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집에 들어온 아들이
부스럭 대며 안방 문을 쓰윽 열더니
엄마 아빠 자고 있는 침대 사이로 파고든다.
술 먹었어? (아빠)
... (아들)
어디 아프구나! (엄마)
... (아들, 고개만 살짝 끄덕인다)
과연 이마에 손을 대보니 열이 좀 있다.
독감인가? (아빠)
그럼 그렇지! (엄마)
아내가 침대에서 일어나
따뜻한 물에 녹여 차처럼 마시는 감기약을 가져오자
녀석은 호호 불며 조금씩 나눠 들이키고는
"잘 자" 하며 제 방으로 돌아간다.
아직 애기야 (아빠)
귀엽잖아 (엄마, 행복한 표정이다)
침대에 다시 눕는 아내가 웃으며 한마디 덧붙인다.
잘난 아들은 나라 꺼고
보통 아들은 며느리 꺼고
아픈 아들만 부모 꺼래
명언이다.
군대까지 다녀온 아들 녀석이
자기 아프다고 말없이 시위하는 모습이나
그걸 알아채고 받아주며
부모로서 행복해하는 아내의 표정을 보며
반성했다.
남편, 아빠, 아들...
가족이란 굴레에서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역할을
무거운 의무로만 생각한 적이 한 때 있었다.
빨리 벗어버리고 나를 위해 살아야겠다고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가
사실은 나로서 진짜 행복한 시간들이 아닐까...
자유로와 진다는 건
책임의 무게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쁘게 선택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걸
그게 바로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걸
출근시간이 다가오는
금요일 새벽 마침내 깨달았다.
오늘 하루 행복하길
언제나 아침에 눈 뜨면 기도를 하게 돼
달아날까 두려운 행복 앞에
(중략)
혼자인 게 좋아
나를 사랑했던 나에게
또 다른 내가 온 거야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