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차
나는 쓰레기가 생기면 집에 두기 싫어서 되도록 빨리 버린다. 집안 쓰레기는 빨리 버리면서 감정 쓰레기는 왜 빨리 버리지 않는 걸까?
오늘 치과 정기검진을 다녀왔다. 타고난 치아가 음식물 찌꺼기가 잘 끼는 스타일이라서 치간칫솔과 치실을 꼭 쓰라고 하셨다. 잇몸이 너무 약하다며 잇몸 마사지도 해주었다. 몸만 주인을 닮은 것이 아니라 마음도 주인을 똑 닮았나 보다. 감정찌꺼기가 잘 끼고 멘탈잇몸도 약하다. 감정찌꺼기가 쌓이지 않게 할 치간칫솔과 치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할 말을 제때 못하고 휘둘리고 당하며 살았던 시절이 길었다. 목구멍까지 걸려있던 말을 조금이라도 하게 된 것이 몇 년 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억눌렸던 마음이 마치 억울하게 살아온 세월을 한 번에 보상받으려는 듯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과 상황에 대해 자꾸 으르렁대는 자신을 발견했다. 언젠가부터 마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맹견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무조건 큰소리로 화를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화가 나를 행복하게 하지 않았다. 이제 으르렁대는 대신 현명하게 대처하고 싶다. 반응도 대응도 아닌 그냥 무반응하고 싶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며 편안하게 미소 짓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단번에 익힐 수 없는 고수의 방법일지 모른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지금 나는 하수에서 중수, 고수로 올라가는 레벨 업 단계에 있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분이 나를 엄청 사랑해서 내면 단단한 사람으로 키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었나 돌아보았더니, 선택적 무례에 대한 반응이었다. 잘해주면 당연한 줄 알고 가만있으면 나를 함부로 대해도 되는 줄 아는 사람이 있다. 자기는 되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는 심보를 가진 사람이 있다. 또 자기 기준에서 넘사벽의 실력이나 명예를 가진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추고 자신이 더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선택적 무례를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솔직한 사람이라며 뼈 있는 무례한 말을 당당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미성숙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사람을 현명하게 상대할 내공이 아직 부족한 나라서 자극하는 대로 반응한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예전에 오은영 박사가 한 상담 프로그램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건네는 무의미한 자극은 강물처럼 흘려보내세요."라고 조언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순간에는 '맞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삶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요즘 나를 자극했던 일들이 내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 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올해 읽었던 책 <렛뎀 이론(The Let Them Theory)>에는 LET THEM과 LET ME가 나온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은 LET THEM 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LET ME 하라는 이론이다.
그렇다. 그들의 감정은 내 몫이 아니다. 내가 그 사람을 어찌할 수 없다. 내버려 두자.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할, 나를 마음 편안히 살게 하자. 내 할 일을 하자. 나에게 집중하자.
너무 많은 스위치를 다 켜고 살았다. 이제 OFF 할 건 OFF 하자.주변 소음을 끄자. 나와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만 ON 하자.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나를 위해 아껴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