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를 위한 공간
아늑하고 편안한 창작의 공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요즘엔 부쩍 어떤 공간에서 글을 짓고 음악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지으며 사는 것이 행복할지 고민합니다.
'어떤 공간이면 좋을까?'
한옥이면 좋겠고 마당에 매화나무 두어 그루를 심어 봄이면 창문가에 바로 손에 닿을 듯 피어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그루는 홍매화이고 또 한 그루는 청매화입니다. 집은 남향이라 따뜻하게 햇살이 잘 들고 마루는 콩기름 칠을 해서 반짝이는데 마루 한 쪽에는 놓아둔 늙은 호박이 제법 안정감있고 안온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여름엔 신발을 벗어 놓은 댓돌 옆에는 보라색 도라지 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뒤꼍 대나무밭에서는 솨~솨~바람소리가 들리는 집을 마음 속에 그려 봅니다. 직접 담근 간장, 고추장, 된장이 살뜰하게 담긴 장독대 항아리는 반짝이도록 날마다 정성껏 닦아주어야 겠습니다.
장독대 옆 낮은 담장에는 무엇을 심을까요? 붉은 목단화와 맨드라미, 봉선화도 좋겠습니다. 엄마라면 이런 의견도 말씀하실 거예요.
“취나물이나 명이같은 산나물을 몇 포기 심어 놓아도 좋지. 산나물이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큰 아이가 어릴 적에 전통정원에 자주 놀러 갔는데 그곳에 딸린 정자 위에 올라가 마당을 내려다 보기를 좋아했습니다. 그 아이가 일곱 살 정도 되었을 즈음, 연못 위에 핀 연꽃들을 구경하면서 말했습니다.
"엄마, 여기 참 좋아.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다. 여기 앉아서 책 읽다가 쉬고 마당에서 놀다가 다시 여기서 책보고그러고 싶어.“
어린 나이에 고즈넉한 전통정원의 매력에 빠져버린 아이는 지금 국악을 작곡하며 예술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통정원에서 느낀 아름다움도 그 아이가 걸어 가는 방향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름다움은 은은하게 혹은 강렬하게 마음에 남아 한 사람의 인생에 스며드는 것이겠지요.
마당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연꽃을 몇송이 띄워봅시다. 고인 물에서도 싱그럽게 피어나는 연꽃을 보며 두보나 백석의 시를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시심이 차올라 견딜 수 없거든 가난한 나의 시를 한 편 써 보면 어떨까요?
아늑하고 편안한 창작의 공간, 나를 위한 카페는 대략 이런 그림으로 제 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닫힌 공간이 아니라 사방으로 개방감을 주어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곳, 사계절 끊임없이 꽃들이 피어나고 맑은 새소리가 들리는 곳 말입니다.
낡은 봉고차를 개조하여 세계여행 중인 부부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자연이 이끄는 대로 멈추고 움직이며 자연을 만끽하고 있었는데요, 여행 유튜브를 해서 여행자금을 마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행을 담은 영상과 사진을 만들어내며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진정한 자유를 원하고 그런 삶을 통해 충만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꿈꿉니다.자연에 깃들어 사는 작은 새처럼 사람도 자연에 깃들어 물흐르듯이 살아간다면 얼굴이 환해지고 마음이 맑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를 위한 카페 하나 차리고 싶다.”
종종 저는 이 소망을 소리내어 말합니다. 시골집 마당에 내리는 빗소리를 저장해 놓고 들어보는 이 아침. 어제보다 잔 빗방울이 꽃이 지고 무성해진 목련나무 위로 떨어집니다.
고택의 툇마루
눈부시게 아름다운 호숫가에 정차한 개조한 캠핑카
연꽃이 피어나는 전통정원
비오는 날 시골집 식탁
그 모든 곳이 그 시절 바로 그때의 ‘나를 위한 카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있는 모든 곳이 달콤한 창작의 공간이며 내가 머문 시간이 모두 창작의 시간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