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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May 05. 2019

수능을 수능답게

5장 열아홉 인생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

우리나라 수능은 세계 최악의 시험이다. 더불어 우리나라 정시는 세계 최악의 입시 제도다. 우리나라 10대들의 인생을 망치는데 제일 크게 기여하는 것을 뽑자면 그건 바로 수능이다.


우리나라 수능에 대한 BBC 기사. 그들에게 우리 수능은 놀라움의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수능은 '신(神)'이다. 수능시험날은 온 국가가 비상이다. 듣기 평가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비행기도 뜨지 않는다. 수능을 준비하는 사람은 집에서 상전이 된다. 어떤 행동을 해도 용서가 되며, 스트레스를 이유로 발광을 해도 가족들은 다 맞춰준다.


원래 이런 고부담 표준화 시험은 학생들을 극도의 긴장과 스트레스로 몰아넣는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이 시험을 1년에 딱 한 번, 하루에 보고, 유효기간도 없어 스트레스를 최대화시키고, 조금이라도 실수할 경우 그 비용을 극대화시킨다. 이렇게 우리는 10대들을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런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자랑스러워하며 어린 10대들에게 그걸 견뎌내길 응원한다. 하루빨리 수능을 뜯어고쳐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수능 직전 또는 직후에 자살을 했다거나, 수능을 치다가 자살을 한다거나, 시험 도중 쓰러져 실려갔다는 소식은 매년 수능 때마다 들려온다. 그 외 과민성 대장증후군, 불면증, 만성피로 등은 고3들에게 예삿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학습 부담을 줄일지를 고민해도 모자랄 판에 우리나라는 긴장과 불안, 스트레스를 극대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1년에 딱 하루 보는 시험날 아프기라도 하면, 또 여학생들의 경우 생리를 하면 굉장한 피해를 보게 된다. 그렇게 평소 연습했을 때 보다 성적이 떨어지면, 그 비용은 자그마치 '1년'이다. 이런 방식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입시 제도다. 심지어 표준점수라는 통계적이고, 각 시험별 비교가 가능한 점수가 있음에도 그 성적을 다음 연도에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


출처 국민일보


기본적으로 대입시험은 1년에 한 번 이상 실시되어야 하고, 유효기간도 1년 이상이 되어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핀란드의 경우 1년에 두 번 대입자격시험을 실시한다. 그리고 모든 학생은 고2 하반기부터 시험을 칠 수 있고, 그때부터 18개월 안에 모든 시험을 치러야 한다. 즉, 고2 가을, 고3 봄, 가을, 3번의 기회가 있는 것이다(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pg.81). 미국의 경우에는 수능 시험이 거의 토익 시험 보는 것과 같다. 1년에 총 7번(2월, 4월, 6월, 7월, 9월, 10월, 12월) 시험이 치러지는데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본인이 원할 때 아무 때나 신청하고 가서 보면 된다. 다른 어떠한 제한도 없다. 그리고 대학에는 자기가 받은 성적 중 제일 잘 나온 성적을 제출하면 된다.


우리라고 이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미 우리나라는 6월, 9월 모의고사를 수능 출제기관인 평가원에서 출제한다. 그러면 고3 3월, 6월, 9월 모의고사와 11월 수능을 모두 평가원에서 출제하는 수능으로 만들고, 유효기간을 2년으로 하여 그중 제일 잘 본 성적을 제출하도록 해도 된다. 유효기간이 2년이면 재수생들의 부담과 스트레스도 줄일 수 있다. 아니면, 아예 미국 수능처럼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가서 보고, 필요하면 또 볼 수 있도록 하게 해도 된다. 이렇게 해서 수험생들과 재수생들의 불안감과 부담감을 덜어줘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은 너무나도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10대들에게 안겨주고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수능의 문제 유형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배우고, 연구(수학, 修學) 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는 게 목적인 시험이다. 특정 교과 수업에서 지식을 잘 축적했는지를 평가하는 시험은 학교 내신이다. 그래서 수능에서 한두 문제 실수로 합격할 수 있는 대학이 달라진다면 그건 본래 수능시험의 목적이 크게 왜곡되었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과감하게 바꿔야 한다. 국어, 영어, 수학은 지금 수준보다 훨씬 쉬워져야 하고, 탐구 과목은 없애던지, 문제 유형을 크게 바꿔야 한다. 미국 수능 SAT에는 탐구영역이 필수가 아니다. ACT(미국에서는 대입을 위해 SAT, ACT 두 시험 중 아무거나 보면 된다)에는 과학 영역이 있다. 하지만 과학 영역 문제를 푸는데 과학 지식은 거의 필요 없다. 대학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자료해석과 연구를 해나갈 수 있느냐를 평가하기 때문에 표와 그래프를 보고 의미만 해석할 줄 알면 된다. 거기 나오는 온갖 잡다한 전문 용어는 몰라도 된다. 이런 시험이 바로 수능 다운 수능이다.


ACT 과학 영역 문제 예시. 위 문제에서 "실험상 일정한 값으로 놓은 고정 요소"를 찾는데 Ixodes ricinus가 뭔지, nymphs가 뭔지는 전혀 알 필요가 없다.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이런 주장을 하면 꼭 변별력이 없어져서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하면 변별력이 없어진다고? 말했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한두 문제로 '변별'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시험이다. 기초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에서 어떻게 한두 문제로 학생을 가를 수 있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나라 수능은 너무 변별력이 높아 시험의 본 목적을 상실했다. 변별력을 낮춰야 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학업 성취도 최상위권의 학생들을 변별한다는 건 말도 되지도 않고, 그렇게 변별해서 대학을 보내는 건 더더욱 안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수능을 자격시험화하여 여러 평가요소 중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정시 제도의 문제


수능 성적표


21세기에 오지선다형 문제를 잘 푸는 것만으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수능은 아무리 성적이 높다 한 들, 대학 공부에 필요한 기초 역량이 탄탄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증명해주지 않는다. 그 학생이 경영학도로 성공할 친구인지, 훌륭한 의사가 될 사람인지 등에 대해 조금의 통찰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능을 제대로 활용한다면, 수능으로만 대학을 가는 정시를 완전 폐지하고, 다른 모든 전형에 평가 요소의 하나로 반영해야 한다.* 이렇게 정시 폐지를 주장하면 또 학종(학생부종합전형)의 폐해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나라 학종이 지금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언컨데 학종은 21세기에 걸맞은 인재 선발 방식이다. 이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하겠다.


여기서 교육부가 수시전형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없애라고 대학에 권고한 것은 정말 문제를 잘못짚은 것이다. 수능은 대학 수학에 필요한 기초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이고, 기초 역량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존재해야 한다. 부담을 줄인답시고 아예 시험을 없애겠다는 것은 대학 보고 대학에 올 기본 능력을 갖췄는지도 확인해보지 말라는 것과 같다. 부담은 이렇게 줄이는 게 아니다. 이상한 시험이 되어버린 수능을 고쳐나가야지 없앨 것이 아니다.
관련기사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803251325001


그 누구도 '이 수능성적으로 어디까지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기본 기준으로 삼게 되는 정시모집 배치표.


우리나라 정시 제도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초역량시험, 그것도 지필, 논술 시험도 아닌 오지선다형 시험만으로 대학을 가는 걸로 모자라, 그걸 또 한 번 꼬아 꼼수를 부리게 만든다. 무슨 말이냐고? 대개 사람들이 정시는 정직한 전형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성적순으로 깔끔하게 대학을 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시를 해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우리나라 정시는 그렇게 정직하고 깔끔하게 대학을 갈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 대학 명단이 가, 나, 다군으로 나눠져 각 군별로 하나의 대학에만 지원할 수 있다. 즉, 이 군에서 이 대학에 지원한 사람들끼리 경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 군에서 내가 원하는 대학에 어느 정도 성적이 되는 사람들이 지원했는지 판단하는 것이 나의 합불에 매우 중요해진다. 정직한 성적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다. 잘 판단하면 낮은 성적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학교를 합격할 수도 있고, 잘못 판단했다가는 충분히 합격 가능한 성적으로도 재수를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나라 수능은 유효기간이 없다. 떨어질 경우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크다. 여기서 입시 업체들이 등장한다. 업체들은 이 성적으로 각 군에 어느 대학에 합격할 수 있는지 통계와 분석을 제공한다. 이 역시 믿거나 말거나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다른 방법은 없다.


우리나라 정시 제도는 이상하게 군을 나누고, 지원 가능 대학 수에 제한을 두었다. 그래서 '정직하지 못하게' 고민을 하고, 사교육보다 더 안 좋은 입시 업체만 성하게 만들고 있다. 수능을 자격시험화하지 않고, 정시 제도를 유지할 것이라면 최소한 사람들이 믿듯 성적순으로 정직하게 대학 가는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각 군을 구분을 없애고, 지원 가능 대학 수를 늘리거나 제한을 없애야 한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합격 가능성 때문에 한 번 더 고민에 시달리지는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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