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미친 것인지
‘미쳤다’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로 쓰인다.
하나는, 강한 열정을 가졌거나 무모하리 만큼 과단성 있는 행동을 시도할 때 쓰는 감탄의 의미다. 칭찬에 가까운 말이다. 우리는 홀로 조용하든 시끄럽든 간에 미친 듯 뜨겁게 살아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악담으로 쓰일 때다. 이 경우에는 말 뒤 끝에 따라붙는 명사가 있다. ‘새끼, 것들, 년’ 등이다. 원한 관계가 아니라면 사람에게 붙여 쓸 수 없는 천박한 욕지거리다.
문제는, 내가 서울 집에 머무른 지 한 달 남짓 하는 동안 그 후자의 의미를 가진 ‘미친’이란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는 데 있다. ‘미친 새끼, 미친 것들, 미친년’이다. 그래서 그 미친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김포공항 앞, 그곳은 작은 아파트 단지와 원룸 그리고 일반 주택이 혼재되어있다. 서울 집이 있는 동네도 마찬가지다. 길 하나 사이를 두고 작은 아파트 단지와 일반 주택 그리고 원룸이 마주 보고 있다. 특이한 것은, 폭이 10m나 남짓 되는 느티나무가 줄 서 있는 한적한 길이 동네 흡연 구역이자 주차장 겸 기다림의 장소란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파트와 주택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와 나무 그늘에서 담배를 피우고 아무 곳에나 버렸다. 하루는 주변 청소를 도맡아 하는 아저씨가 이래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아예 커다란 깡통을 가져다 놓았다. 그때부터 그곳은 만남과 기다림의 장소가 됐다. 난 그곳에서 다양한 미친 사람들이 이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았다. 참 많기도 하다.
첫 번째 이야기는 ‘미친 새끼’다.
어느 날, 오전이었다. 백수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김포공항 공원에 산책하려고 나왔다. 그 흡연 구역을 지나치려는 순간 누군가 말을 걸었다. 건축업을 하는 육십 초반의 사람이었다. 우리는 길 건너편 단독주택을 헐고 새로 지어 분양하는 6층짜리 원룸에 대해 애가 하고 있었다. 그때 불쑥 껴들어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새끼, 내가 저 땅 18억에 땅 팔아 준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에게 16억에 팔았어, 미친 새끼.”
육십 대 후반씩이나 되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모르지만 둘은 대충 아는 사이처럼 보였다. 속에서야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했지만, 그런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과는 말 섞기도 싫었다. 육두문자가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그 오묘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만 했다. 내용은 별거 없다. 먼저 땅 주인이 자신이 소개해주는 사람에게 땅을 팔지 않아서다. 소개해주고 구전이라도 챙기려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억울해서다. 전액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 ‘나 믿지’ 하면서 건물 짓고 분양 후 잔금을 준다면 나라도 팔지 않겠다. 말끝마다 ‘미친 새끼‘가 침과 함께 튀어나왔다. 땅을 팔고 건너편 아파트로 이사를 간 먼저 땅 주인은 졸지에 미친 새끼가 된 것이다. 그 육두문자가 돌아가자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밑에 보이는 건물의 주인이라고 알려주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미친 것들’이다.
오후 2시쯤이었다, 27세나 됐을까 앳된 젊은 남자가 둥그렇게 생긴 차량 진입 방지 석에 앉아 있었다. 그 젊은이는 고개 숙여 폰으로 문자를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내가 커피를 마시는 자리인데 아쉬웠다. 거긴 임자 있는 자리니까 비켜 달라고 하면 내가 미친 사람이다. 잠시 걷다 그냥 들어왔다.
4시경에 다시 나갔다, 그때도 그 앳된 젊은이는 그 자리에 앉아 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얼추 두 시간이 지났다. 순간,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미련을 못 버리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는 이 동네 살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간절한 느낌을 줄 수 없다.
두툼한 폴라폴리스 베지 색 잠바에 청바지를 입고 있는 그 젊은이는 결코 멋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땅딸한 몸매, 두꺼운 허벅지는 뭘 입어도 어울리지 않을 듯싶었다. 게다가 둥그스럽고 여드름끼 있는 거친 피부를 가졌다. 요즘 여자애들은, 저렇게 순박하게 생긴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미장원에 가서 '이대로 잘라주세요'라고 말할 사람처럼 보였다.
점점 결과가 궁금해졌다. 해 질 녘, 6시가 조금 넘어 다시 나가 봤다. 마침, 그 앳된 젊은이가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아무리 문자로 애걸해도, 결국 여자애는 나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였다. 예쁜 여자애가 다가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이마를 맞대기도 하고 가슴과 어깨에 얼굴을 비벼댔다. 여자애 얼굴에는 어쩔 줄 모르는 안타까움과 감격스러움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냥 조금 삐쳤던 것뿐인가? 별스럽게 보였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둘은 계속 그랬다. 두 연인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관심을 끈 것처럼 생각됐다. 가까운 거리에서 나와 몇몇 사람들이 훔쳐보고 있다는 것은 안중에 없었다. 기다렸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진 않았다. 저 정도면 더 꼭 끌어안고 가벼운 입맞춤이라도 해야 한다. 말 없는 몸짓의 언어, 앳된 젊은이의 시종일관 자랑스럽단 바보 같은 순박한 표정. 저 느껴지는 순백의 순수함은 뭘까? 아무리 봐도 뭔가 어색했다.
잠시 후, 둘은 손을 잡고 걸어갔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둘이 걸어가며 손짓으로 대화하는 것을, 그들은 청각장애인이었다. 당연히 말도 할 수 없다. 예고 없이, 혹시 하는 마음으로 먼 길을 찾아왔지 않았을까. 그래서 계속 문자를 보내고 기다렸다. 두 사람의 엇갈린 상황이 따로따로 머릿속에 그려지며 가슴이 뭉클거리고 눈이 충혈됐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같은 말과 현란한 어휘 구사력을 가지고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저들은 단순한 표정과 몸짓으로도 맘껏 표현하고 서로를 깊이 바라볼 줄 안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낮에 느꼈던 그 이상한 감정의 정체도 얼추 짐작했다. 그것은 오래도록 말 못 하고 살아야 했던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이었다. 그래서 나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않았을까. 그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미친 것들, 아무 데서나 연애질이야, 요즘 것들은….”
입마개도 하지 않은 시베리아 허스키를 끌고 산책하는 육십 대 중반의 사람이 낸 소리다. 난, 나의 감정을 해친 그 사람과 짖어대면 늑대 울음소리를 내는 그의 큰 개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사람은 나의 화난 표정이 못내 불안한지 사치스런 개를 끌고 사라졌다.
세 번째는 ‘미친년’이다.
난 그녀, 아니 내 눈에는 아이로 보였고 비행기 승무원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는 항공과 관련된 직장인이 많다. 그러다 보니 머리긴 젊은 여자들이 상당히 많다. 그녀들이 출근할 때면 하나같이 긴 머리를 단정히 말아 올리고 숨쉬기도 어려운 꽉 끼는 재킷과 굴곡을 그대로 들어내는 항아리치마를 입고 다닌다. 본인들이 좋아서라기 보단 여자 승무원은 그래야 한다는 왜곡된 미의 기준을 적용받기 때문이다.
그 아이도 그렇다, 딱 달라붙는 옷에 머리를 길게 기르고 선글라스를 낀 모습으로 담배를 피웠다. 매일 아침 9시경만 되면 검정 바바리코트를 멋지게 차려입고 카페로 가서 12시경에 돌아왔다. 내가 카페까지 쫓아간 것은 아니다. 돌아올 때면 언제나 손에 테이크 아웃 커피 2개가 들려 있는 것을 보고 추측한 것이다. 어디로도 갈 곳이 없었다. 가끔은 그 길에서 폰의 음악에 맞춰 가벼운 춤도 추고 혼자서 이야기도 하고 소리도 쳤다. 그렇다 보니 누구도 그녀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난 그 아이에게 모진 사연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느 햇살 좋은 오후였다. 길 건너편 흡연 구역, 그 아이는 담배를 피우려 노력하고 있었다. 여러 번 시도해도 “착착” 소리만 들릴 뿐 라이터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 아이의 라이터에 문제가 있었다. 말없이 다가가 내 라이터로 불을 켜서 담배 끝에 대주었다. 한 모금 흡입하자 담배 끝이 빨갛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난 가만히 웃어줬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어.’ 당시 내가 마음속에서 한 말이다.
‘안녕하세요’ 그일 이후로 그 아이는 나를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나도 ‘네’ 하고 짧게 인사를 했다. 그날도 그 아이가 카페를 다녀오는 길이었고 난 걸어오는 그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때 도롯가에 차가 멈추고 머리 하얗게 센 노부부가 내렸다. 나이 든 여자는 트렁크에서 뭔가 꺼내려다 다가오는 그 아이를 쳐다보고 ‘미친년’이라고 했다. 바로 차 앞까지 다가온 그 아이는 자신에게 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는지 순간 고개가 숙여지더니 빠른 걸음으로 지나쳤다.
이 동네에는 이렇게 많은 미친 사람들이 산다. 내가 생각하는 미친 사람은 땅 주인, 청각장애 연인, 머리긴 여자아이가 아니다. ‘미쳤다’는 기준은 정상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아무 소리나 짓거리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은 남들 가슴에 상처를 내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러고 보면, 행정구역상 한 개의 동도 되지 않는 이 작은 곳에 이렇게 미친 사람들이 많으니 세상엔 얼마나 많을까 한다.
보통 이런 글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가 좀 더 이해하고, 관심 두고, 배려하기 바란다 ‘ 혹은 ’~했으면 좋겠다 ‘란, 이도 저도 아닌 비겁한 문장으로 마무리를 하지만, 난 절대 그러고 싶지 않다. 나이 들고 못 배웠다 해서 막말이 용납되는 사회는 미래가 없다. 그것은 기본 소양의 문제이자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폭력과 차별성의 문제다. 게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물질적으로 바라는 것도 기댈 이유도 없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홀로 몸부림치던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그렇게는 하지 못한다. 누구의 눈치를 볼 만큼 심약하지 않고 아직도 뜨겁다. 충분히 분노할 의지가 가슴속에서 끓고 있다.
“그 미친 짓거리들 좀 그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