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충만해지기
여러분은 어떤 것에 필요이상의 욕심이 있으신가요?
저는 소박하지만 차를 마시는 찻잔과 텀블러는 필요 이상으로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예쁜 찻잔을 보면 욕심이 막 일어나요. 그리고 새로운 디자인의 텀블러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꺼내듭니다. 찻잔 욕심을 조금 컨트롤해 볼 요량입니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스님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최소로 줄여서 사는 삶의 충만함에 대해 간결하고 소박한 언어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소유를 줄여라. 그렇게 함으로 해서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정신이 맑아지며 고요함 속에 가득 차는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결혼할 때 친한 친구로부터 고운 난초꽃이 그려진 행남 자기 다기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고등학교 시절 커피와 에이스 과자를 나름 그럴듯하게 차려놓고 자주 이야기를 나누던 매우 다정한 사이입니다. 친구가 선물한 다기는 손잡이가 길쭉하고 몸체가 매끄러운 주전자와 이것에 딸린 네 개의 작은 찻잔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단아하고 고운 친구의 마음처럼 느껴져 차를 마실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졌었습니다.
그런데 10년쯤 사용하니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작은 잔들은 하나씩 깨지고 주전자 뚜껑까지 깨져 버려야 할 때는 정말 속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이제 도자기로 만든 주전자 몸체만이 덩그러니 남아 옛날을 추억하고 쓸쓸한 마음에 그 찻 주전자에 물을 담아 매화 꽃잎을 띄우거나 풀꽃들을 한주먹씩 꽂아 두곤 합니다.
저는 머그잔도 참 좋아하는데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나오는 책 속의 캐릭터가 등장하는 머그잔을 소유하게 되면 그 기쁨이 매우 크더라고요. 빨간 머리 앤이 그려진 빨간 머그잔에 마시는 커피는 앤의 활달하고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서 글을 쓰거나 책을 볼 때 옆에 놓고 커피를 마십니다. '그건 다만 컵일 뿐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책으로 만나는 앤과 커피잔으로 만나는 앤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 저에겐 매우 큰 의미가 있는 머그잔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끔 어버이날 즈음에 백화점에 가면 꼭 그릇과 찻잔을 구경합니다.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예쁜 찻잔을 선물해 드리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저도 저를 위해 꼭 하나 준비해야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잔잔한 파스텔톤의 커피잔 세트를 살펴보는데 목소리가 들립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많을수록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행복해진다."
법정스님의 말씀이 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면 들었던 찻잔을 내려놓습니다. 지금 가진 것도 충분히 많다 더 이상 집에 들이지 말고 있는 것을 자주 사용하자고 마음먹습니다.
어떤 방송에서 법정스님이 사시던 작은 암자와 그 앞에 심어 놓은 매화나무 한그루 그리고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소박한 의자를 보았습니다. 정갈한 뜨락과 작은 새들도 자유롭게 오고 가는 작은 마당. 토방에 벗어 놓은 스님의 닳은 신발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철철이 입는 옷들이 만든 쓰레기산, 신형으로 바꾸고 버리는 가전제품, 하루가 멀다 하고 시키는 택배들이 동식물들은 물론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제 비우고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올해는 정다운 손님들이 찾아오면 가지고 있는 찻잔에 차를 마시고 숲이 더 싱그러워지면 텀블러를 챙겨 캠핑을 가고 싶습니다. 오늘도 초록이 너무 좋아 이 글을 마치는 대로 숲을 좀 걸어볼 생각입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