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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본드형 Mar 24. 2024

개모차

14살 노견 짱이를 위해

개모차를 샀다.


얼마 전부터 뒷다리 힘이 풀려 자주 주저앉더니

대소변 자리를 못 가리는 경우도 잦아지는 등

전형적인 노화현상이 심해졌다.


그나마 산책 나가는 건 좋아했는데

이마저도 태워서 메던 가방 안 공간이 좁은지

중간에 내렸을 때 잘 걷지 못하고 힘들어하던 터였다.


짠순이 아내가

당근 중고품이 아닌 정식 신제품을 구매해

노심초사 기다리더니 드디어 그 시승식 날이 왔다.




짱이의 상징인 검은색 바디에

빨간색 지붕이 붙어 있어 여성성을 강조한 디자인이

나름 맘에 들었는지


아내도 필라테스 다닐 때 입던

검은 레깅스와 후드로 깔맞춤을 하고

호수공원 산책을 나갔다.


블랙 모녀지간이 콘셉트인가...


막상 개모차를 끌고 산책을 해보니

짱이에게 넓은 공간이 생겨 편해진 것 외에도

몇 가지 좋은 점들이 있었다.


하나, 가방에 태워 메지 않아도 되니

짐꾼 내 몸이 가벼워서 날아갈 듯 걷을 수 있다는 점.


둘, 개모차 하단에 짱이 용품뿐 아니라

가벼운 먹거리나 휴대폰 등을 함께 실을 수 있다는 점.


셋, 가장 중요한 점으로

짱이가 말로 표현은 못하지만

지나가는 다른 반려견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난 늙어서도
이렇게 주인의 사랑받는다고


자랑하듯 한껏 거만한 표정이다.

그 표정을 읽는 아내의 얼굴에도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하긴, 사람은 말로 자신의 불편함을 얘기라도 하지

반려견은 주인이 그걸 눈치채지 못하면

참고 살아야 하는 삶 아니던가.


이제는 가족이 되어버린

짱이의 노후 복지를 위해 뭔가 해줬다는 게

나 역시 뿌듯한 산책길이다.




반려견 키우는 가구가

아이 키우는 집보다 많아져

개모차 판매가 유모차를 추월했다는 기사를 봤다.


저출산 사회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라는데

잠깐 생각해 본다.


사실 개모차는 노견을 위한 장비라서

고령화 사회 이슈랑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반려견은 늙어도

돈을 못 벌어 온다고 눈치를 주지도 않고

중풍이나 치매에 걸려도 남은 가족들 모두

사람처럼 힘들어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곁에서 함께 살아가면 그뿐이다.

세상 편한 팔자다.


물론 주인을 잘 만나는 운은 타고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짱아, 난 네가 부럽다.

나 같은 주인을 만났으니...

건강하게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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