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필연 봉순이 언니
봉순이 언니를 읽고(作 공지영 1963)
몽실이 언니를 읽으려다가 봉순이 언니를 읽은 게 벌써 세 번째다. 이 정도면 봉순이 언니는 나와 인연을 넘어 필연인 것 같다.
몽실인지 봉순인지 미리 찾아봤으면 좋으련만
책의 내용마저도 헷갈려서 손에 잡히는 책부터 읽었다.
몽실이 언니를 읽고 싶은데 몽실이인지 봉순이인지 헷갈릴 때마다 내 눈앞에 가장 먼저 나타난 책은 늘 봉순이 언니였다.
몽실이 언니는 초등학생 때 이후로 보지를 못했는데, 봉순이 언니는 세 번씩이나 봤으니 곧 몽실이 언니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봉순이 언니 책 내용과 헷갈리지 않게 이렇게 기록을 남기니 말이다.
봉순언니의 삶은 우리 엄마를 생각나게 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삶을 하나 둘 이해하게 됐지만, 엄마가 살았던 시대를 알지 못해서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응어리처럼 남아 있었다. '꼭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나?' 하면서 말이다.
1960년대 시대 흐름 속에 누구는 부잣집 딸내미로 살아갈 때 누구는 어린 나이부터 부모와 떨어져 식모살이를 해야 했던 봉순이의 어린날의 삶이 아프고 슬펐다.
엄마의 시대가 이해가 됐고
엄마의 삶이 이해가 돼서
소리 없이 펑펑 울며 읽어 내려갔다.
우리 엄마는 부모님도 계시고 형제들도 있었지만 자식이 많아 집이 기운 10남매 중 9번째로 태어난 딸이었다.
열세 살부터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고,
직물공장의 공순이로 살았던 아이.
이런 일도 있었더랬다. 식모살이를 하던 어느 겨울에 주인집 연탄불이 꺼지게 했다면서 그날 밤 주인집에서 엄마가 자는 방을 걸어 잠가 놓고 연탄가스를 먹였다고 한다. 정말로 죽을뻔했다고 했다.
나에게는 처음부터 엄마로 시작한 사람이라서.. 엄마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을 못하고 살 때였다. 1960년대 그 시대가 그리고 가난이... 참 아프게 느껴졌다.
일찍이 부모품을 떠나 차디찬 세상살이를 겪으면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고아로 남의 집 식모살이를 했던 봉순이와 어린 우리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봉순이가 자기를 하대하는 세탁소 청년에게 밤중 남몰래 그를 만나며 마음을 주고 몸도 주었던 이유... 그렇게 운명 같은 사랑을 하는가 싶더니 곧 버림받고.. 19살에 8개월 되는 아이를 낙태해야만 했던 아픔...
그러다 시골 홀아비에게 시집가서 남의 아이를 기르던 봉순언니. 이제는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잘 사려나 희망을 품어봤던 봉순언니. 그 남편과 아들도 낳았지만 곧 지병으로 남편을 떠나보내게 되고...
아들은 시댁에서 거둬준다 했지만
봉순이는 또 혼자가 되고 말았다.
더 이상 짱이네 식모로 데리고 있기에도
골칫거리로 전락해버린 봉순언니..
짱이네가 끝내 혼자가 된 봉순이를
다시 식모로 거두지 않은 건 안타깝지만...
주인집에서 어린 시절부터 봐온 봉순이를 생각해서 시집도 보내주고, 결혼식 때 부모역할도 해주고, 산후조리도 해줬으면 할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한다.
봉순이가 세탁소 청년을 따라 도망가지만 않았었더라면...
봉순이가 억울하게 다이아몬드 도둑으로 몰리지만 않았었더라면...
지금쯤 자식들 거느리며 사랑하는 남편 품 안에
편히 쉬고 있지는 않았을까 생각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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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가 지하철에서 만났던 냄새나는 할머니는 정말 봉순이 언니였을까?
나는 봉순이 언니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연히 비슷한 사람을 본 거였으면 좋겠다.
우여곡절 많은 한 여자의 인생이었지만
이제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사랑받으면서
여름이면 시원한 마루에 눕고, 겨울이면 따뜻한 이불 속에 들어가
편히 쉼을 하는 봉순이 언니가 됐으면 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냐.
고아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냐.
결국에 결말만은 좋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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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봉순언니도 사연 많은 인생을 살았지만,
결국에는 좋은 남편 만나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이제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살게 된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