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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Feb 26. 2019

우리가 허망함을 느끼는 이유

1장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우리

#1장타인의욕망을욕망하는우리 #열아홉인생

강준상이 없잖아!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고! 허깨비가 된 것 같다고 내가!
어머니 뜻대로 분칠 하시는 바람에 제 얼굴이 어떻게 생겨 먹었는지도 모르고,
근 50 평생을 살아왔잖아요! 언제까지 껍데기만 포장하며 사실 건데요?!
언제까지 남들 시선에 매달리며 사실 거냐고요?!

                                                    드라마 [SKY캐슬] 중에서




     열심히 살다가도 문뜩 허망함을 느낀다.


     그건 우리가 내 인생이 아닌 남의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에 매달리며 산 인생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국 허망함으로 끝난다. 탈락하면 탈락한 대로 허망하고, 합격하면 합격한 대로 허망하다. 이때 곧바로 허망함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아직 어린 우리는 대부분 그러지 못하고 큰 실수를 범한다. 이런 허망함이 아직 더 큰 성공을 맛보지 못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다시 위로 고개를 들어 다음 성공, 합격과 타이틀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살다 '강준상' 같은 사람은 50이 되어서야 자신의 삶이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왔음을 깨달은 것이다. 행복하고 온전한 내 인생을 위해 우리는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가 처음 그 허망함을 느끼고 생각에 잠겼던 건 국제중을 준비했을 때였다. 난 내가 다니던 학교, 내가 살던 동네에서 누구보다 잘난 학생이었다. 전교회장이었고, 성적은 꾸준히 전교 5등 안이었고, 국제회의에서 한국 대표도 해봤다. 희한하게 나는 이때도 '1등'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는 자유로웠다. 전교 5등 안이면 만족했다. 그 안에서야 등수는 서로 계속 앞치거니 뒤치거니 늘 바뀌었고, 나는 전교회장이기도 하고 다른 것도 있어서 그런지 굳이 1등이 아니라고 열등감을 느끼진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학생에게 이룰 것이 없는 상태라는 것은 행복한 상태가 아니다. 뭔가 더 해야 할 것 같고,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미 그렇게 병든 상태인 것이다.


     그런 내게 국제중이 나타났다. 난 정말 이곳에 가고 싶었다. 여기만 가면 난 그 누구보다 월등히 우월해질 수 있었고, 사람들은 날 대단하다고 인정할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떨어졌다. 하지만 국제중을 준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이미 대단해져 있었다.


내가 가고자 했던 국제중학교 출처: 네이버 블로그 블루웨이


     모두가 나를 특별하게 봤다. 그리고 나는 이런 시선을 매우 즐겼다. 수학여행을 가서도 난 선생님들이 쓰는 방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친구들은 나랑 같이 못 노는 걸 아쉬워하면서도 대단하다고 했다. 난 자부심을 느꼈다. 체육시간 다리를 뻗고 앞으로 숙이기를 하는데 내가 제일 뻣뻣했다. 체육 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고 했다. 난 자부심을 느꼈다. 국제중을 준비하며 오후 4시에 학교를 마치면 바로 학원으로 가서 밤 12시에 마쳐 집으로 왔다. 많은 날 저녁을 먹지 못하고 삼각김밥과 음료수로 때운다는 사실에서, 또 그걸 대단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의 반응에서조차 나는 특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정도인데, 합격을 하면 사람들은 날 얼마나 더 대단하게 생각할까. 난 반드시 국제중을 갈 것이다. 매일 주문을 외웠다.


     그 준비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당시 내 노력 그 자체는 대단했다. 지금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정도 집중력과 집념을 가지고 공부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심지어 내가 고3일 때도 그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3장에서 언급하겠지만 그땐 공부라는 것이 특정 수준 이상 할 필요가 없는 것이란 걸 깨달은 후였다). 어쨌거나 나는 창원에서 유일하게 국제중 준비반을 운영하는 학원에서 꼴찌로 시작해, 그중 유일한 1차 합격자가 되었다. 기세등등했다.


     좋은 경험도 많이 했다. 면접을 준비하며 정치, 경제, 역사, 외교, 사회, 과학, 환경, 등 거의 전 분야에 대한 넓고 얕은 지식을 쌓았고, 모든 정보와 주장에 대해 한 번 더 꼬아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인 것 같다.


     신기한 경험도 했다.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사교육 최고봉이란 사람들을 봤다. 1차 합격 후 합격자들을 모아 학원 본사에서 2주에 걸쳐 특별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곳에 초빙된 대한민국 1타 강사들은 소름 끼치게 잘 가르쳤다. 도대체 뭐가 다를까 했는데, 정말 달랐다. 뭐라 그 방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번 듣고 까먹을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 내용이 기억날 정도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이런 교육을 소비하는 사람들을 봤다. 우리 가족은 그때 현대 트라제를 타고 갔는데, 수업 당시 그 건물 주차장에 국내차는 우리 차밖에 없었다. 그곳에 주차된 모든 차는 어린 내 눈으로 보아도 BMW, 아우디, 볼보, 그중에서도 최최고급 모델들이었다. 지금이야 도로에서 외제차를 보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2009년 당시만 해도 외제차를 보면 '우와'하고 쳐다보던 때였다. 그 외제차 중에서도 제일 좋은 차들이 그 건물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다. 그 수업을 듣는 2주는 대한민국 상위 1%의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이라는 현실을 봤다.


     긴 이야기 끝에 난 탈락했다. 경남권 유일의 1차 합격자라는 영광도 잠깐(1차에 혼자 합격하고 같이 준비한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부러움, 주변으로부터의 축하, 그 기쁨은 정말 순간이었다), 2박 3일간의 면접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들려온 소식은 '불합격'이었다. 정말 허무했다. 분노? 아니다. 슬픔?도 아니었다. '불합격'이란 단어를 보고 수개월 동안 단 하나의 감정을 느꼈고 그건 허망함이었다. 그리고 단 하나의 생각을 했는데, "도대체 뭘 위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지"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난해했다. 도대체 뭘 위해 그렇게 공부했는가.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남들보다 대단해지기 위해. 그런데 사람들에게 난 더 이상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같이 안타까워한 사람도 있었고, 위로해주는 사람도 있었고, 나에게 지금까지 이룬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의 진심이 무엇이든 간에 난 창피했다. '수학여행 가서도 공부한다고 온갖 폼은 다 잡더니'하며 얼마나 비웃을까. 그들 앞에서 실패자가 된 나 자신이 너무나도 쪽팔렸다.


     그리고 허망했다. 긴 시간 고생 끝에 내가 얻은 것은 뭔가. 합격했다면 어땠을까? 그렇게 해서 결국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면 그건 보람 있었을까. 그 역시 한순간 화려했다가 사라지는 싸구려 향수 같지 않았을까. 남들의 시선에 끌려 열심히 달려온 끝에 남은 건 타인의 시선에 지배당한, 심지어 그것도 실패한, 졸렬한 우월의식과 열등의식만으로 가득 찬 깡통 같은 '나'였다.



#1장타인의욕망을욕망하는우리 #열아홉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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