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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에 녹아든 것이 많은 사람

9일 차

by 착한별


자기 안에 녹아든 것이 많아야
그로부터 창의적인 것이 나온다.


융합(融合)의 융(融)은 '녹을 융'이다. 2019년 겨울, 나에게 그림책을 처음 알려주신 선생님이 해주신 말이 요즘도 가끔 생각난다. 자기 안에 녹아든 것이 많아야 그로부터 창의적인 것이 나온다는 말은 진짜다.



그림책 한 권만 보더라도 내가 살아온 경험, 내가 알고 있는 지식 등으로 달리 읽어낼 수 있어서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서평을 쓸 수 있다. 이곳 브런치 글들도 저마다 자기 안에 녹아든 것을 써내는 것일 테다.




러시아어 통역사 시절은 힘들고 싫었지만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를 배울 수 있었다. 꾸역꾸역 해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뭐든 애쓴 것은 남는다. 트리즈(TRIZ:창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체계적 방법론) 부서에서 러시아 트리즈 전문가들과 일했던 경험은 나의 창의성을 키우는 시간이었다. 그때 내 안에 녹아든 것들이 지금의 나에게도 남아있다.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참 많네요,라고 내게 말할 때가 있다. 그러면 난 속으로 웃는다.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아이디어 내는 부서에서 통역하던 시간들이 나를 이런 사람으로 키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육아의 시간에도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하나의 점이었던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열 살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매일 신기하다. 열 살 엄마는 처음이라서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지만 육아 경험치를 내 안에 녹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떤 책을 읽을 때면, 어떤 상황을 만날 때면, 어떤 사람/사물을 볼 때면 함께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내 안에 녹아든 것들이 하나씩 손을 들고 나도 그것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하는 듯하다.



오늘은 <책 읽는 집>에서 동시를 만나는 두 번째 날이었다. 내가 새로이 보고 듣고 느끼고 알게 되는 것들은 내 안에 이미 있던 것들과 어우러진다. 그게 바로 융합일 것이다.


세상에는 아직 내가 모르는 게 많다. 내 안에 녹일 게 많다.


아직도 궁금하고 알고 싶은 게 많아서 매일 감탄하는 나는,

죽음 앞에서 죽음까지도 관찰했던 고 이어령 교수처럼 그 순간까지도 호기심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죽어서도 말로만 듣던 이곳이 천국이고 지옥이구나 할 것 같다.


자기 안에 녹아든 것이 많아서 쓰고 써도 또 쓸 말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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