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우리는 소통을 한다
20대에는 도시의 불빛이 좋았고, 30대에는 나도 그 불빛의 그 일부가 됐다. 그리고 40대에는 미련 없이 뒤돌아섰다. 그 후론, 주변의 사람은 사라졌고, 머리는 한가해졌고, 몸은 땀나게 바빠졌다. 사람들이 ’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냥 불편한 것을 마다하고 살다 보니 그와 비슷해졌을 뿐이다.
이곳도 도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빛이 있다. 차이점이라면, 사람이 만든 불빛이 아니라 하늘 만들어낸 빛이다. 은하수가 아스라하게 펼쳐지고 푸른 밤하늘에 박힌 듯 반짝인다. 그 별빛 사이로 빨간 불빛이 수시로 반짝이며 지나간다. 김포와 인천 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다.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군가 두발을 땅에 딛고 고개 들어 자신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만, 난 분명히 그들을 보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바쁘게 살아간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외딴 산골에서 농사짓고 살다 보니, 어떨 때는 무인도에 표류한 게 아닌지 하는 재미난 상상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동안 쓴 글들은 모두 전지적 농부의 시점이 아니란 것이다.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에 감탄하고 텃밭에 소복이 올라온 상추나 열린 옥수수를 이웃과 나눔 한다는 내용은 하나도 없다. 유유자적한 이야기는커녕 오히려 도발적이다. 에세이라는 명칭으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지만, 실제로는 꽁꽁 감추어둔 뾰족하고 날카로운 마음이다. 누군가는 찔리고 베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 줄 알면서도 거침없이 내보이는 것을 보면, 나는 참 못된 심보를 지닌 사람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찔리고 베일 분류의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글은 읽지 않는다. 그들은 변화하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알량한 권위가 손상될까 싶어, 억지로 관습을 따지고 거기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전혀 관심도 없는데 괜히 나 혼자 신경 썼다.
처음 몇 편의 글은, 무인도에서 병 속에 담아 보내는 마음이었다. 브런치의 많은 글 중, 누군가 발견했으면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런 독한 글에 누가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줄까 싶기도 했다. 막상 내보이고 나니, 웬걸 ‘좋아요’가 눌러지고 댓글이 달렸다. 대책 없이 아무에게나 보낸 병 속의 편지를 발견하고 응답한 것이다. 그중에는 화가도 있었다. 그 젊은 화가는 매번 나의 글을 읽어주고 댓글 달아줬다. 나 또한 그 화가의 글과 그림을 보러 갔다. 문장은 기막힐 정도로 간결하고 그림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줍게 내보이고 있었다. 그 화가의 글과 그림에서 나의 지나간 과거가 겹쳐 보였다. 키워준 부모와 형제들에게조차 잘 보이기 위해서 착한 아이로 밖에 살 수 없었던, 서류상 가족이란 사람들이 알듯 모를 듯 가한 비이성적 폭력이다. 난 그 화가의 글과 그림에 흠뻑 빠져들었고 그렇게 우리는 본 적도 없음에도 아무 사이도 아닌 친구가 됐다. 이렇게 만나야 될 사람들은 아무 곳에 서있어도 서로를 알아보고 공간과 세대의 경계를 넘어 만난다.
추석 전에, 그 젊은 화가 친구가 이벤트를 했다. 구독자에게 자신이 그린 작품 엽서를 선물해 주겠다는 수줍은 이벤트였다. 얼마나 수줍어하는 사람인지 그 친구의 글에서 느껴졌다. 원하는 사람은 메일로 주소를 보내 달라고 했다. 난 신청하겠다고 제일 먼저 댓글을 썼고 바로 메일을 보냈다. 내가 지내는 농막은 앞에 밭이 있고 길이 없다. 사람들 기웃거리는 게 싫어 일부러 길을 내지 않았다. 대부분의 우편물은 길옆에 세워둔 트랙터 문짝에 꼽아 놓고 간다. 그러면 이슬도 맞고 비도 맞아 구겨진다. 어차피 오는 거라곤 자동 이체된 고지서밖에 없다. 그러나 그 친구가 보내준다는 우편물은 다르게 취급해야 했다. 수시로 나가서 왔나 안 왔나 확인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그 친구의 이벤트 글에는 모두 잘 받았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조금은 섭섭했다.
그러던 중, 혹시 이 메일 주소를 잘 못 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보니 역시나 ‘.....@gmail.com을 ‘....@gmil’로 썼다. 잠시나마 섭섭해했던 내가 미안했다. 다시 메일을 보냈다. 이번에는 리턴 메일이 왔다. 없는 주소라고 했다. ‘... rn....’을 ‘... rm....’으로 썼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메일을 보냈다. 아마, 그 친구는 나보다 더 섭섭해했지 않았을까 싶다. 보내 달라고 하면서 무성의하게 받는 주소를 보내지 않았으니 말이다. 어쩜, 내가 꼭 받고 싶었던 심정만큼 나에게 제일 먼저 보내주고 싶지 않았을까.
그 친구는 나의 메일을 받자마자, 자신도 내게 메일이 오지 않아 의아해했다며 보내준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우편으로 부쳤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급하게 서울로 올라올 일이 생겼다, 그리고 서울에서 앞으로 두 달 이상을 머물러야 했다. 급한 데로, 우리 동네 담당 우편 배달원에게 전화했다. 받자마자 서울 집으로 다시 보내달란 소리였다. 우편 배달원은 흔쾌히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며, 다음 날, 받은 우편물을 보냈다는 증명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등기로 보냈으면 어제(27일) 금요일에 도착해야 했지만 오지 않았다. 강서 우체국에 전화해서 알아보니 나에게 온 등기가 없다고 했다. 일반 우편으로 보낸 것이다. 마음은 한시바삐 받고 싶은데 상황이 이상하게 꼬여갔다. 어릴 때, 소풍 가는 날짜 기다리듯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두 밤은 더 자야 받아 볼 수 있다.
내가 목 빠지게 오매불망 기다리는 선물을 보내준 화가는 브런치 작가 ‘아무 누나 amournuna’라 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한 번쯤 그 친구의 글을 읽어보고 그림을 감상했으면 한다. 간결한 문체와 자신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 작품에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졸라서라도 작품 하나씩 사기 바란다. 그것이 재산 증식하는 데 있어 가장 현명한 투자다. 뭐, 친해지면 그냥 줄 수도 있을 것도 같지만 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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