. 길상사도 삼각산 끝자락에 위치한 곳이기에 마찬가지였다. 과거에 요정으로 쓰이던 건물이기에 다른 사찰과 매력이 전혀 다른 곳이었는데, 겨울에 찾았을 때는 유난히 이질감이 느껴졌고, 사찰이 주는 포근한 분위기 대신 건조한 분위기가 느껴졌었다. 겨울이 아닌 여름에는 처음 가봤는데 잎새가 풍성해진 나무는 화려함을 눌러주어 차분함을 주었고 곳곳에 피어난 능소화, 연꽃의 색감은 차분해진 분위기에서 약간의 활기를 입혀주는 좋은 포인트가 되었다. 연잎에 올라탄 물방울은 사랑스러웠다. 


 소문난 출사지답게 오늘도 출사를 오는 포토그래퍼들로 북적북적했다. 그들은 이곳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담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목 뒤로 선명히 보이는 흐르는 땀줄기를 열정의 근거로 삼았을 거라 지레짐작해본다. 


 사찰 경내에는 방문자에게 쉼을 주는 벤치가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만히 앉아 물길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여름 내음을 맡아본다. 습도가 높아 가만히 있어도 옷이 젖어오는 날씨였지만 불쾌하지 않았다. 길었던 재택근무가 끝나고 사무실의 먼지 냄새, 자동차의 매연 냄새에 지쳐있던 몸이 풀내음을 맡으며 충분히 휴식해서인 듯하다. 

 대기의 건조함, 차가움, 잎이 떨어진 마른 가지로 고난을 이겨내는 나무의 모습이 꼭 나처럼 느껴져 가장 좋아하게 된 계절과 꼭 반대의 모습을 하는 여름은, 매년 조금씩 더 이르게 찾아와 더 오랜 시간 머물러 온 기운을 다 빼놓고 도망간다. 더위를 많이 타지만 예민한 피부 탓에 되도록 긴소매의 옷을 입어 더위를 더욱 피할 길이 없어 여름이 오는 것이 반갑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사진을 취미 삼아 카메라를 들고 다녀보니 여름은 담을 것이 많은 심미(審美)의 계절이었다. 아직은 이런 심적 변화가 어색하지만 여름 내음을 맡으며 찾아오는 변화의 바람이 퍽 기분 좋아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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