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닥 그리고 사람

위아래로 나눈 세상

by han


조장은 어리고 귀엽다. 기껏해야 26살이나 됐을까. 이곳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직원이 된 것 같았다. 말라 보이는 여자애가 밤새워 같이 일하며 무거운 포대도 번쩍번쩍 든다. 그리고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다. 오래도록 듣지 못했던 이름이다. 생글거리며 발랄하게 ‘**삼촌, 이것 좀 해주세요.’ ‘**삼촌이 이 사람들 데려가 알려주세요.’ 한다. 본인 생각에, 전혀 이런 일을 해보지 않은 깔끔한 중년인이 일도 쉽게 하고, 뭐가 그렇게 재미난 지 얼굴에 씌어있다.

사실, 난 청바지에 맞춰 비슷한 색상의 달라붙는 면티나 남방을 즐겨 입는다. 아르바이트하러 갈 때도 그런 가벼운 복장으로 간다. 얼굴이 약간 시커멓긴 하지만 농부라고 하면 믿지 않는다. 물론 글을 쓴다 해도 믿지 않을 것 같다. 우락부락한 게 감성 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등짝에 숨겨둔 용무늬 그림이 빼곡히 그려 있는 맘 잡고 사는 조폭처럼 보이면 모를까. 그렇다고 내가 먼저 쓸데없이 말을 걸거나 하지 않는다. 가만히 웃어준다.


“위에서 불시에 점검 나온다고 해요, 불편하지만 헬멧과 안전화 꼭 착용해주세요.”


어제였다, 귀여운 어린 조장이 사람들 앞에서 한 말이다. 덥고 불편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는데 당연히 지시대로 하는 게 맞다. 그러나 난 ‘위’라는 말에 한숨이 나왔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십여 년간 두문불출하고 농사짓고 살았다. 세상이 좀 변했나 싶었는데 크게 변한 게 없었다. 내가 알바를 하는 택배물류회사는 대기업 협력회 사다. 즉, 소위 말하는 하도급 회사다. 다른 몇 군데에서 가벼운 사고가 있었다고 하며 하도급을 준 대기업에서 불시에 점검 나온다는 소리다. 그냥 협력업체 C 기업에서 안전 점검 나온다고 해도 될 것을 ‘위’라는 표현을 쓰면서까지 스스로 아래가 됐다. 그 어린 조장의 잘 못이 아니다. 개인이 미쳐 생각할 틈도 없이, 사회가 잘못된 위아래의 개념을 절대 진리라도 되는 것 마냥 당연시해서다, 어린 조장은 순응했을 뿐이다.


원래 ‘위아래’는 사람과 속한 조직에 쓰는 단어가 아니다, 사람은 위아래가 없다. 대기업 회장이나 화장실 청소하는 이모나 각자 하는 일이 다를 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봉건왕조 때나 쓰던 단어를 현재도 아무 거리낌 없이 쓰고 있고 마땅히 대체할만한 표현도 없다. 쉽게 영어의 예를 들어보자, 가족 구성원 간의 위는 Elder(나이 든), 아래는 Younger(보다 젊은)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위는 Superior(상사), 아래는 Junior(직원)를 주로 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의미의 위아래가 아니라 Over(높은) 하늘과 Under(낮은) 바닥의 개념이다. 몸담은 조직에 따라 혹은 돈과 권력에 따라 하늘이 되고 바닥이 된다. 하늘은 내려 보고 바닥은 올려 본다.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갑질 문화는 여기서 비롯됐다. 윗 조직의 사람은 명령하고 아래 조직의 사람은 복종해야 한다. 그러니 다들 기를 쓰고 올라가려고만 한다.


하지만, 무한 경쟁 시대다, 항상 하늘 근처에 머물러 있을 순 없다. 구조조정, 실직 등 자칫 잘못해서 추락하기라도 한다면, 인생 하루아침에 비참해진다. ‘뭐,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고 하지만, 어디 그것이 말처럼 쉬울까. 자신은 하늘이 아니었어도 조직은 이 사회에서 하늘처럼 군림했다. 자신은 그 기업의 일원이었다. 다닐 때는 몇 번씩이나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지만 단지 생각뿐이었다. 용감하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그의 부모부터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일류 직장에 다니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버틸 때까지 버티다 밀려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 왔다. 인 서울 유명대학을 졸업했고 나름대로 승승장구하던 자신이었다. 능력이 부족하단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쫓겨난다는 생각에 모멸감마저 느낀다. 반면에 어린 조장은 이미 수 없이 거절을 당했기에 그런가 보다 한다.


그곳에서 7년 전 K 은행에 다니다 명예퇴직한 오십 대 초반 사람을 만났다. 지금은 중소기업에 근무하며 투잡을 한다. 그는 밤새워 일하고 1시간가량 잠을 자고 출근한다고 했다. 그래서 버틸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일주일에 2~3번밖에 하지 않아서 견딜만하다고 하며, 아이들도 아직 어리고 쓸 돈이 많다고 했다. 쓸 돈이 많다는 소리에 계속 듣지 않아도 얼추 짐작했다. 퇴직금과 집 담보로 식당 같은 것을 차렸다가 실패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도 한때는 남들이 선망하는 하늘 조직의 일원이었다. 그리고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다는 그의 부인을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땀 뻘뻘 흘리며 아이들 밥상 차리는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난 정말 궁금한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그럼 둘이 언제 사랑해?... 싸우지 않나?” 짓궂고 장난스러운 툭 던지는 말투에 “부부 사이는 좋아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다행스러웠다, 대부분, 경제력으로 지탱하고 있던 것들을 유지할 수 없는 순간이 오면 가족 간의 지켜야 할 품격부터 사라진다. 더 배웠던 덜 배웠던 관계없다. 원망과 탓을 하고 값싼 말투로 상대를 난도질해서 견딜 수 없게 만든다. 함께 누렸음에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갈등이 일어나고 가족은 급격히 해체된다. 결국, 그 피해는 주로 약자인 여자와 아이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러면 자존심 상하게 위아래로 사람을 평가하고 나누는 세상,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난 아들에게 언젠가 말했다.


“지위, 명예, 돈 같은 것은 능력만큼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다. 있건 없건 간에 항상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혹시 위기가 온다면 모두 빠르게 버려라, 그래야 산다."


난 아이들에게 한 번도 성공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 싶어서다. 반대로 실패할 때 다시 일어나는 방법은 알려 주었다. 그것은 경험 많은 내가 잘 알고 있어서다. 그런 의미에서, 걸리적거리는 부질없는 욕심부터 버려야 한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면 충격을 받는 일도 잃어버릴 것도 없다. 연연하지 말고 망설임 없이 버리면 그뿐이다. 가벼워야 더 멀리 날 수 있다. 내 것 아닌 내 것으로 작게 살면 된다. 자존심 구겨가며 질질 끌려가다 보면 어느새 지옥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머리와 가슴속에 있는 것이다.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닌데 미련스럽게 쌓아두면 무겁고 번잡하기만 하다. 차라리 가슴속에 밤하늘의 별과 파도치는 바다를 담고 사는 게 더 이롭다. 인간이 만든 것처럼 불완전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난 젊은 날의 추억을 간직한 앨범까지 태워버렸다. 무거운 앨범 끌고 다니지 말고 이 아빠를 마음속에서 생각하란 뜻이다. 그런 아빠에게 아들이 언젠가 말했다.


“아빠, 난 어떤 상황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무너지지 않을 거야.”



이 세상에 많은 어리고 귀여운 나의 조장들은 별로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가볍다. 스스로 낮추지 말고 당당하게 날개를 펴고 멀리 날기만 하면 된다. 그런 마음에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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