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일간의 워킹홀리데이.

사람도 쌓이고, 글도 쌓이고, 돈도 쌓인다

by han


'사는 그날까지, 육체는 노동을 기억하고 마음은 사람을 감내하며 살았던 아빠로 남고 싶다. 그렇다면 내 아이들도 세상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 속에서 즐기며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해에 비해, 유난히 이른 추석을 서울 집에서 보냈다. 다시 산골로 내려오면서 쓸모없는 고민을 했다. 농사 때문이다. 난 남들처럼 이것저것 다양하게 심지 않고 콩만 심는다. 콩의 특성상, 적지 않은 면적을 재배하면 심기, 추비, 수확 등 대부분의 작업을 기계를 이용해 혼자 할 수 있어서다. 문제는, 콤바인 수확 작업을 하려면 콩 꼬투리가 바싹 마른 상태가 되는 11월 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콩이 잘 털리고 수분 함량이 낮아 제값을 받을 수 있다. 결국 9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할 일이 없다. 봄철 농번기 때라면 남의 집 밭 트랙터로 갈아주고 돈이라도 번다고 하지만 가을은 그럴 수도 없다. 우두커니 먼 산 바라보고 세월만 보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 집에는 가고 싶지는 않았다. 가봐야 마땅히 할 일도 없고, 잠도 안 오고, 답답해서다. 촌에선 문만 열고 나가면 사방이 훤하게 뚫려있다. 가끔은 포항 치과를 간다는 핑계로 죽도 시장 통의 북적거리는 사람도, 바다도 보러 갔었다. 그러나 두 달 반(80일)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치과 진료는 벌써 끝났다, 한동안 고민을 하자 반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작가로서 재충전의 기회도 삼고 싶은 마음에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우선 서울 집이 있는 공항동으로 다시 올라왔다. 그리고 인터넷을 뒤져 물색하기 시작했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냈다.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유럽, 호주, 태평양 섬 등이 아니다. 젊은 날 웬만한 곳들은 가봤다. 내가 찾아낸 곳은 서울과 김포시 경계에 위치한 택배 물류 단지다. 그곳에는 많은 물류회사들이 몰려 있다. 주로, 주 3회,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근무하고 수시로 사람을 뽑는다. 야간에 작업하는 워킹홀리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단지 국내에서, 그것도 집에서 차를 몰고 10분 거리로 출퇴근한다는 게 다를 뿐이다. 일하면서 영어를 배우나, 일하면서 타인의 삶을 알아가나 마찬가지다. 그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벼운 설렘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글에서도 언급한 적 있다. ‘도시 사람은 한적한 곳을 찾아가고, 나처럼 외딴곳에 지내면 사람 많은 곳을 찾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라고.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냐고 해도, 특별한 기술을 가진 게 없기에 그런 일 밖에는 할 게 없다. 오히려 십여 년간 농사를 지으며 내 몸은 그 정도의 노동은 우습게 여길 정도로 이미 적응되었다. 더욱이 난,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차별된 시선을 보내는 이 사회 한심스러운 체면 문화는 철저히 무시하고 사는 타입이다. 내가 농부가 됐을 때도 그랬다. 왜 그런 힘든 일을 하려고 하냐고 했다. 여기서 ‘그런 힘든 일’이란 말속의 감추어진 뜻은 다르다. 육체노동은 천하다는 것이다. 참 이상하다, 남의 것을 훔치는 저질스런 것이 아님에도 품격의 높고 낮음을 따진다. 저 좋아서 하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하던 본인이 나름 것 선택한 일이다. 당신들에겐 그럴 권리가 없다. 설사 품격 높은 당신들의 생각대로 따진다 한들, 농부나 택배 분류 알바나 거기서 거기다. 그럼 반대로 내가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오뉴월 땡볕 아래 땀을 비 오듯 흘리며 그것이 아니라고 세상과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소리쳐본 적이 있냐고 말이다. 아마 있었다손 치더라도 기억 저편에 있는 것을 일부러 끄집어낼 정도로 멀어졌을 것이다. 당신들은 늙어 가고 나는 나이 들어간다. 이것이 당신들과 나의 차이다. 손과 팔뚝이 자잘한 상처로 덧 입혀지고 거칠어질수록 마음은 외려 반 비래 해갔다. 난 아직도 뜨거운 숨을 내뿜고 산다.


그리고 첫 출근을 했다. 커다란 실내에는 인원 점검과 주의 사항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남녀가 반반씩 섞여 있는 게 얼추 백 명도 넘어 보였다. 주로 젊은 층이지만 40, 50대 사람들도 상당했다. 관찰자 입장에서, 표시 내지 않고 있는 둥 없는 둥 하면서 말소리에 귀 기울이고 표정을 살폈다. 그들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작가의 못난 이기심이었다. 젊은 층은 해맑고, 주부들은 웃으며 이야기하고, 40.50대 남자들은 유독 말수가 적고 어둡다. 전후 사정을 듣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렇게 작가는, 저마다의 사연을 속으로 감내하고 살아야 하는 존재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단순했고 썩 할 만했다.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말이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처럼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택배 상자가 줄줄이 타고 와 구역별로 나누어진, 흡사 아파트 놀이터의 달팽이 미끄럼틀같이 생긴 통로를 따라 쏟아진다. 한 조에 5~6명이 작업한다. 여자들이 말할 틈도 없이 허겁지겁 포스로 바코드를 찍고 나면, 남자들은 라벨 번호에 맞춰 준비된 포대에 담고 묶어서 커다란 철재 케리어에 쌓는 일이다. 관리자가 지켜서 있지 않음에도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다. 조금만 딴청을 피워도 미끄럼틀 위에 택배 박스들이 꺼내 달라고 아우성치듯 대책 없이 쌓여서다. 누군지 정말 영악하게도 고안했다. 이런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은 신앙심이 바다처럼 깊어도 절대 천국은 갈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둘러보면, 일하는 모습들이 참으로 엉성하고 서툴러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은 육체노동에 단련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면 다음번에 나오지 않아도 되고 아무 때나 다시 나와도 된다.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단순히 의지력이 있니 없니 하는 문제가 아니다. 버틴다 해서 몸만 상하지 돈 더 주지 않는다. 내 관점에 본다면, 저렇게 포대를 들면 허리가 삐끗하고, 어정쩡하게 올리면 등에 담이 들리고, 무릎을 굽히면 관절이 나간다. 요령을 알려주고 싶어도 조용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금방 익숙해지지도 않을뿐더러 자칫 잘못하면 자존심만 상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나면 10분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진다. 밖으로 나가면 커피와 음료 자판기가 설치된 휴식공간이 있다. 남녀와 연령을 구분하지 않고 거부감 없이 모여서 커피고 뽑아 마시고 담배도 태운다.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같아졌다. 세상도 이처럼 같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300원짜리 자판기 커피를 뽑았다. 스타벅스의 푸림 프라푸치노는 맛있다. 하지만, 땀 흘린 후 차가운 밤공기 속에 마시는 달달한 싸구려 자판기 커피에 감히 비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난 5번을 꼬박 나가서 65만 원을 벌었다. 그러고 보면 돈도 참 잘 번다. 80일간의 여행에서 돌아오면 사람도 쌓이고, 글도 쌓이고, 돈도 쌓일 것 같다. 이것이 내가 사람들 사이로 여행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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