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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Sep 06. 2024

은방울꽃 부케

백오십 개 가지고 나온 택배가

이제 열세 개 남았다

흐르는 땀

계단을 오르는 지친 발자국

헉헉 몰아쉬는 숨


지금쯤 아내는 무얼 하고 있을까

된장찌개를 데우고 또 데우다가

애써 기다리는 마음을 접고

개구쟁이 두 녀석을 씻기고

재우고 있겠지


여보,  나는 은방울꽃이 참 좋아

종소리가 날 것만 같아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은방울꽃 부케가 잘 어울릴까


우리가 같이 살면

기쁜 일이 생길 때마다 작은 종이

하나씩 울릴 거야


어느 날엔 한 개도 안 울려서

속상해하고

또 어느 날엔 두 개가 함께 울려서

마음이 셀레일 테고


하지만 걱정 말아요

머리에 흰 눈 소복이 쌓이는 날에

은방울꽃 작은 종이 일제이 울리며

행복한 노랠 불러줄 거야

그때쯤 우리가 걸어온 길에

은방울 꽃이 한가득

피어 있을 테니까


이제 택배는 단 하나 남았다

흑임자 인절미와

해풍을 견딘 쑥을 듬뿍 넣은 팥앙금 쑥떡

꼬르륵 배가 고프다

아, 감사합니다. 일층이구나

현관 앞에 살며시 떡 상자를 놓아두고

시계를 본다.

뚜뚜뚜뚜, 자정이다


당신은 은방울꽃을 닮았지

동글동글한 얼굴도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도

이 일도 몸에 익으면

좀 더 일찍 집에 갈 수 있어


한강을 건넌다

어두운 강물 위로

쏜살같이 달린다

아, 집으로 간다


한참 늦은 밤

된장찌개 따끈하게 데워

마주 앉은 두 사람

서로의 지친 눈을

가만히 바라보다

빙그레 웃는다


작은 식탁에 한 송이 두 송이

은방울꽃이 자꾸만 피어난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오고

꽃은 두 사람을 노래한다


그들은 오늘의 삶을 춤춘다




은방물꽃이 핀 들을 산책하는 두 사람 202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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