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이해하기는 어렵고 오해하기는 쉽다.사람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직접 겪어보지 않아서 혹은 잘 몰라서 오해할 때도있다. 그러니잘 모르면서 섣불리 내 생각을 말하는 건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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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만 하셔서 참 좋겠어요.
인하우스 통역사 시절에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통역만이라니! 너무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그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답을 못했다.
원래 통역이라 함은 회의나 행사 전에 사전 의뢰가정식 절차이고 정확한 통역을 위해자료도 미리 보내서 통역사에게 준비할 시간을 준다고 알고 있다. 통역시간도 2시간 이상 길어질 경우 다른 통역사와 교체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가성비를 따지는 회사라는 곳은 그렇지 않다. 고 퀄리티의 실력을 보장하는 시간당 몇 십만 원인 비싼 통역사는 정말 중요한 일회성 행사 아니면 쓰지 않는다. 적당한 실력의 쓸만한 통역사를 월급 주고 고용해서 언제든지 불러서 사용한다. 그리고 자료들을 미리 받아서 공부할 시간도거의 주지 않는다. 대부분 대외비 문서들이라 회의 도중에 처음 오픈하는 자료들도 많다. 나와 함께 일하는 외국인이 인심 써서 자신의 발표 자료를 미리 주는 경우도 있지만 회의 직전까지 자신도 수정하느라 회의 시작 10분 전쯤 던져주는 경우도 많았다.PPT는 100장인데 주어진 시간이 10분이면 초능력만이 답이다. 인하우스 통역사를 고용한 회사에서는통역사를잘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당연히 잘하길 바란다.
계속 집중해야 하는 통역사는 에너지 소비가 크다.누군가 하는 말을 기억해서 모국어에서 모국어로 그대로 옮기는 일을 1시간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릴 텐데 두 개의 언어로양쪽에 통역해야 하는 일은 머리가 터질 듯하고 토 나오는 일이다. 실제로 통역 후에 점심도 안 먹고 싶은 날도 많았다. 실수하거나 못 할까 봐 드는 불안 스트레스도 엄청나다. 내용 이해도 이해지만 모르는 단어가 언제든 나올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그래서 회의 시간이 아닐 때에는 회의했던 자료들의 단어 정리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다. 퇴근 버스에서 '내일부터 출근하지 말까?'를 수없이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몰래 운 적도 많다.
그런 나에게 화장실에서 만난 ××대리가 통역만 해서 좋겠다고 한 것이었다.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돌아서니 내 업무의 특성을 몰라서 그런 말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야근까지 해도 늘 일이 밀려있는 기획팀 직원이었던 그녀는 통역만 하고 통역 안 할 때 쉬는 것 같은 내가 부러웠을 수도 있다. 사실 나도 그 사람의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모르니까 그런 말 한 걸 이해할 수 없었던 거다.
집에 있어서 좋으시겠어요. 애가 하나라서 좋겠어요.
'난 힘들고 넌 안 힘들어 보인다'는 식의 표현은 엄마 사람이 된 후에도 꽤 들었다. 집에 있어서 좋겠다고? 집에 있어도 할 일 많고 시간이 모자란데? 애가 하나라서 좋겠다니 여러 명 키우는 것만큼 힘든 아이도 있는 법이다. 왜 사람은 자기 상황만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할까?대부분의 사람은내가 더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든 오해도 나를 우선에 둬서 그런 걸까?
회사 다닐 때 꼰대 같은 부장님이 싫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원들 얘기하는 남편 모습에서 그 부장님을보았다. 가정에 참 잘한다는 소문이 있던 부장님. 내남편도 나와 아이에게는 좋은 사람이다.기분이 묘했다.
신혼 초에 시어머니의 눈은 늘 당신 아들에게 가 있었다.나는 투명인간인가 싶었는데 내가 아들을 낳아보니 왜 내 자식만 눈에 더 잘 보이는지 알겠다. 남편이 시어머니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니 내 아들이 누군가의 남편이 될 모습도 상상이 되었다. 내가 30여 년 키우다가 며느리에게 인수인계하면 며느리랑 살 날이 더 많을 텐데며느리에게 미안하지 않도록 내 아들을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출산전에는 친구가 모임에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 좀 불편했다. 그런데 아이를 데리고 나가지 않으면 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아이를 낳아 키우는경험을 하고서야 알았다.
여동생은 나보다 10년 먼저 결혼했다. 아이 둘 다 엄마가 거의 키워줬다는 걸 아는데 내가 아이를 낳았을 때 엄마는 자꾸 애를 어떻게 키웠는지 다 잊어버렸다고 해서 서운했는데 내가 아이를 9살쯤 키워놓고 보니 아기키우는 법이 생각 안 난다. 이제 누가 아기를잠깐만 봐달라고 해도 못 볼 것 같다.
그렇게 내가 한 오해들은 가끔씩, 조금씩, 이해로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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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고 벌린 입을 '이'하고 크게 벌리면!
사람이 그렇다. 내가 안 겪어봐서도 모르고 해 봤는데도 다 잊어버려서 모르고등의 다양한 이유로 이해하기 전에 오해할 순간이 참 많다.그래도 오해보다는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다.나의 생각과 마음을 '오'하고 입을 벌린 만큼만 썼다면 크게 '이'하고 벌린 만큼으로 늘려보자. 그러면 오해가 이해가 되기 쉬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