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효정 Dec 08. 2024

우박과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의 걷기

 어제 늦은 밤부터 비가 내리더니 대기는 청량해졌다. 새벽까지 들리던 비 오는 소리가 아침 녘엔 잠시 그친다. 운동화 끈을 당겨 묶고 길을 나선다. 나에게는 1시간 30분이 있다. 공원 길로 접어드니 밤새 거센 바람에 휘청였을 나무들의 흔적이 가득하다. 물기를 머금은 새빨간 단풍잎이 진한 갈색 나뭇잎들 위에서 빛난다.


메타세콰이어 길로 접어든다. 온통 갈색의 침엽수 잎이 눈처럼 쌓인 길을 걷는다. 폭신하게 발에 닿는 감촉이 좋다. 코끝을 강하게 자극하는 물기 머금은 낙엽냄새에 가을길을 걷는 정취에 흠뻑 취하게 된다. 쌀쌀해진 날씨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하늘엔 빠른 속도로 먹구름이 진군한다. 



위의 글은 11월 말의 어느날  느닷없이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우박을 뿌리고 눈보라를 날리던 날의 일상 기록이다. 오롯이 날씨의 변화에 오감을 맡기면서 걸었던 그 시간, 그날의 일상이 아련한 과거처럼 느껴지는 오늘.  2024년 12월 8일이다. 


먹구름이 진군하는 현실

7일 토요일 거리로 뛰쳐나온 수많은 민주 시민들

그들이 다시 한번 우리들의 일상을 지켜냈다.

작은 촛불하나 손에 들고 목놓아 외치는 민주주의

중학생쯤 되었을까 갸녀린 학생들의 울음 섞인 목소리

여의도를 가득 메운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


무엇을 하든 손에 잡히지 않고 온통 일상을 흔들어 버린 민주주의의 위기

국회에서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간절하게 투표참여를 독려하는 목소리

서울 하늘을 묵묵히 환하게 밝히는  촛불 그리고 촛불


예정된 아이의 공연은 취소되고 여의도에 다녀온 사람들은 5년은 더 나이가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상점마다 테이블은 텅텅 비고 시민들은 질서 정연하게 목소리를 내고 집으로 돌아와 지친 몸을 뉘인다.


밤. 나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자꾸 깨어난다.

새벽. 생중계되는 스톡홀름에서 전해진 한강 작가의 연설을 들었다. 


"2024년에 다시 계엄 상황이 전개되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저도 그 모습들을 지켜봤는데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서 멈추려고 애를 쓰셨던 분들도 봤고, 맨손으로 무장한 군인들을 껴안으면서 제지하려는 모습도 봤다. 총을 들고 다가오는 군인들 앞에서 버텨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모습도 봤다. 마지막에 군인들이 물러갈 땐 마치 아들들에게 하듯 '잘 가라' 소리치는 모습도 봤다. 그분들의 진심과 용기가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작가의 작품 속 사건이 과거가 아닌 현재 우리나라의 현실로 되풀이된 사실이 슬프고 고통스럽다. 작가는 특유의 고요하고 깊은 목소리로 말한다. 계엄군의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선 시민들, 계엄군을 껴안은 시민들에 대하여. 그리고 작가의 어릴 일기에 기록된 우리는 서로서로 금실로 연결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공기처럼 물처럼 연결되어 서로의 아픔에 아픔을 느끼고 서로의 물결에 파동 한다.


작가는 자신이 느꼈던 고통과 전율을 소설을 읽는 독자가 그대로 느끼는 것에 대하여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고도 했다. 실제 나도 '작별하지 않는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며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숨죽여 운 페이지가 너무도 많다. 작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고 그 진실을 정확히 바라보며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죽음과 아픔을 글을 쓰며 그대로 다시 살아낸다. 책을 읽고 작가의 모습을 잠깐 보았을 역사의 아픔과 진실, 고통으로 진하게 절여진 사람이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강렬하게 뇌리에 각인되었다. 


엄중한 상황이 지속되는 지금

나는 동네의 작은 카페에 나와 이 글을 쓴다.

다섯 살쯤 되는 아이가 핑크색 드레스를 입고 아빠와 음료를 고른다. 젊은 엄마들 넷이 아이들 교육에 대한 수다 삼매경이고 아저씨 둘이 앉아 어제 시위 현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한다. 부부가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책을 보거나 핸드폰을 보며 뉴스를 서치 하는 사람들도 있다. 창밖으로 12월의 차가운 공기가 햇살아래 청량하다.  나는 플라타너스 잎이 진한 초콜릿색으로 변해가는 창밖을 보며 한강 작가가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작은 찻잔과 글을 읽어본다.


한강 작가가 노벨박물관에 기증한 작은 찻잔과 글. 사진출처: facebook. Jungil Kim님의 게시물


우리가 쓰는 글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우리의 목소리는 우리의  보통의 이러한 일상을 지킨다.

우리는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