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장 밖 세상의 자유로움.

자유의지란

by han


‘정말 자유로워 보여요, 부러워요,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요,‘


내가 많이 듣는 소리다. 외딴곳, 6평도 안 되는 컨테이너 오두막에 산다. 뭐가 그리 부러운지 알 수가 없다. 그 작은 공간은 작가의 작업실 겸 농부의 거처고 꿈꾸는 장소로 사용된다. 거기에는 모든 것이 다 있다. 침대, 책꽂이, 테이블, 싱크대, 욕실까지, 어디든 가려고 하면 행거에서 옷걸이 채 후루룩 걷어 차량 뒷자리에 싣고 노트북을 챙겨 떠나면 된다. 옷가지라고 해봐야 별거 없다. 청바지 네 벌과 웃옷들이 전부다. 하긴, 꽤 자유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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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움에,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것은 마음뿐이지 결코 실천에 옮기는 사람 또한 없다. 막상 하려고 하면 두렵다, 어쩌다 용기백배해서 한적한 곳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도, 나처럼은 불가능하다. TV도 없고 폰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울리는 날 보다 울리지 않는 날이 더 많은 삶이라니, 몇 달만 지나면 자유로움은 곧 외로움으로 바뀐다. 오기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차츰, 이러다 고독사 하는 것 아닌지 하는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것은 겉으로 나타난 표상만을 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것은 ‘자유’라는 것을 공간과 장소의 문제로 받아들여서다. 난 서울에 있으나 영양 산골에 있으나 생활의 방식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폰은 울리지 않고, 집 앞 김포공항 공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주로 음악을 듣고, 잠깐잠깐 브런치의 올라온 글을 읽고, 벤치에 앉아 생각한다. 척 보기에도, 오갈 곳 마땅치 않은 중년의 백수다. 그런 내가 얼마나 처량하고 무료해 보였는지 동네 사람이 음악회를 함께 가자고 한 적도 있다. 그가 나를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농사짓고, 글 쓰고, 요즘은 일주일에 2~3회 야간에 택배 물류 아르바이트하는지는 절대로 알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직업이 세 가지씩이나 된다.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빠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현실은 정 반대다.


그렇다면 이런 썰렁한 여유로움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틀에 박힌 타인의 시선과 관습화 된 집단 사고방식으로부터의 자유다. 작게 살아도 나만 편하면 된다. 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는 순간 그것들을 장식할 공간도 지켜야 할 마음도 사라졌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의례적으로 밥 먹었냐 물어보고, 한번 만나자는 영혼 없고 어정쩡한 관계는 끊고, 끊어졌다. 그런 관계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가중시킨다. 그래서 ‘대중 속의 고독’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옥죄고 있는 집단 사고방식으로부터의 자유다. 사람들은 ‘이게 아닌데?’ 하면서도 관습과 사회 저변에 깔린 불합리한 문화에 억지로 복종한다. 사회는 그것을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 말하고 난 ‘철장’이라 말한다. 결국, 이 사회의 약자들은 죽지 못해 살거나 스스로 종속됨을 미풍양속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철장이 있다. 관습의 철장, 화려한 철장, 고상한 철장, 이국의 철장, 지식의 철장 등이다. 그런 철장들끼리 교류하고 뽐내고 상하를 나누지만, 내 눈엔 똑같은 철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더 좋은 철창에 갇히기만을 원한다. 마음은 자유로운 바깥세상을 동경하고 머리는 이율배반적으로 통제받는 철장 속이 더 안전하다고 느껴서다. 그러면서 현실과 이상은 다르다고 변명한다. 그러나 세상은 철장 속에 갇혀있는 자들이 만들어가고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다. 철장에서 벗어난 도전적이고 모험심 가득한 방랑자들이 만들어 내고 이끌어간다. 사람이 만든 유형무형의 그 어떤 것도, 앞서 살았던 방랑자들의 손과 생각을 거치지 않은 결과물은 없다.


자유로웠고 자신의 삶을 살았던 그들처럼 나 또한 오래전에 철장에서 나왔다. 뭐, 그들처럼 대단한 것이라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냥 나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이성과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예의가 없느니, 그렇게 살지 마라, 무책임하다 ‘는 등 하면서 손가락질해댔다. 하든 말든, 어차피 한 번뿐인 내 인생이다, 난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삶이 아니라 내 삶을 살고 싶었다.


만 평가량 땀 흘리며 농사짓고,

아이들을 감성으로 키우고,

틀렸으면 틀렸다고 말하고,

농사를 도와준 외국인 인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꼭 봉투에 품삯을 넣어 주고,

인터넷에서 찾아 그 나라 말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알바를 같이하는 손목 아픈 어린애 엄마의 일을 거들어 주는,

난 엄청 비윤리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쭉 비윤리적으로 이렇게 자유롭게 살 것이다. 윤리적인 당신들은 그 고고한 철장 속에서 계속 살아라.


이것이 내가 말한 의지가 결합된 자유다. 공원 벤치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 지금도 난 자유롭게 생각한다. 특히 그 대상은 내 글을 읽는 독자들이다. 그들에게 ‘밖은 절대 무섭지 않아요. 얼마나 자유롭고 아름다운데요, 이제 한 발짝만 용기를 내세요’라고 들렸으면 한다. 이러다 훗날 이 공원에 **작가가 생각했던 장소라는 푯말과 동상이 세워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불행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한다. 도와준 것도 없으면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벌게 할 수 없다. 변호사에게 문의하여 지적 재산권이라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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