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청년 May 07. 2019

입학사정관제의 진짜 문제

5장 열아홉 인생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

2018년 4월부터 8월까지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가 열렸다. 수시와 정시, 학종(학생부종합전형, 또는 입학사정관제)과 수능이 격렬히 충돌한 현장이었다. 많은 학부모들은 수능 위주 전형 확대를 주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부모 입장에서 수능은 학종보다 훨씬 깔끔하고, 자기 자녀를 관리하기 편한 제도다. 시험 성적 잘 나오게 만들어줄 학원에 보내 딱 한 번 보는 그 시험만 잘 보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교사들은 수시 확대를 주장했다. 이 역시 이해가 되는 게, 선생님들 입장에서 수능 위주의 입시란 학생들이 고등학교 내내 수업시간에 선생님 말은 안 듣고, 수능 공부만 할 거란 걸 의미한다. 자기 수업은 무시하고 자습만 할 학생들을 반길 선생님은 없다. 두 의견의 치열한 충돌 속에서 이도 저도 아니면 학생부교과(내신성적으로만 대학 가는 전형)를 늘리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각자 입장에서 맞는 말들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제 대입을 치르는 10대들 대변하거나 21세기 한국에서 훌륭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하진 않았다.



'학종'이 필요한 이유


이 시대의 인재는 오지선다형 시험만으로도, 논술만으로도, 얼마나 교과서를 잘 외워서 내신을 잘 봤는지 만으로도 검증될 수 없다.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능력을 보아야 한다. 개인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중요시되는 능력은 다양하다. 그리고 각 대학도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저마다 원하는 인재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서울대의 인재상은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하는 창의적 지식 공동체"라는 말속에 담겨있다. 즉, 서울대에서 뽑는 인재, 서울대를 졸업하는 인재들은 사회의식도 있고,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사회적 책임감도 있으며, 따라서 리더십도 있고, 그에 더해 창의성과 학문적 소양이 바탕이 되는 사람이다. 이런 요소들을 수능 성적, 내신 성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우리나라의 수능 시험/내신 방식에서는 성적이 높으면 높을수록 사회의식이 떨어지고, 사회적 책임감이 적고, 리더십도 없고, 창의성도 없고, 이기적이며, 자기 자신만의 성공을 바라보고, 단순 지식 암기만 잘하는 사람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학업성취도뿐만 아니라, 말과 글로 그 사람의 살아온 행적, 생각과 꿈을 듣고 총체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학종은 이런 21세기형 인재 선발을 가능케하는 대입 전형이다.


더 중요한 건, 학종은 학생들이 대입과정에서도 행복을 잃지 않고 꿈을 좇을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열아홉 인생이 정말 행복하려면, 꿈을 향해 가는 길, 대입의 길, 중고등학교에서의 생활과 학습이 일치해야 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을 돕고 사는 게 꿈이고, 인체에 신비함을 느껴 의사란 직업을 가지고 싶다면,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과 의대에 합격하는 길과 그걸 준비하는 중고등학교 생활이 같은 선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능케하는 대입 전형이 바로 학종이다. 반면, 우리나라 10대가 불행한 이유는 훌륭한 의사가 되는 길과 수능 공부/내신 공부가 정말 1도 연관이 없는데 결국 의대를 가는 것은 수능 잘 보고, 내신 잘 보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고등학교를 다니며 한 번쯤은 해봤던 생각이지 않을까. "도대체 이걸 왜 공부하는 거지? 도대체 이게 내 인생이랑 무슨 상관이지??"



그저 엘리트 전형이 되어버린 우리나라 '학종'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만큼은 학생부종합전형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서울대라고 학종에서 "세계사적 소명을 실천할 창의적 지식 공동체"에 부합하는 학생들을 뽑지 않는다. 이건 '팩트'다. 거의 내신 성적으로 뽑히는 전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개개인의 능력과 발전 가능성을 본 목적에 맞게 다양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고등학교 별로 급을 정해 '이 고등학교 학생들은 내신 몇 등급까지 합격시킨다'라는 기준을 두고 1차로 걸러 자기소개서와 생기부를 확인하고, 면접을 볼뿐이다. 가령 '용인외고는 내신 4등급까지, 한일고는 내신 3등급 초반까지, 일반고는 내신 전교 1~2등만'이라는 기준을 두고, 한번 걸러서 자료를 보는 식이다. 국내 최상위권 대학에서 "내신 5등급도 우리 대학 합격해요"라고 주장하며 예시로 드는 학생들은 다 고교 서열이 높은 학교 출신들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우리나라에서 학생부종합이란 빛 좋은 개살구, 말만 번지르르하지 사실상 '고교 서열 내신 전형'인 것이다. 그러니 학종의 폐해에 대한 말이 나오는 것이고, 그 주장들은 대부분 틀린 말이 아니다.


서울대 전임 입학사정관 수가 25명이다. 25명이서 도대체 어떻게 모든 지원자들의 가능성을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입학사정관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다. 우리나라 대학은 입학사정관을 충분히 두지 않는다. 입학사정관은 학종에서 실제 자료를 보고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국내 최상위권 대학 입학설명회에 가보면, 입학사정관이 부족해서 모든 자료를 성실히 보지 못한다는 걸 아주 자랑스럽게 말한다. 심지어 SKY 대학들은 보지도 않는 불필요한 자료들 보내지 말라고 아주 대놓고 말한다(이것이 정녕 정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인재를 뽑고자 하는 대학 입학처 소속 사람들 입에서 나올 말인지...) 자신을 잘 드러내는 자료를 잘 선별하고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저런 역설을 듣고 있으면 어이가 없어진다. 학종 전형을 시행할 기본 소양이 갖춰져있지 않은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우리나라 대학이 학종에서 제출받는 자기소개서, 생기부, 각종 성적, 수상내역 외에도 제출 가능한 온갖 자료들을 다 받는다. 워낙 제한이 없어서 뭐라 설명을 못할 정도다. 그냥 '다' 받는다. 예체능 분야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 자신의 연주 영상, 경기 영상 등을 보내는 건 기본이고, 직접 그린 그림 작품, 연설 영상, 일하면서 직접 만든 공문서 등 모든 것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다. 컴퓨터 파일의 경우 무제한으로 올릴 수 있고, 심지어 자료를 우편으로도 받는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그렇게 우러러보는 하버드가 이렇게 학생을 뽑는다. 그런데 우리 대학들은 서류 볼 시간이 없다고, 어차피 안 보고 버린다고 '쓸데없는' 자료들 보내지 말라고 말한다.


서류를 검토할 사람이 없으면 당연히 학종 같은 좋은 취지의 전형도 단순 내신 전형이 될 수밖에 없다. 유일한 차이는 내신이 학교 구분 없이 정량 평가되는 학생부교과 전형과 달리 정성평가가 된다는 핑계로 고교 서열화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학종은 유명하고 비싼 고등학교 출신들의 '엘리트 전형'이 되고, 돈 많이 들고, 이름 거창한 활동을 많이 한 학생들만 눈에 띄는 '귀족 전형'이 되는 것이다.


이미 귀족 전형이 되어버린 우리 학종


그래서 문제는 학종이 아니라, 입학사정관 부족이다. 몇몇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학종의 폐해만 보고 수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교육을 20세기, 19세기로 후퇴시키겠다는 소리다. 정말 우리나라 대학들이 좋은 인재를 뽑고, 좋은 인재를 많이 배출하기를 원한다면 학생들을 100% 학종으로 뽑아야 한다. 단, 그와 동시에 입학사정관 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규제하고, 최대한 많은 자료를 검토하여 학생을 선발하게 해야 한다. 작년 지원자 수 또는 최근 3년간 지원자 수의 평균 같은 기준을 두고 입학사정관 1명당 1차 검증 대상 지원자 수가 300명을 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 대학의 경우 모든 지원자의 자료를 최소 2명 이상의 평가자가 검토하도록 한다. 우리 대학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입학사정관이 필요하다. 이것이 학종을 학종답게 만드는 길이다.



*하지만 결국 학종의 근간은 중고등학교 학습과 생활이다. 학종이 진짜 21세기형 인재를 뽑는 전형이 되려면 중고등학교 교육이 바로 잡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5-4, 5-5장에서 하려고 한다.


#5장열아홉인생을위해국가가해야할일 #하마터면서울대갈뻔했다 #열아홉인생

이전 18화 수능을 수능답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