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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Apr 06. 2024

한옥 카페 이야기

커피와 쑥 갸또 쇼콜라

 저는 개인적으로 공간이 주는 특별한 힘을 믿습니다. 아이들이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고 어릴 적부터 놀이하며 배움의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온마음을 다하여 영유아교육자들을 만나 토론하고 강의하고 교육합니다. 일이 끝나는 오후 시간이 되면 저는 때때로 배터리가 제로인 상태가 되곤 합니다. 이처럼 강의나 컨설팅 등으로 제 안의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저는 아늑하고 조용한 장소를 찾아 들어가 조용히 에너지가 차오르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2022년 어느 날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그날도 교육과정 컨설팅으로 여러 선생님들과 원장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는데요, 길가에서 계단을 서너 개 올라가면 들어갈 수 있는 한옥 카페 다오를 발견한 것입니다. 서울이 매력적인 이유는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이런 쉼의 공간이 숨어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카페 다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먼저 인사를 건너며 들어간 카페는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켜켜이 남은 서까래 골조를 다 드러내고 흰색 회벽칠을 하였는데 검은 서까래와 대조를 이루는 흰색 천정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외관은 맞은편의 혜화랑이 훨씬 근사하지만 저는 그곳을 바라보며 카페 다오에 앉았습니다.


 창가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맞은 편의 혜화랑은 고요하고 아늑하게 와인을 즐기고 싶을 때 가는 곳이라고 합니다. 한옥의 담벼락에 기대어 선  불두화가 싱그럽게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꽃송이를 들추고 황금색 털을 가진 고양이가 오후의 햇살을 받으러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주 편안 인생이네.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헉헉대는 나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우아한 모습인걸. 햇살에 반짝이는 황금빛 털과 절대 서두르는 법이 없는 저 여유로운 자태 좀 봐.'



 혜화랑 앞에  불두화가 피어나고 있어요


창 밖을 바라보며 마음이 한껏 느슨해진 그때, 젊은 사장님이 커피와 쑥 갸또 쇼콜라를 손수 가져다줍니다. 이 카페에서 파는 케이크는 모두 수제 케이크인데 유럽의 어느 나라에선가 배워 온 레시피에 우리나라 고유의 식재료를 함께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쑥 갸또 쇼콜라는 쑥이 많이 들어가서 먹고 나서 입안에 쑥향이 오랫동안 맴돌았습니다. 쑥은 단군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건강식품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동의보감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위장과 간장, 신장의 기능을 강화한다고 하니 진한 쑥향이 더욱 좋게 느껴졌어요. 아메리카노와 달콤한 쑥 갸또 쇼콜라의 궁합이 아주 좋습니다.


투박해 보이지만 정말 맛있는 케이크


 이곳에 앉아 저는 창밖을 바라보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아름다운 정취에 이끌린 듯 외국인들이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연인끼리 데이트하러 왔다가 커플사진을 찍기도 하고, 유튜버인지 카메라를 향해 계속 이야기를 하며 촬영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이 모든 것을 구경하는 사람이 있고 분주한 사람들을 나른한 눈으로 바라보는 황금색 고양이가 한 두 마리 보입니다.


 디저트가 맛있어서 요즘에도 혜화동에 가면 꼭 카페다오에 들르곤 합니다. 어떤 날은 단호박 갸토 쇼콜라와 흑임자 크림라떼를 먹기도 하였지요. 때마침 비가 내리는 날에는 창밖의 풍경이 한층 고즈넉해지고 한옥 카페 안은 오래된 구옥에서 나는 특유의 어떤 냄새가 커피내음과 섞여 엄마 뱃속 같은 근원적이고 안온한 분위기를 만들어냅니다. 저는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자신의 숨소리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참 좋습니다.


 여러 가지 여건이 허락할 때는 이곳에서 교육을 진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업무공간이 아닌 카페에서는 서로 마음이 이완되고 마음속 깊은 곳의 고민도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말랑말랑 해지나 봅니다. 좀 더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고민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는데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았습니다. 한옥은 흙과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일까요? 집이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혜화동에서 만날까?"

 "좋지! 연극 한 편 보고 거기 가자. 한옥카페."

 

저는 올해도 이런 대화를 간간히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 한옥카페에 봄쑥을 활용한 메뉴하나 추가 하기를 건의합니다. 긴긴 겨울을 꿋꿋하게 살아내고 온 힘을 다해 땅 위로 올라온 봄쑥 쑥개떡을 커피와 함께 판다면 그 카페는 더욱 잊을 수 없는 명소가 될 것입니다.


봄쑥으로 만든 쑥개떡


 뭐든 만드는 것을 잘하는 동생은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카페 하나 할까?"

 "그래 언젠가 꼭 하나 하자."


지금은 세 자매가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조만간 함께 모여 무언가를 궁리해 볼 수도 있겠지요. 혼자 와도 쉬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공간, 마을 사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공간, 친구와 연인과 함께 추억을 만드는 공간, 가족끼리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 같은 공간, 주제별로 몇 권의 책을 놓아두고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공간, 교육과 상담, 컨설팅이 함께 이루어지는 공간...... 그런 공간을 꿈꾸어 봅니다.




오늘은 제22대 국회의원을 뽑는 4·10 총선 사전투표일입니다.

민주주의의 꽃 투표, 저는 오늘 가족들과 함께 투표하러 갑니다.

아침 7시쯤 민주시민의 권리를 행사하고 벚꽃 잎 날리는 공원을 좀 걸어야겠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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