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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May 10. 2019

대학, 쓸데없는 벽을 허물어라!

5장 열아홉 인생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

종합해보면 우리나라 대입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잘못되었다.


1. 학생들에게 필요 이상의 극심한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2. 시대에 뒤떨어진 인재 선발 방식이며,

3. 자기 흥미와 전공의 미스매치(mis-match)를 장려한다.


마지막 세 번째. 미스매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출처 서울대 수시모집요강


도대체 학생을 '과'별로 뽑는 이유는???


우리나라 대학은 '과'별로 학생을 뽑는다. 그래서 입학식이 열리기도 전에 내가 무엇을 전공할지가 결정되고, 치열하게 학점을 관리해 전과하지 않는 이상 졸업할 때까지 바꿀 수 없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 중, 수능을 마치고 예비 신입생 시절부터
무엇을 전공할지, 그리고 그 생각은 앞으로 조금도 바뀌지 않을 거라 확신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 아니 이런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가...?


나 또한 고등학교 내내 정치외교학을 전공할 거라 너무나도 확신했지만, 결국 2학년이 되기도 전에 정치학과에서 경제학과로 전공을 바꾸었다.


전공은 그렇게 가볍게 선택할 것이 아니다. 전공은 졸업 후 직업,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내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전공을 고3 대입에서 바로 결정해야 한다. 그것도 중고등학생에게 가장 수준 낮은 진로교육을 제공하는 나라에서 말이다.


이런 과별 선발 방식은 10대에게 큰 혼란을 준다. 내가 뭘 공부하고 싶은지, 무엇을 재밌어하는지를 고민하기도 벅찬데 '내가 과연 이 과를 합격할 수 있나?'까지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찾았다 해도 많은 경우 내가 좋아하는 과와 합격 가능한 과가 충돌한다. 성적에 맞춰 과를 정하면 대학에 가서도 내가 배우고 있는 것과 진짜 하고 싶은 공부가 충돌한다. 이런 갈등은 우리 1020들의 인생을 끊임없이 불행하게 만든다.


그럼 어떻게 하냐고? 과별 선발을 폐지하고, 학생들이 2학년이 끝나기 전까진 전공을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믿기 힘들겠지만, '당연히' 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은 이렇게 학교를 운영한다. 그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는다. 과별 선발? 다른 나라의 대학은 하지 않는다. 전공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내버려 둔다. 뉴욕주립대에 처음 입학했을 때 나는 정치학을 선택해서 들어갔다. 그리고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 어렵기로 유명한 경제학 수업을 들었고, 거기서 우수한 성적을 받아 교수로부터 경제학을 전공하라는 추천장을 받았다. 동시에 정치학이 굉장히 재미없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행정실에 건 전화 한 통으로 전공을 정치학에서 경제학으로 바꿨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우리나라 대학의 과별 선발 방식이 상식 밖을 알 수 있다. 아주 오랫동안 이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대학을 지원하는 순간에 우리나라 10대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이고, 내 인생의 근간이 될 학문은 무엇일지 정확하게 알까? 절반도 안 될 것이라 확신한다. 심지어 자기가 특정 학문을 전공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할지라도 막상 대학에 가서 여러 교양 수업들을 듣다 보면 바뀔 수 있는 것이 10대 인생이다. 대학은 꾸준히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곳이다.



과별 '인원'도 정해놓는 우리 대학


여기서 과별로 선발하는 걸로 모자라 과별로 선발 인원을 정해놓은 것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2019년에 서울대를 수시로 입학해서 건축학과를 전공하는 사람이 꼭 41명일 이유가 있을까? 42명이면 안 되고, 43명이면 안 되나? 대학을 다녀보면 알겠지만 대학은 대충의 수용 가능 정도가 있을 뿐 정확한 수치의 정원이란 게 있을 수 없다. 각 수업에는 정원이 있을 수 있다. 대학의 경우 과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하는데 교수는 1명이기 때문이다(이마저도 많은 교수들은 인원이 다 차도 찾아가서 물어보면 등록 가능하게 해준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어떤 기준으로 특정 학과를 공부할 수 있는 구체적 인원수를 정하는지 신기할 다름이다.


미국 대학은 지원을 받을 때 어떤 학문을 전공하고 싶은지 의사를 물을 뿐('정해지지 않음(Undecided)'로 적을 수도 있다) 그 학과별로 인원을 정해 뽑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그런 선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인원을 정할 것인가? 그냥 그 대학에 다닐 능력이 되는 학생을 뽑는다. 그리고 2학년 때까지 전공 선택/변경에 대해 어떠한 제한도 없다. 학생이 대학을 다니면서 흥미가 바뀌었다고 하면, 그걸 대학이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럼 전부 다 경제학과 나오고, 전부 다 공대 나오면 어떻게 하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경영학과, 경제학과, 공대 등을 선호하는 이유는 졸업 후 그쪽 분야에 일자리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 당연히 대학에서도 관련 분야 인재를 많이 배출해주어야 하는 것이고, 그 분야에는 교수도 많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너무 특정 분야 인재가 많이 배출되면 노동시장에서도 과잉 공급이 일어날 것이고, 그 분야의 일자리를 얻기 힘들게 된다. 그럼 다시 자연스럽게 다른 분야의 일자리들이 더 인기 있어질 것이고, 그 분야 전공자도 늘어나게 된다. 이렇게 대학과 노동시장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알아서 조율된다. 오히려 과별 인원 제한을 두는 것이야말로 그 흐름에 역행하여 전공과 직업 간 불일치를 조장하는 원인이 된다.


국가별 전공 불일치 발생률. 우리나라는 가장 왼쪽. 1위다. 출처 : OECD


물론 미국 대학도 예체능 관련 학과는 오디션을 보기도 하고, 각 대학별로 인지도가 높아 많은 인원이 몰리는 과는 자체 조건을 내걸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도 인원 제한이 아니라,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사람은 모두 전공할 수 있는 식이다. 대학에서 과별 선발 인원에 제한을 두고, 전공 변경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하는 것은 정말 불필요한 '벽'이다.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대학이 쌓아놓은 이 쓸데없는 벽 때문에 1년에 수십만 명이 '내가 원하는 전공이냐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유명한 대학이냐'를 두고 스트레스 속에서 갈등하며, 대학에 가서도 '정녕 이게 내가 원하는 길인가'를 고민한다. 대학은 자유롭게 꿈을 좇아 탐구하는 곳이자, 끊임없이 꿈을 탐색하는 곳이다. 과별 선발을 폐지하고, 2학년까지 전공 변경을 자유화해야 한다. 이 자유를 막아 온 쓸데없는 벽을 허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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