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하루종일 하늘을 바라본 날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먹구름을 뒤로하고 빛을 향해 달린다. 자동차가 멈춘 곳 간월도에는 푸른 바다 위에 장엄한 빛이 축복처럼 쏟아지고 하늘엔 흰구름과 회색구름이 춤추듯 흘러간다. 바다 위로 난 길이 바다와 하늘 사이에 놓여있어 사람들은 그 위를 걸으며 바다가 되었다가 하늘이 된다.
모두들 표정이 반짝이는 파도처럼 밝다. 그중에 제일 밝은 사람이 아마 나인 듯하다. 바람은 외투를 여미지 않아도 좋을 만큼 상쾌하다. 바람이 머리칼을 흩트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발밑을 바라보니 바다로 난 길의 오른쪽은 바다가 들여다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다. 나는 오른쪽으로 걷고 나의 옆지기는 왼쪽으로 걷는다. 예전에 춘천에 여행 갔을 때 나와 막내아들은 하늘 가르기를 하며 스릴을 만끽하고 옆지기와 큰 아들은 하늘을 가르는 사람을 바라보며 콘서트를 보았던 일이 생각났다. 우리를 닮은 아이들이 신기하다.
서해대교를 넘을 때까지 비가 오다 그치다를 반복하더니 급격하게 주위가 밝아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우리를 맞는 간월도의 말간 얼굴이 싱그럽다. 우리가 왔을 때는 만조 때여서 간월암은 바다 위에 고립되어 있었다. 물이 빠지는 시간 때에 오면 걸어서 간월암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육지와 연결되었다가 고립되었다가를 반복하는 참으로 신비한 암자이다. 특히, 해가 질 때, 휘영청 밝은 별빛이 쏟아질 때 간월암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한다. 오늘 찍은 사진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내가 만난 첫 번째 간월암이라 고즈넉한 분위기마저 더욱 애틋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고 카메라에 담는다. 그리고 얼른 카페 간월로 올라간다. 카페 어느 곳에 앉아도 바다가 보이는 신기한 카페다. 모든 자리가 다 차고 정박한 어선이 보이는 쪽 창가 테이블이 하나 남았다. 자리를 잡고 앉아 아이스아메리카노와 육쪽마늘크림빵과 앙버터빵을 주문하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매년 11월 30일엔 꼭 바다에 오자. 나는 이 정도의 풍경과 장소면 충분히 좋아. 괜찮지?"
"웅, 그러자. 참 좋네. 주위도 탁 트이고 바다 풍경이 아름답네."
무엇이 그리 바빴을까. 나는 늘 부모님께 가면서도 가까이에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바쁘게 왔다가 바쁘게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자라서 성인이 되고 자신의 길을 찾아 생활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거 같다. 너무나 이상하리만큼 나의 휴식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오늘은 결혼기념일이고 내일은 엄마생신이니 겸사겸사 부모님 댁에 다니러 가는 길에 잠깐 간월도에 들러 바다와 하늘, 춤추는 구름을 본다. 지금 이 순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사람도 있는데 우리 부모님 또래의 어르신들이 많다.
'다음번엔 엄마아빠랑 같이 와야지.'
아빠는 분명 좋다고 하실 테지만 엄마는 그 비싼 데를 왜 가냐고 우리 집이 카페라고 싱크대 문을 활짝 열어 다양한 차며 봉지 커피 등을 보여줄 실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저렇게 엄마의 마음을 녹인 후 한 번 모셔와서 영양굴밥 사드리고 카페 간월에서 꼭 커피 한 잔 함께 마시고 싶다. 엄마가 카페를 가지 않으시는 자세한 이야기는 [달콤한 창작의 공간] 07화 엄마와 카페 데이트에 자세히 썼다.
저녁엔 부모님과 맛있는 케이크집에서 사 온 특별한 케이크로 파티도 하고 이모가 담가주신 100가지 약초가 들었다는 신기한 맛의 담금주에 발이 안 떨어진 싱싱한 낙지를 삶아 안주로 놓고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싱싱한 겨울철 생굴과 간월도에서 사 온 왕꽈배기와 깨찰빵에 대한 품평도 이어졌다.
간월도를 조금 걷고 그 대신 이야기를 많이 나눈 11월 30일. 삶은 이렇게 오늘의 페이지를 넘긴다.
#간월도 #카페간월 #간월암 #겨울여행 #바다 걷기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