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그게 뭐 어렵나
내가 밤에 아르바이트하는 다른 이유는 없다. 소설을 쓰고 싶은데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에세이는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아이들 이야기라서 쓸 수 있지만, 소설은 달랐다. 머릿속은 꽉 차 있었음에도 노트북 키보드에 손을 올려놓기만 하면 막막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자의 반 타의 반 너무 오래도록 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아서다. 얼추 따져보면, 아이들과 산골로 들어가 산지 10여 년이다. 사람들의 표정과 말 그리고 행동이 단편적으로 밖에 기억나지 않았다. 글의 핵심 요소인 사람이 빠져버렸다. 어쩜, 단 한 줄의 문장도 제대로 쓸 수 없던 것은 당연했다. 결심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나섰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됐다. 연령대가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해서다 그러고 보면, 세상일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삼촌처럼 편안하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같이 일하는 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별다른 말 한 것도 없고, 모여 있는데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뭐가 편안하다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오다가다 내 아이들 대하듯 했을 뿐이다. 다행스러웠다, 아마 내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과 나 자신을 돌아보며 살았던 세월이 이렇게 만든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편안하다’란 말은 복합어다. 그 속에는 여유로움, 부드러움, 친근함 등의 의미가 들어있다. 그들은 나의 헐렁한 말투와 보이는 몸짓에서 편안함을 느꼈지 않았을까.
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 기분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항상 표정 관리를 했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웃는 모습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대했다. 지금처럼, 그 누구든 악의만 없다면 편하게 대할 수 있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오랜 시간 아이들과 놀면서 자연스럽게 세대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들었던 결과물이다. 그것을 다른 말로 소통이라 한다.
나야 그렇지만, 사람들은 소통을 힘들어하고 목말라한다.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사회가 굴복적 소통을 강요해서다. 소통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힘없는 약자다. 며느리, 아내, 자녀, 회사의 말단 신입사원 등이다. 방송 매체나 기업 강연에 나오는 소통전문가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비겁하게도 ‘서로’라는 말을 쓴다. 너도 잘 못 했고 당신도 잘 못 했으니 서로 한 발씩 양보하라는 소리다. 아니면 그 대상도 불분명하게 ‘우리’라는 표현을 써가며 뭉뚱그려 말한다. 아직도 이 사회는 경직된 조직문화와 유교적 상하 관계가 절대적 윤리인 것처럼 받드는 사람이 많다.
콕 집어서 ‘대기업 CEO, 당신들 그런 식으로 경영하면 회사 망해, 당신들 며느리, 아내에게 그렇게 하면 안 돼’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의 편을 대놓고 들었다가는 하루아침에 강연이 취소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주변 사람도 신경 써야 한다. 위아래도 몰라보는 막돼먹은 사람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은 머리가 좋다. 자신의 문제를 수치로 반반 나눠 양비론을 펼쳐 적당히 타협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참으로 비겁한 지식인들이다.
가뜩이나 양보하고 양보해서 죽을 것 같은데 뭐를 더 양보하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더는 기댈 곳이 없다. 우울증이 심각해지다 못해 극단적 선택까지 이른다. 이래서는 절대 소통이 될 수 없다. 소통은 집단이든, 가정이든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낮아지고, 먼저 겪어 본 사람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렇다고 권위가 내려가고 체면이 손상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우리는 사회의 기초 단위인 가정에서부터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지성의 전당이라 불리는 대학까지 졸업해도 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모가 돼서도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모른다. 겁은 왜 그렇게 많은지, 남들처럼 학원 보내지 않으면 큰일 나는 줄로 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자식 얼굴 보기 힘들다. 평소에 자주 봐야 얘깃거리도 생기고 소통도 한다. 하긴 뭐, 자주 본다고 소통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어디 자식만 그럴까. 부부간의 중요한 얘깃거리도 온통 아이들 공부와 돈, 부동산이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이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난 나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22년 전, 첫 아이인 아들이 태어났다. 남들과 다른 점이라면. 난 어떻게 해야 아들과 소통할까 하는 진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아빠 품에 머무는 동안은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기로 결정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은 선택 사항이 아닌 아빠의 의무였다.
요즘 아르바이트 관계로 서울 집에 머물면서 아들 녀석과 많은 얘기를 한다. 부자지간에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할 수도 있다. 사실 마주 앉는 경우는 밥 먹을 때 빼고는 거의 없다. 서로 자기 할 일 하면서 지나치듯 얘기하는 것뿐이다. 난 주로 세상에 퍼져있는 브런치 작가들과 글에 대해서, 녀석은 책, 영화, 게임 세계관에 관해서 얘기한다. 그렇다고 아빠가 말한다고 고쳐 앉지도 않고, 내가 여기 앉아봐 하는 경우도 없다. 녀석이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거나 탁자에서 웹툰을 그리는 경우도 있다. 단, 게임에 빠져 있을 때는 가급적 말 시키면 안 된다, 짜증 낸다.
부모와 자식이 얘기하는데 무슨 형식이 필요할까. 때로는 서로의 주장도 강하게 부딪칠 때도 있다. 그것은 당연하다. 부자지간이라 하지만 서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생각 있는 부모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한다. 어떨 땐, 아빠인 내가 녀석의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배우기도 한다.
그것은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눈 만 뜨면 녀석과 티격태격 장난을 친다. 내가 먼저 건들지만, 녀석이 불리하다 싶으면 누워있는 나를 끌어안고 볼에 뽀뽀한다고 덤빈다. 그럴 때마다 기겁한다. 23살에 키는 나와 같다. 덩치는 산만 한 녀석이 소름 끼치고 징그러운 방법으로 공격해오는 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끝내, 나이 든 아빠가 잘 못 했다고 백기를 들어야 멈춘다.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과 나는 이렇게 변함없이 놀면서 늘 소통했다.
어느새, 아이들은 컸고 아빠는 나이가 들었다. 소통의 결과는 나타났다. 아들은 초보 작가인 아빠를 응원해주고, 아빠는 아들의 꿈을 지지해준다. 우리 부자는 하고 싶은 말을 감추지 않고 뭐든지 말하는 사이다. 언젠가 아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아이가 생기면 이 아빠처럼 소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