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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걷다

by 남효정

오월 경복궁은 초록으로 가득하다.

오늘은 우리 세 자매가 모이는 날이다.

우리는 나란히 걷는다. 오늘은 외국인 관광객이 유난히 많아 입구부터 길게 줄을 서야 했다.


KakaoTalk_20250517_191335865_26.jpg 5월의 경복궁_사진 남효정


어제 비 내린 후여서 물기를 머금은 나무와 풀, 꽃들이 싱그럽다.


왕비가 머물렀던 교태전을 살펴본다. 교태전의 뒤틀을 아미산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답다. 일 년 내내 대부분의 시간을 궁궐에 머물러야 하는 왕비를 위한 배려였을까. 정원으로 꾸며진 이곳은 붓꽃이 단아하게 피어있고 5월의 만개한 작약이 바람에 흔들린다. 이미 꽃을 떨군 할미꽃은 깃털 같은 아름다운 형태의 씨앗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이곳엔 진달래, 모란, 철쭉, 옥매화 등 계절에 따라 다른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나 봄과 여름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잘 기억해 봐. 이곳을 거닐던 그때를 말이야.

나는 궁밖이 편안한 거 보니 무수리였나.

궁 이곳저곳을 파고 누군가가 미워서 지푸라기 인형을 묻어놓은 기억은 없는지 생각해 봐.

사극을 너무 많이 봤네.


KakaoTalk_20250517_191951505_12.jpg 교태전의 뒤뜰(아미산) 사진_남효정

오월의 아미산을 보며 상상해 본다.


왕비: 붓꽃이 참 곱구나. 마치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구나. 봄바람에 작약 꽃잎이 흔들리는 모습이 어찌 이리도 곱단 말이냐.

궁녀: 전하께서도 폐하께서 아미산의 꽃이 유난히 아름답다고 하셨사옵니다. 오늘은 비가 갠 후라 꽃들이 더욱 생기롭습니다.

왕비: 그러하구나… 저기 저 할미꽃을 보아라. 벌써 꽃을 떨구었지만, 그 씨앗마저 저리도 아름답구나. 때로 는 소멸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네.

궁녀: 마마께서는 언제나 깊은 뜻을 품고 계시옵니다.

왕비: 아미산을 거닐 때면 잠시나마 마음이 편안해진다. 궁궐 생활이란 벽 안에 갇힌 듯 답답한 것이지만, 이곳에서는 바람이 자유로이 흐르는구나.

궁녀: 이 아름다운 공간이 마마께 작은 위안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십장생 굴뚝을 보시겠습니까? 장수를 기원하는 문양이 새겨져 있사옵니다.

왕비: 장수를 기원하는 저 문양처럼, 이 작은 정원 속 생명들도 오래도록 나를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어머니, 아버지는 무엇을 하고 계실까? 저 문양의 기원이 부모님께도 가 닿았으면 좋겠구나.


이곳 아미산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흙을 구워만든 정답고 포근하며 아름다운 굴뚝이다. 이 굴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왕비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해, 산, 물, 돌, 소나무, 불로초, 거북, 학, 사슴, 구름 등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5월인데도 정오가 가까워지자 매우 덥다. 목이 마르다.

경복궁에는 경복궁에는 과거 24개의 우물이 있었지만, 현재는 7개가 남아있다. 태원전에 3개, 강녕전, 교태전, 열상진원샘, 칠궁에 각각 한 개의 우물이 있다.


경복궁의 우물은 조선 왕실이 궁궐을 지을 때 필수적으로 설치한 시설이었다. 우물은 왕실 사람들이 마실 물을 얻거나 음식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공간이었으니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졌을 것이다.

우물의 바닥은 마사토, 암반, 석재, 자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부 우물은 암반을 둥글게 파거나 바닥에 숯을 넣는 구조인데 이는 물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방식이었다.


지금도 외관은 매우 튼튼하고 정갈하게 보존이 되고 있으나 수질은 그리 좋지 못해 현재에는 식수로 사용하기는 어려워 문화재청과 관련기관에서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전에는 강녕전 우물을 정수하여 방문객이 마셔보는 체험도 하였으나 현재는 물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러한 체험은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여기가 참 좋아. 경회루 연못!

그런데 왜 둥글지가 않고 네모 모양일까?

웅 그건 말이야. 조선 왕실의 권위와 품격을 상징하기 위해 특별히 크기도 크게 하고 모양도 네모 모양으로 한 거라네. 특별히 조형미에도 신경을 써서 아름답게 축조했대.

달밤에 배를 띄우고 놀고 싶다. 우리 셋이!


언니는 경회루 연못을 따라 걷는다. 나와 동생도 함께 걷는다.

경회루는 경복궁 근정전 서북쪽에 있는 사각형의 넓은 연못과 인공섬을 말한다. 시야가 탁 트인다. 네모난 연못이라니 발상이 참신하다. 왕실을 위한 연회나 사신이 왔을 때 접대하는 곳이다. 뱃놀이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달 밝은 밤에 이곳에서 뱃놀이하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만으로도 환상적이다.


경회루는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종조판서 박자청이 완성한 건축물이다. 원래는 태종 이방원이 경복궁 서쪽의 습지에 작은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자가 습지에 지어져 자꾸만 기울자 박자청에게 정자를 새롭게 지으라고 명했고 그 기회에 연못도 넓게 다시 팠다고 한다. 경회루를 거닐며 박자청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정자를 재정비하여 웅장하고 아름다운 누각을 세우겠습니다. 그곳에서 왕과 신하가 만나 덕을 쌓는 경사스러운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건축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물이 흐르는 계곡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마당이 있어 흙을 밟을 수 있고 하늘이 열려있어 사시사설 계절에 따른 하늘의 변화,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맘마미아를 보고 그리스를 마음에 품었다. 촬영이 이루어졌던 지중해의 스코펠로스 섬과 스키아토스 섬 등 그리스의 실제 섬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자연을 그대로 담은 집과 동네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나는 온통마음을 빼앗겼다. 그러나 가끔 궁궐에 오면 우리의 건축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슴 가득 뿌듯함이 차오른다.


경복궁을 보고 통인시장과 서촌일대를 걸었다. 외국인과 관광객으로 활기찬 거리가 오월의 초록나무와 만개한 꽃들과 함께 특별히 에너지로 가득 찬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 세상에 이렇게 한부모 아래 태어나 힘든 날, 기쁜 날 함께 만나 이야기 나누고 아름다운 길을 함께 걷는 우리가 참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톡방에 올린 한마디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다.


언니들, 우리 100살까지 이렇게 재밌게 놀자!





#경복궁 #교태전 #경회루 #우물 #아미산 #남효정 놀이와 교육 연구소




2025년에도 고요하게 성실하게 쓰고 꾸준히 성장하는 작가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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