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이빨 빠진 호랑이였다

by 본드형

어머니와 치과에 왔다.

평소 늘 누나가 모시고 다녔는데

고향 내려온 김에 하는 최소한의 아들 노릇이랄까.


4층짜리 단독 새 건물에

쾌적한 시설과 깨끗한 인테리어,

친절한 직원과 편리한 프로세스가 느껴져

'참 좋다는' 병원 이름과 잘 어울렸다.




어머니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따라 들어가 보호자용 의자에 앉았다.


간호원이 먼저 들어와

지난주 치료한 부분에 불편함이 없었는지,

오늘 치료할 건 뭔지를 조목조목 찬찬히 설명하며

누워 있는 어머니 앞 모니터를 켜는 순간,

흠칫 놀랐다.


X레이 사진의 치아 대부분이 임플란트였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저걸 다 하신다고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나도 얼마 전 고생해 봐서 잘 안다고)


어제 점심때 수육을 맛있게 드시길래

호랑이 띠라서 역시 강한 이빨을 가지셨다고 했는데

다 뻥이었네 하고 웃었지만,


어느새 나도 이와 잇몸이 약해져서

하나 둘 임플란트가 생기고

밥만 먹으면 낀 음식물 빼느라 쯥쯥거리며

점점 추해져 가는 중년이 되고 보니까


언젠간 나도 저 어머니 사진처럼 되겠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겠지

아니다, 띠로 보면

난 부리 없는 닭 신세인가...




어제 청주에 내려와

태어나 살던 옛 동네를 찾았었다.

거리에 오래된 플라터나스 나무들만 빼고

모든 게 변해버렸다고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리는데


텃밭을 가꾸는 할아버지 한 분이 눈에 띄었다.

하얗게 샌 머리에 무심한 표정이

왠지 살아온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래도 이 더위에

참 건강해 보이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에 담았었다.


나도 저렇게 늙어가려나...




keyword
본드형 가족 분야 크리에이터 직업 기획자 프로필
구독자 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