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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Feb 24. 2019

아홉살 인생, 남들로부터 자유로웠던 우리

1장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우리

모든 어린이들은 예술가로 태어난다.
하지만 자라면서 그 예술성을 유지시키는 것이 문제다.

                                                           파블로 피카소




     하지만 우리에게도 타인의 욕망과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던 시절이 있었다.


     나도 자유롭게 꿈꾸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내 생애 첫 꿈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제작자였다. 월트 디즈니 '라이온킹'을 보고 사자가 너무 멋있어서 그랬다. 그래서 사실 그전에 정말 최초의 꿈은 사자 그 자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네 발로 뛰어다니며 '어흥 어흥' 했었는데,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사자가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사자 박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주말만 되면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 가서 사자 사진이 있는 책은 다 찾아 봤다. 집에는 동물도감이 가득했다. 라이온킹도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봤다. 그러다 다른 디즈니 만화영화들도 즐겨 보게 되었고, 이내 내 꿈은 디즈니에 입사하여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이 되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는 다른 만화에서 찾기 힘든 엄청난 매력이 있다. 그건 바로 각 작품마다 들어있는 어린이들을 향한 메시지였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나온 '카'라는 작품은 '1등이란 명예, 트로피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정말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한평생 피스톤 컵 챔피언 트로피만을 위해 살아온 주인공, 라이트닝 맥퀸은 남들로부터의 인정 받는 명예만이 인생이 전부라고 믿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이 주인공은 마지막 경기 장면에서 결승선을 1등으로 통과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건다. 

결승선 통과 직전에 멈춰선 라이트닝 맥퀸 (출처 월트디즈니픽사)

     그리고 돌아가 반칙으로 다친 선수를 뒤에서 밀며 결승선을 통과한다. 결국 트로피는 반칙으로 유력한 1등 후보를 다치게 하고, 라이트닝 맥퀸이 뒤돌아감으로써 1등을 하게 된 인물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트로피를 깡통 던지든 던져준다. 그리고 모두가 그를 떠나버린다. 항상 그냥 1등을 하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 어린 나에게 그 장면은 적잖은 충격이었다. 트로피라는 것은 사실 껍데기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진짜 가치는 트로피로 상징되는 껍데기 뿐인 성공으로부터 나오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 영화가 가르쳐줬다.


     디즈니에서 일하겠다는 꿈은 나에게 여러모로 열심히 살 원동력을 제공했다. 진지하게 디즈니 본사에 입사하기 위한 목적으로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아직도 디즈니는 내 마음 한구석에 있음을 느낀다. 뉴욕주립대 1학년일 때 구경 간 잡 페어(Job Fair, 취업박람회)에 디즈니 본사가 와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가 이런 추억을 가지고 산다.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과학자, 소방관, 수학교수, 축구선수 같은 꿈들을 자유롭게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꿈들은 우리 삶을 즐겁게 해줬고, 열심히 살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나랑 같이 한일고를 졸업한 절친 중 하나는 기차기관사가 꿈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기차가 나아가는 원리에서부터 조종 방법까지, 기차에 대한 모든 것을 탐구했다고 한다. 지금 이 친구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다닌다. 하지만 아직까지 마음 한구석에 그 꿈을 간직하고 있다. 언젠가는 관련된 일을 꼭 한 번 해볼 거란다. 글을 적다 보니 초등학생 때 수학교수가 꿈이었던 한 친구도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 친했는데 지금은 어떤 꿈을 좇으며 지내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교육 속에서 어느 순간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어릴 때 단순히 멋있어서, 순수하지만 온전한 끌림에 가졌던 꿈이 하나씩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그걸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라는 과정에서 조금씩 조금씩 꿈들을 다 손 봐줬다. 순수한 어린 꿈에 대해서 아이가 별 볼 일 없는 직업에 '눈독'을 들이면 굳이 그런 것보단 이런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면서 꿈을 바꿔놓으려고 했던 부모들도 있었다. 어차피 시간이 흘러 헬조선이 바꿔줄 아이들의 장래희망인데 말이다. 부모들이 우리 헬조선을 너무 띄엄띄엄 본 것일까.



     내가 자라면서 만난 세상의 첫 시선은 반기문이었다. 그때 반기문은 누구에게나 영웅이었다. 그 당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꿈이 UN 사무총장이었는지 생각해보면 그의 영향력은 정말 대단했다. 나도 반기문 같이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외교관은 내 꿈이 되었다. 그 역시도 내게 달릴 원동력을 제공했다. 그와 같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서 꾸준히 전교 5등 이내에 들기 시작했다. 전교부회장, 회장 다 휩쓸었다. 내 영어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토익 900점이 나왔다. 아주 어린 나이에 람사르총회라는 큰 국제회의 개막식에서 대통령과 2천 명이 넘는 참가자 앞에서 발표를 했다. 그 이후 난 대중 앞에서 말할 때 긴장하지 않는다. 등등. 이렇게 실제로 난 성장했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타인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그 순수하지만 온전한 즐거움을 되찾지 못했다.


     아홉살 인생.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시기는 진정한 '나'로 살았던 마지막 순간일지도 모른다.




#1장타인의욕망을욕망하는우리 #열아홉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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