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열아홉 인생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
열아홉 인생이 행복하려면 결국 중고등학교 생활이 행복해야 한다. 학창 시절 우리는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 꿈을 찾고,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이어야, 열아홉 인생이 의미 있고 재밌는 시간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중등교육은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 어떤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그냥 '땜빵'식 처방을 내릴 뿐이다. 예를 들어, 자유학기제 같은 제도들이 그렇다. 사교육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시행한 전형적 땜빵식 제도다. 학생들을 그냥 한 학기 놀게 만들었을 뿐,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다. 땜빵식 처방은 우리 교육은 아주 조잡스럽게 만들 뿐이다. 원칙과 철학이 받쳐주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공교육을 개혁하려면 기본이 되는 철학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첫째, 스스로 노력한 만큼 성적이 나와는 평가 시스템이어야 한다.
둘째,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과 지식을 가르치고, 평가해야 한다.
셋째, 자신의 관심사를 찾도록 돕는 교육이어야 한다.
넷째, 학생 개개인 모두가 소중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 원칙들을 두고 보면 우리나라 중등교육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가 보인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에게 왜 사교육을 시키는지 물어보면 이렇게 답한다. 사교육을 하지 않고는 좋은 성적을 받기 어려워 진학에도 어렵고, 선행학습 없이 학교 수업만으로는 좋은 성적을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건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시험이 '미쳤다'는 뜻이다. 정상적인 학교의 정상적인 평가라며 이렇게 될 수 없다.
우리 중고등학교 시험이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는 낙오자가 나와야만 하는 교육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낙오자가 나오고, 성취도가 높은 학생은 소수여야 하고, 시험 성적이 우수한 소수만이 성공해야 하는 교육을 유지해왔다. 그래야 차별화되고, 선별된 '우수한' 아이들을 잘 관리하여 SKY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맞다, 우리 중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은 모두가 잘 교육받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을 특목고/자사고와 SKY에 보내는 것이다(유명한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진학한 사람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학창 시절 우리로 인해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피해를 본 친구들이 있지 않나?).
그리고 시험을 잘 봐서 SKY에 가고, 성공한 사람들은 또다시 "지필시험이야 말로 지상에 존재하는 가장 공평한 평가 방식"이라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왔다. 그래서 시험, 시험 거리고 시험은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이렇게 우리는 아직도 일제 시대, 학력고사 시대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지금 교육 정책을 만드는 한국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한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의 절반 이상이 90% 이상의 성취도를 보일 수 있다는 걸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90%의 성취도는 오직 상위 5% 정도만이 가져야 하는 금기의 영역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교육이 없으면 안 되는 중고등학교 교육을 만들어왔다. 이런 교육으로 우리는 한창 자유롭게 사고하고, 꿈을 탐색해야 할 학생들에게 서로를 싸워서 짓밟아야 할 경쟁자로 만들었고, 어린 나이에 불필요한 공부에 지쳐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시간을 내신에 받치지 않으면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방과 후 시간마저도 모두 학원으로 보내 진정한 자기 꿈을 찾고 개발할 시간을 빼앗아 버렸다. 그러는 동안 우리 10대들은 21세기에 필요한 창의성과 진취성을 잃어갔다. 이런 교육은 잘못됐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당연하다고 믿어왔지만 절대 당연하지 않은 사고방식을 깨야 한다.
과감하게 중고등학교 전 과목을 절대평가화 해야 한다.
학교 수업만 듣고 스스로 복습하고 공부해도 충분히 90% 이상의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내신 시험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사교육이 없어지고, 낙오자 없이 모두가 노력한 만큼 성취하는 학습 환경을 만들 수 있다. 또 이런 시험은 공부를 좀 더 맛깔나게 만들 수 있다 순위를 매겨 성취 정도를 평가하는 상대평가는 1등을 제외한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내가 아무리 시험을 잘 봐도 나와 비교되는 상대방들이 존재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계처럼 공부하는 인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무조건 꼴찌를 만들어내며 최하위권 학생들에게는 다시 공부할 힘조차 빼앗아간다. 잔인한 방식이다. 하지만 절대평가는 자기 성취도와 자기 노력의 싸움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없애고, 학생들을 좌절시키지 않는다.
계속 말하지만, 기초역량평가(수능)나 암기된 지식 평가(내신)로 인재를 뽑는 시대는 끝났다. 한국 대학도 바뀌어야 한다. 미국 대학들은 시험이 쉽고, 절대평가여도 우수한 인재들을 잘만 찾아낸다!
중고등학교 시험 평가방식이 바뀌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 우리의 평가 방식이 부유한 가정의 학생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다. 돈이 많을수록 수준 높은 사교육을 동원하고, 무조건적인 반복에, 암기를 계속하면 자녀의 성취도를 높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교육은 '과정에서의 평등'이란 아주 기초적인 정의를 무너뜨리고 있다. 국가가 '균등한 기회 부여'를 목적으로 제공하는 기초 교육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정 배경에 의한 격차를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신 시험의 절대평가화 뿐만 아니라 내신 성적에서 평가 대상이 달라져야 한다. 지금까지 교과서 속 지식을 외워 시험을 보는 Knowledge-based 시험에서 벗어나 능력 중심(Skill-based)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학원에서 가르칠 수 있는 암기 시험이 아니라, 탐구력, 발표력같이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바로 다음 원칙과도 연결된다.
암기된 지식이 필요한 시대는 끝났다. 모든 '지식'은 이제 스마트폰 검색이면 5초 내에 찾을 수 있다. 이제는 조금 '다른' 능력이 필요하다. 학교도 이제 교사가 지식 전달만 하는 강의식 수업을 끝내고, 내용을 외워서 평가하는 내신 시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런 방식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쓸모도 없다. 내신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도 몇 달만 지나면 대부분의 내용을 까먹어 버리는 건 우리 모두 경험한 바이다. 이제 수업에서도 탐구, 발표, 토론을 진행하고, 참신한 아이디어, 논리적 탐구 진행, 자신감 있는 발표, 조리 있는 글쓰기가 평가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수업은 가능하다. 이미 다른 나라의 중고등학교에서는 수업에서 진행되는 탐구와 과제, 마지막으로 이를 바탕으로 한 발표가 성적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필시험이 성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미만이다. 탐구와 과제에서는 주제 선정, 논리적 전개 등이 평가 대상이 되고, 과제물이 글쓰기일 경우 글의 구성과, 문법 등도 평가 대상이 된다. 그리고 발표에서는 목소리의 크기, 제스처, 시선 처리(eye contact)까지도 평가 대상이 된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미 10년도 전에 미국 중고등학교는 과목을 불문하고 이런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들이 일찌감치 이런 교육으로 전환한 이유는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이 바로 이런 창의적 탐구력, 설득력 있는 발표력, 글쓰기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아직도 오지선다형 암기 시험에 머물러 있다. 하루빨리 20세기의 암기식 교육(과 평가)을 버리고, 21세기에 맞는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쓸 인재가 없다는 말을 자주 한다. 왜냐하면 정말 이 시대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청년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 학교가 우리 청년들을 그렇게 만들어 왔다. 21세기에 필요한 능력은 갖추지 못한, 시키는 대로 교과서만 외울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온 것이다. 심각한 문제다. 국가경쟁력을 위해서도 우리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
중고등학교에서 암기식 강의가 아닌 시대에 맞는 수업을 하면, 학생들도 바뀐다. 분명히 바뀐다. 선진적인 학교의 10대들은 더욱 진취적으로 스스로 꿈을 찾고 키워나갈 것이다. 하루빨리 우리 중고등학교를 이 시대에 맞는 학교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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