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무료 카페
엄마, 비가 내리는 바닷가 카페에서 엄마를 생각합니다. 여기서 엄마랑 따뜻한 차 한잔하고 싶어요. 야외 테이블에 빗방울이 음악처럼 경쾌하게 내립니다. 까만 테이블에 내린 비는 이미 추상화가의 그림처럼 알 수 없는 형체로 이곳에 왔던 많은 사람들의 순간순간을 물방울 안에 이야기로 담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 여기는 지금 바람이 많이 불어요.
사람들은 비옷을 입고 바닷가로 나가서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바위 위에 위태롭게 서서 사진을 찍고 있어요. 그래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깔깔 거리며 빗속의 놀이를 즐기는 모습입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나 봅니다.
이렇게 창이 큰 카페에서 내리는 비, 일렁이는 바다와 사람들을 바라보며 엄마와 바로 요 자리에 앉아 맛있는 차 한잔을 마시고 싶어요. 우리들에게 쏟았던 엄마아빠의 정성이 이만큼일까 생각하니 쏟아지는 빗방울도 정답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엄마, 아빠랑 저희랑 함께 제주 여행 한 번 가요. 여기는 비가 와도 좋고 날이 맑아도 좋아요. 엄청 아름다워요. 맛있는 커피와 빵을 파는 카페도 같이 가고 바닷가에 서서 사진도 찍어요."
엄마는 특별한 감각의 촉이 있으신가 봅니다. 엄마생각을 골똘히 하면 톡으로 바로 사진이 옵니다. 엄마가 찍으신 사진에는 시골집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붉은 철쭉이 동산 가득 피어나고 부모님께서 허리를 굽혀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심으신 감자는 봄비에 싱그럽게 잎을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께 전화를 겁니다. 몸이 좋지 않을 때에도 자식의 전화에 언제나 소녀처럼 밝은 목소리로 반기는 엄마는 둘째 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까페는 왜 가? 비싸기만 하지. 우리 집이 아주 끝내주는 카페인데. 엄마가 보내준 사진 봤지? 앞 산에는 철쭉이 빠알~~갛게 피어나지, 밭에는 감자싹이 새~~파랗게 올라오지, 얼마나 좋아?"
"정말 뷰가 좋기는 하다, 엄마."
"시골에 와~엄마가 커피도 끓여주고, 녹차도 주고, 살구청차, 매실차에 쑥떡도 해 줄게."
"그럴까? 그럼."
쑥떡이라는 말에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어릴 적부터 잘 넘어지는 저를 걱정하셔서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수수팥떡을 해주신 엄마 덕분에 몸과 맘이 함께 튼튼해져 저는 잘 걷고 잘 달리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학교대표 달리기 선수에 높이뛰기, 넓이뛰기 선수까지 겸할 정도로 건강하고 민첩하게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몸과 맘이 너무 많이 약해지고 느려지지 않도록 말입니다.
봄이 가기 전에 평생 무료 카페에 엄마와 데이트를 하러 가야겠습니다. 봄 동산은 새빨간 철쭉도 보고 살구나무에 맺힌 작은 살구알도 살펴보고 파아랗게 올라온 감자싹들의 안녕도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던 거 같아요. 엄마는 시장에 가서 미리 옷감을 떠 오신 후 봄소풍에서 입을 언니와 저의 블라우스를 만들어 일주일 전부터 옷걸이에 걸어두었습니다. 언니는 보라색 바탕에 흰 땡땡이가 있는 옷이었고, 저는 진분홍색 바탕에 흰색 땡땡이가 있는 블라우스였어요. 목과 손목에 주름이 잘게 잡혀있고 목에 길게 줄이 있어 꼭 나비모양으로 매듭을 지어 입혀주셨습니다.
하루하루 봄소풍날이 다가올 때의 설렘을 잊지 못합니다. 새 블라우스에 짧은 플레어 멜빵치마를 입고 봄소풍을 갈 때 발걸음마다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기분이 보송보송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엄마, 고맙습니다. 소풍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즐겁게 잘할 수 있도록 새 봄 블라우스를 만들어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으신 엄마의 다정한 마음과 사랑을 이제 알 거 같아요. 엄마랑 떨어져 학교에서 가는 첫 소풍이지만 괜찮아. 즐겁고 재밌을 거야라고 그 블라우스는 저에게 계속 속삭여 주었다는 것을 이제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