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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청년 Feb 23. 2019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우리

1장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우리

#1장타인의욕망을욕망하는우리 #열아홉인생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자크 라캉



출처 YTN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왜 우리나라의 10대들은 삶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까. 이건 우리나라에서 비단 10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20대도, 심지어 30대 이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건 우리가 나의 욕망이 아닌 남들의 욕망을 좇고, 내 인생이 아닌 남들의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가치관이 세워지지 않은 어린 시절 우리는 타인의 욕망으로 나 자신을 채운다. 타인의 가치관을 내 가치관으로 삼고 타인의 시선을 계속해서 의식한다. 하지만 타인의 욕망과 시선을 좇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자라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갓난아기가 배밀이를 하는데 일어서서 걸으려고 애를 쓰자 엄마 아빠가 막 박수를 치고 웃으며 좋아라 한다. 아기는 그 반응이 좋다. 아기가 걷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망이 곧 아기 자신의 욕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한다. 그리고 결국 서서 걷게 된다. 초등학교 1학년이 받아쓰기 100점을 받아왔다. 부모님이 좋아한다. 20점을 받아왔다. 부모님이 싫어한다. 아이는 받아쓰기는 100점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고,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렇게 남이 좋아하는 것을 좇는 행위가 일정 시기가 지나면 멈춰야 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욕망과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것이 부모 같은 타인의 욕망과 분리되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 10대들에게는 이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 부모와 주변 모든 사람들이 특목고를 가면 대단하다 생각하니 특목고를 가고 싶어 하고, 서울대를 가면 박수쳐주니 서울대를 가야 하는 줄 안다. 그리고 이 사회가 변호사, 의사가 그렇게 좋다 하니 꿈도 그렇게 바뀐다. 이렇게 타인의 욕망을 자기 욕망으로 착각하고 사는 것이 20대, 30대, 심지어 그보다 더 오래 이어지기도 한다.

JTBC 드라마 [SKY 캐슬] 속 서울대 의대 합격증


     심각한 현상이다. 여기서 특목고를 가라고, 서울대를 가라고 강요하는 부모님과 싸우며 갈등하는 아이들은 그나마 발전한 아이들이다. 최소한 부모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일치하지 않음을 인식하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라고 덜 불행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부모가 자신들의 욕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갈등이 폭발하고 그 아이는 정신병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많이 일어난다.


     나라고 10대 시기에 타인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것은 아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는 반장, 부반장이 아닌 봉사위원을 뽑았는데, 난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단 한 번도 봉사위원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전교부회장, 6학년 때는 전교회장을 했다. 공부도 2학년 때까지는 구구단을 반에서 꼴찌로 외울 정도로 안 했지만, 3학년 때 반 2등으로 시작해 이후에는 꾸준히 전교권에서 놀았다. 그리고 5학년 때 이미 창원에서 열린 람사르총회라는 국제회의에 한국 청소년 대표로 참석했고, 6학년 때는 세계호수회의에 초청되어 중국 우한에 다녀왔다. 내가 이 모든 것을 하고자 했던 이유는 단순히 사람들이 전교회장을, 공부 잘하는 애를 부러워하고, 자신보다 우월하게 바라보며, 대단하게 생각하고, 감히 무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람사르총회 같은 것들은 당시 내가 외교에 관심이 많았기에 했다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초에 왜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는 책이 있었다. 우리 세대에게 반기문을 위인으로 만들어놓은 베스트셀러였다. 나는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칭송하는 그 사람처럼 되고 싶었다. 난 타인의 욕망을 철저히 따랐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타인의 욕망을 실천하는데 성공하는 소수의 아이들 중 하나였다. 타인의 욕망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특목고를 가지 못하고, 서울대를 가지 못해서 생기는 스트레스도 심할 테지만, 사실 불행하기는 타인의 욕망을 성취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욕망은 성취해본들 곧 공허해지기 때문이다.


     주변으로부터 받는 박수와 부러움은 성공을 맛본 그 찰나의 순간, 날 기쁘게 하고 사라진다. 가끔 내가 이걸 위해 이렇게 열심히 했나 싶을 정도로 허무함이 들기까지 한다. 하지만 살면서 자신이 욕망이 무엇인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들은 대부분 남들로부터 더 큰 인정과 부러움을 갈망하는 것으로 그 허무함을 해소한다. 이렇게 성공한 한국의 아이들은 타인의 욕망이란 굴레에 빠져 아주 오랫동안 타인의 욕망과 자신의 욕망을 분리해내지 못한 채 자기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자기 인생을 사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부모(타인)의 꿈을 대신 실현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삶은 행복하려야 행복할 수 없다.


     서울대가 가고 싶은가? 자사고가 가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내가 서울대를 가길 바라는 것이 과연 나인지, 아니면 나의 부모인지, 아니면 막연히 세상의 부러움을 사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1장타인의욕망을욕망하는우리 #열아홉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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