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관계를 정리하고
브런치 책방으로 간다.

사람들 속에서 글을 쓴다.

by han


제루샤 애벗이 키다리 아저씨를 궁금해하듯, 나의 소중한 독자들 또한 나를 상상할 것이다. (잘 생겼나? 온화한가? 거친가? 정말 요리는 잘하나? 왜 그 나이에 이런 글을 쓸까? 촌에서 혼자 지내면 심심하지 않나? 등등) 바람이 있다면, 이왕지사 머릿속으로 혼자 생각하는 것, 가급적 최대한 멋진 모습으로 상상해 줬으면 한다. 그것이 본인들 정신건강에 살짝 이롭다.


궁금해 하기는 이곳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밭에서 일할 때 빼고는 농막에 들어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과 담쌓고 사는 사람처럼 보였는지, 가끔은 귀농 모임에 나오라는 소리도 한다. 며칠 전, 추석을 서울 집에서 보내려 올라가는 길이였다. 휴게소에서 아는 동생을 만났다. 애들도 서울로 올라가고, 연고도 없고, 혼자 심심하지 않냐는 등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졸지에 나를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으로 둔갑시켰다. 결론은 귀농 모임에 나오란 소리다. 그러나 나의 대답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됐다, 동네 사람 하고도 잘 못 지내는데 거기까지 가서 패거리 짓고 싶지 않다.”


이렇게 무 자르듯 딱 잘라 버리고 만다. 모임이란 같은 것을 공유하는 자리다. 농사는 귀농자만 짓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은 모두가 농사를 짓는다. 굳이 그런 자리까지 나가서 편 가르기 하고 싶지 않다. 권리 문제와 직결된 탈북자나 이민자 모임과는 성격이 다르다. 좁은 땅덩어리 남북으로 나눠진 것도 억울한데 지연, 혈연, 학연이란 담장을 죄의식 없이 쌓다 못해, 이젠 아파트 평수와 소득으로 나눈다. 별 해괴망측한 꼴 다 보겠다. 그런데 나는 정말 동네 사람하고 잘 지내지 못한다. 그냥 데면데면한다.


그럼 뭐 하고 지낼까. 난 온종일 새롭게 맺은 많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바쁘게 살아간다. 단지 만남의 방식이 다를 뿐이다. 한낮 땡볕 아래서 일할 때도, 농막 작은 창 너머로 고요한 별빛이 일렁일 때도 브런치의 새 글이 올라왔다는 알람이 울린다. 내가 구독하는 작가들 대부분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특히 젊은 층과 30, 40대 주부들이 많다. 사랑, 이별, 육아, 직장, 여행, 부모에 관한 왁자지껄하고 아옹다옹한 삶의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 시절을 지나온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소재지만, 그 이야기들 하나하나에 빠져든다.


내가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나 또한 글 쓰는 브런치 작가이고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단점, 즉 남자이자 나이가 든 중년이기 때문이다. 작가란 나이와 성별의 경계를 넘나들어야 하는 존재다. 나와 다른 존재를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만의 생각과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다르다. 그 다른 점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쓴 글을 밖으로 내보이지 않아야 한다. 내보인다 한들, 공감은커녕 아무도 읽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브런치 책방의 글들은 훌륭하고 완벽한 글쓰기 교과서나 다름없다. 다듬어지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는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같은 소설을 쓰려면 노인과 바다를 여러 번 탐독하는 것이 아니라 담배 연기 자욱하고 땀내 나는 바닷가 선술집으로 가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글 꽤 쓴다는 대부분 사람은 전망 좋은 바닷가 커피숍으로 간다. 물론 커피에 대해 쓰려고 하면 커피숍으로 가는 게 맞긴 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술 취한 사내들의 끈적한 시선도, 입술에 새빨간 루주를 칠한 한물간 여인의 안타까운 삶도 없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인지, 나의 말은‘나랏말싸미’처럼 구어체가 됐다. 나와 비슷한 나이 때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만 읽는 젊은 독자의 입장에도 그럴까, 흘러간 옛 노랫가락처럼 들리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난 젊은 작가들 글을 꼼꼼히 읽으며 당돌하고 상큼한 표현을 적당히 배운다. 글은 이렇게 아우성치고 안달복달하며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써야 한다. 그래서 난 매일 브런치 책방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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