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며느리 그리고 아내
추석이 다가온다. 전업주부인 그녀는 진작부터 머리는 아프고, 가슴은 답답하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피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피할 구석이 없다. 형제들 모두 모이는데 자신만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음은 내키지 않는데, 후폭풍을 감당할 수 없어 억지로 나선다. 마음 따로 몸 따로다. 외동딸이라도 시댁부터 가야 한다. 이것이 2019년, 이 시대의 관습이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녀의 시댁은 대전에 있고 친정은 같은 서울에 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남편에게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뒷자리에 타고 있는 초등 4학년, 2학년 남매는 분위기 파악하고 스마트 폰 보면서 지들끼리 조용히 놀고 있다. 저 앞, 차량이 줄지어 정체되어 있는 톨게이트가 헬게이트로 보인다. 차는 왜 이리 막히는지 짜증이 솟구친다. 그렇다고 해서 빨리 가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무엇에라도 탓을 돌려야 살 것 같다. 휴게소마다 걸어놓은 현수막에는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쓰여있다. ‘누가?’ ‘어떻게?’ 즐겁게 보내라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약 올리는 것 같은 그 웰빙스런 문구만 봐도 신경이 곤두서고 울화통이 터진다.
슬쩍슬쩍 그녀의 표정을 살핀 남편이 말을 건네려 한다. 무슨 말이 나올지 뻔히 알고 있다. 그 맨트는 매번 변하지 않는다. 역시나 ‘너무 힘들지 않게 대충 요령껏 알아서 해’라고 한다. 정말이지 앞뒤 꽉 막힌, 이 미련 곰탱이 같은 인간은 눈치가 바닥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남편은, 명절증후군은 남의 일일 뿐, 자신의 착한 부모와 형제들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음식 장만하는 게 힘들고, 시댁이 낯설고 불편해서 그러는 줄로 알고 있다. 본인에게는 혈육이지만, 자신의 아내에게는 법적으로 맺어진 부모 형제일 뿐이라는 기본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는 고지식한 사람이다.
시댁에 도착했다. 반갑게 맞으면서 바라본 며느리의 웃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 보인다. 시어머니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본다. 차를 오래 타고 와서 멀미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여름 휴가 때, 동해안 바닷가 갈 때도 나지 않던 멀미는 시댁만 방문하면 난다. 시어머니가 방에서 좀 누웠다 나오라고 하지만 며느리는 절대로 딸이 될 수 없다. 바로 옷을 갈아입고 주방으로 직행한다, 예상한 대로 명절 음식 재료들이 사방에 수북이 담겨있다. ‘제가 뭐부터 할까요?’라고 물어본다.
저녁 식사와 설거지를 끝냈다. 시어머니는 손윗동서가 미리 택배로 보내온 한우 갈비를 손질하고 그녀는 전을 부치고 있다. 밤 9시경이 되자 동서들이 온다. 각자들 준비해온 선물을 풀어놓는다. 고급 한과, 고가의 영양제, 브랜드 옷 그리고 제법 되는 용돈이다. 자신들이 내놓은 얄팍한 봉투와 비교된다. 게다가 손아랫동서는 애교도 많다. 시부모가 껌벅 넘어간다. 그녀의 아이들인 초등학생 조카들에게도 십만 원씩 용돈을 준다. 자신은 큰 애들에게는 오만 원, 작은 애들은 삼만 원씩 주려고 신권으로 바꿔왔는데 비교가 된다. 카카오 뱅크를 쓴다면 모를까, 얼굴이 화끈거리고 손 부끄러워 내밀기도 뭐하다. 형제들 간에 경제력 차이로 인한 모멸감마저 느낀다. 그래도 꾹꾹 참으면서 애써 태연한 척한다.
그때, 시어머니는 제대로 속 뒤집어지는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늦게 온 동서들 배고플 테니 밥 차리란 소리다, 이럴 땐, 빨리 자리를 벋어나 주방으로 가는 게 상책이다. 계속 그 자리에서 뭉그적거리다간 끓어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붉으락푸르락 해진 얼굴로 눈물이라도 떨구면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그런데도 남편은 아내의 초라해진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형제들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 무표정하게 가만히 듣고만 있다. 하긴, 안다고 해서 별 뾰족한 수도 없다. 부모에게 입 바른 소리 하는 법은 학교나 사회에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명절이 지나고 법원으로 가는 부부가 많다고 하던데, 어린 자식들도 눈에 보이지 않고 당장 달려가고 싶은 심정이다.
다음날, 점심 먹은 설거지를 서둘러 끝내고 나왔다.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하지만 조금 있으면 시누이들도 온다. 시어머니가 배웅하며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하지만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지긋지긋 한 곳에서 빨리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신기하게도 시댁 갈 때는 멀미가 났는데 올 때는 전혀 나지 않는다. 한결 기분이 나아져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말도 건넨다. 친정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철썩 안긴다. 그녀는 자신을 기다렸을 엄마 아빠를 보자 괜히 코끝이 찡해진다. 선물이라고는 회사에서 받은 참치 세트와 동네 마트에서 산 식용유 세트밖에 없다. 명절 때 마다 그녀가 남편에게 하는 말이 있다. 친정은 식구가 없으니 따로 선물 준비할 필요 없다는 말이다. 외벌이 남편의 월급만 바라보고 사는 팍팍한 살림이다. 조금이라도 아끼며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여지없이 쓰라렸다.
장모는 오로지 사위다. ‘자네는 피곤한데 방에 들어가서 눈 좀 붙여’라고 한다. 그녀의 남편은 편안한 말투로 ‘네’ 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조금 후, 방으로 사라졌다. 정말 잠자려고 들어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이 얄밉고 뻔뻔하다 못해 극악무도해 보인다. 자신은 시댁에서 쉬지도 못하고 자존심 구겨가며 일만 하다 왔다. 그러면 최소한, 오래간만에 처가에 왔으면 장인과 말 상대를 해주던 술을 마주하든 간에 어울리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저렇게 배려심 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인간과 평생 같이 살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 온다. 맘에 드는 구석이라곤 한 군데도 없다. 시댁에 있을 때처럼 오만가지 생각이 다시 든다. 그중에는 법원으로 직행하는 것도 당연히 포함돼있다. 그런데도 엄마는 이것저것 유난히 많이도 준비했다. 명절 음식뿐 아니라 주로 사위가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저런 사람이 뭐가 예뻐서 이렇게나 많이 했냐고 타박하려는 찰나, 그녀의 엄마는 ‘네 신랑 같은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다’고 딱 잘라 말한다. 순간 말문이 막혔지만, 남편이 얼마 전에 와서 용돈을 주고 갔다는 이어지는 말에 살짝 감동한다. 이젠 밉지는 않다.
저녁을 다 차리자, 때마침 남편이 일어나 방에서 나온다. 장인과 몇 잔의 반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남편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자신은 형제도 많고 본가도 큰 집이 아니라서 괜찮다며, 다음 명절부터는 이곳에서 보내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명절에 내려가서 부모님에 말씀드렸고, 본가는 명절 전, 1박 2일로 다녀오겠다’는 말이다.
그녀는 흥분으로 울컥 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었다. 눈자위가 붉어지고 잘생긴 남편이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의 엄마와 아빠도 마찬가지다. 결혼 전, 작은 출판사에 다니다 큰 아이를 임신하고 그만두었다. 손윗동서는 교사고 손아랫동서는 대기업에 다닌다. 그래서 남들 보기엔 시간 많아 보이는, 전업주부이자 외동딸인 자신이 항상 앞서서 일했다. 언젠가 시아버지 생신 전날에는, 남편이 바빠서 그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KTX를 타고 간 적도 있다. 시댁만 가면 자존심 상하고 부엌데기가 된 기분으로 지냈다. 남편은 그런 아내를 위해 과감히 관습을 거부한 것이다. 정말 세상에 둘도 없이 믿음직하고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 '그동안 수고했다’는 시어머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았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울먹이며 자신의 남자를 쳐다본다.
사람이 많이 다니면 그게 길이 되는 것처럼 관습도 그렇다. 괜한 고집 피우지 말고 세월에 맞춰 유연하게 살자. 추석이 다가온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모두, 불편한 추석이지만 그래도 잘 버티기 바라는 마음에서 소설도 아닌 그렇다고 수필도 아닌 소필(소설+수필)을 써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