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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길의 애정 Jun 04. 2022

여름 숲보다 싱그러운 너

서울 |  집 앞 

 어릴 때부터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었다.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기, 내 돈으로 노트북 사기, 신발장에 구두 10켤레 채워보기처럼 월급쟁이라면 몇 달 간의 노력을 기울이면 할 수 있는 일부터, 산 정상까지 등반해보기, 10km 걸어보기 외에도 약간의 노력으로도 손쉽게 달성할 수 있는 일들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바라지만 쉬이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소망'이 있는데,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일이다. 강아지, 고양이 등 자신의 반려동물과 함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다. 존재 자체가 행복이고, 인간관계와는 달리 조건 없이 언제나 옆에 있어주는 모습이 말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반려동물에겐 나밖에 없기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는 건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그들이 아프지 않도록, 굶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쾌적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마음을 쓰고 행동하며 '노력'하는 것이라고, 혹여나 아파도 제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하기 위해서는 수십 수백만 원에 달하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어야 한다고, 소위 말하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감'이라고 늘 생각해왔다.

 어린 나이부터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9 to 6는 일주일에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 간혹 생기는 약속과 회식, 출장은 반려동물을 더 외롭게 만들게 확실했다. 사람처럼 책을 보며, TV를 보며,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게 아니니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반려인을 오매불망 현관 앞에 앉아 엎드려 있을 반려동물을 생각하니 도저히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반려동물과의 삶은 훗날로 미뤄두고 있다.  

 대신 남자 친구의 반려견을 이따금씩 만나 함께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 천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릴까, 인형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까 생각하게 만드는 이 강아지의 이름은 바우. 보더콜리. 2017년 생의 청춘이다. 처음 바우를 보던 날이 기억난다. 늦은 저녁 시간 환기 미술관 근처에서 함께 산책을 했던 날이었다. 호수 위로 비치는 달빛처럼 밝게 빛나는 두 눈. 아주 작은 솜뭉치였던, 민들레 홀씨 같았던, 정전기가 일어난 것 같았던 보송보송한 털도 떠오른다. 짖는 소리도 꼭 병아리처럼 삐약삐약 아가의 소리를 내던 강아지였는데 벌써 이렇게 성견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는 꽤 깊은 친밀감이 생겼다. 차에 타면 자연스레 조수석으로 뛰어와 무릎에 앉고저 멀리서부터 나를 보면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좌우로 흔들며인사를 하면 얼굴을 핥는 등의 행동이 이를 방증한다. 

   이날은 내 사심이 가득 채워진 날이었다.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고, 누르고, 누른다. 고맙게도 잘 앉아있고, 잘 기다려주고, 잘 엎드리는 사랑스러운 이 생명체는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주변까지 환하게 만들어준다. 바우가 좋아하는 솔방울이 지천에 있다. 솔방울 놀이를 하고 싶다며 쳐다보는 눈빛은 마음속에 폭죽을 터뜨리게 한다. 훌쩍 커 어른이 된 바우도 놀이 앞에서는 아직 삐약이 시절의 어린 강아지 같다. 

 

 깊은 산속처럼 귀를 통해 자연을 느끼기는 어려웠지만 촉감으로, 시각으로 자연을 느끼게 한다. 바닥 가득 내려앉은 떨어진 솔잎은 폭신폭신 보드랍게 두 발을 감싸주고 기분마저 폭신폭신 편안하게 만들어주었고, 여름이라는 문턱을 넘어선 풀잎은 더욱 초록의 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여섯의 '시선'은 모두 다른 곳을 향했지만 셋의 '마음'은 같지 않았을까. "기분 좋다."

 아쉽게도 바우를 보내줘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여러 가족 구성원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는 바우의 표정은 오늘도 맑음이다. 오늘도 행복한 기억만 가져가기를. 앞으로도 행복한 기억만 할 수 있기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바우는 여름 숲보다 싱그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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