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차
엄마, 우리 집에 실 있어?
어제 오전이었다. 실을 달라던 아이가 갑자기 자기 방 앞으로 오란다. 그래서 갔더니만,
방문 앞에 떡 하니 안내판을 만들어 붙여놓은 게 보였다. <출입 가능>이면 들어오고 <ON AIR>로 되어 있으면 들어오지 말란다. 방에 들어가서 안 나올 때마다 내가 "아들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싫었던 거다. 아이의 취미는 블록기차나 종이모형 기차 만들기다. 그리고 만든 기차로 영상 찍기다. 실제 음악을 넣기도 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담기도 한다. 마치 감독이 된 것처럼 엄청 열심히 여러 번 찍는다. 그런데 가끔 내 목소리가 그 영상에 들어가는 게 문제였던 거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엄마, 이제 알겠지?'였다.
열 살이 되더니 방문 닫고 들어가는 일이 잦아졌다. 혼자서 뭐 하나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서 가끔 뭐 하나 불렀는데 그게 방해가 되었나 보다. 조금 서운하기도 하지만 이제 그만큼 컸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문을 잠가버리기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엄마도 배려하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게 기특하다. 방해하지 말라는 표현을 예쁘게 해 줘서 고맙다.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이를 보며 나는 어떻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지 떠올려 보게 되었다. 우선 나는, 남편과 아이를 보낸 아침이면 마음이 편해진다. 따듯한 차 한잔을 마시고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나면 아이가 오기 전에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이다. 그 시간을 최대한 아껴 쓴다. 유튜브를 열면 그날은 그 시간이 다 날아가지만 책을 펴면 한 권을 다 읽을 수 있다. 서평이나 자유글을 쓸 수도 있다. 가끔은 산책도 한다. 혼자 먹어도 건강하게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한다.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사람 많은 곳에 가면 기 빨리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충전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이것저것 생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올해가 가기 전에 집에 있는 책들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책장이 새로 필요할 것도 같고 책장을 검색하고 있으면 당장 사지 않아도 기분이 좋아진다. 글을 쓰고 싶은데 어떤 글을 쓸까 고민도 해보고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해볼까 하고 생각만 해도 설렌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나는 에너지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