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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효정 Apr 29. 2024

커피와 케이크와 꽃

"여자가 카페에 앉아 글을 쓰고 있어. 테이블에는 딸기 생크림조각케이크와 튤립 화병이 있고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어. 무엇인지 생각하다가 써나가고 다시 생각하다가 이어서 써."

"노트북으로 쓰고 있었어?"

"아니, 모두들 노트북을 켜 놓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그녀는 노트에 펜으로 글을 쓰고 있었어?"

"요즘 그런 사람 별로 없는데, 누구에게 편지라도 쓰는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아무튼 신기하다. 요즘에도 손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니!"


 미래의 어느 날 손으로 꾹꾹 눌러서 글을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브런치 마을 주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가장 오랫동안 손으로 직접 노트에 글을 쓰고 싶은 남효정 작가입니다. 저는 손으로 직접 한글을 쓰는 것을 사랑합니다. 노트북으로 작업해야 하는 것들이 많지만 저는 시간을 내어 꼭 노트에 생각을 적는 습관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도 저의 책상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펜들이 있을 것이고 제가 사랑하는 꽃들과 달콤한 케이크가 놓여 있을 것입니다. 지금 제가 글을 쓰는 책상 위에도 튤립화병이 놓여 있어요. 빨간색, 노란색, 흰색 튤립들이 어우러져 활짝 피어있는 모습입니다. 향후 3년 안으로 좋아하는 꽃들을 심고 뜯어먹을 푸성귀를 심을 손바닥만 한 텃밭을 마련하려고 합니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두근 하는데요. 마당에도 식탁 위에도 책상에도 계절꽃을 끊이지 않고 보는 삶은 생각만 해도 즐겁습니다.


 케이크는 당근케이크나 쑥케이크같이 제철에 많이 나는 재료를 이용해서 심하게 달지 않게 직접 만들어 먹고 커피는 다년간 연습으로 이미 아주 맛있게 내릴 수 있으니 이제 재배가 가능한 환경으로 이사를 가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고 커피와 케이크와 꽃을 즐기며 살아가는 제 모습을 그려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제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행동하는 성향의 저와 지나치게 비평적이고 사고형인 남편이 지난 금요일 이런 대화를 나누었어요. 공지영 소설가가 쓴 책을 보다가 제가 책의 내용을 남편에게 톡을 보내본 거죠.


"도시락에 밥이랑 된장만 넣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지리산에 다녀오자."

"그게 도시락이야? 뭐가 빠졌는데?"

"거기 가면 지금 곰취가 돋아나고 있대. 그거 뜯어서 비빔밥 해 먹으면 되지."

"지역주민에게 채취 허락을 받아야 할 텐데."


 이러저러한 이야기 오고 가고 한주먹을 뜯어도 허락을 받아야 한다, 아직 놀러 다닐 때가 아니라 열심히 일해야 할 때라고 남편은 시종일관 이야기 합니다. 저는 놀러 다닐 날짜를 미리 빼놓고 일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촘촘히 하면서 근 1,2년 동안에 대상포진에 한포진까지 경험하였기에 쉼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제가 볼 때는 남편도 쉼표가 필요하기에 조만간 지리산이든 강릉이든 간월도이든 한 번 다녀올 거 같아요. 결국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저의 의견을 수용해 주기 때문에 한 번에 '좋아, 가자'라는 이야기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거든요.


"아빠는 뭐 할 때 가장 좋아?"

"아빠 나랑 운동할래?"

"아빠 간식 사갈 건데 뭐 먹고 싶어."


아이들은 아빠에게 자주 묻습니다. 운동은 별로 대답이 없고 간식은 '아무거나.'라고 하는 아빠에게 저와 막내 아이는 자꾸 물어봅니다.


"그래도 좋은 게 있을 거잖아? 생각해 봐."


아이가 아빠 키만큼 자라서 아빠를 챙겨주는 모습, 같이 길을 걸으며 아빠의 어깨에 척 팔을 걸치고 어깨동무하며 걷는 모습이 저는 참 좋습니다.


세상이 온통 초록으로 짙어지는 2024년 4월 28일 일요일.

저는 짝꿍과 함께 케이크가 맛있는 카페에 와 있습니다. 마을의 사랑방이 된 이 카페는 삼삼오오 마을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고 갓 사랑에 빠진 젊은이들이 달디단 밤양갱 음료를 시켜놓고 사랑을 속삭이는 곳. 그들을 가끔 바라보며 우리는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일은 다시 바쁜 일상이 이어질 테지만 이런 소소한 일상이 참 좋습니다.


 타사튜더 작가의 그림책과 그와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스스로 만들어 먹고 입고 자연과 함께 깊이 교류하며 사는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매료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것은 '꽃의 구근을 사기 위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라고 말한 부분이었어요. 진심으로 꽃을 사랑하는구나. 꽃이 삶의 목적이 되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빗물을 받아놓는 큰 통이 있고 이곳에 서서 직접 물을 길어다 물을 주고 정원을 맨발로 걸으며 꽃들을 만나고 녹녹지 않은 육체노동을 작은 체구로 담담하게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꽃이야기를 할 때마다 저의 엄마가 생각나 웃음 짓습니다. 엄마도 꽃을 얼마난 사랑하던지 집 주변에 상사화부터 튤립, 국화, 팬지, 철쭉, 봉선화, 맨드라미 등등 철 따라 꽃이 쉼 없이 피어나도록 가꾸고 계십니다. 그런데 몇 해 전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엄마가 꽃 때문에 아버지와 크게 다투신 일화를 말씀해 주셨어요.


 "내가 웬만하면 큰소리 내지 않고 아빠가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살았어. 그런데 예전에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이 있었는데 당신 생각나요? 밭을 매고 들어왔는데 내가 대문옆에 심어 놓은 애지중지하던 장미가 개울에 뿌리째 뽑혀 던져져 있는 게 아니겠니? 아, 안 되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을 물어보지도 않고 뽑아서 개울에 버리는 사람하고는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다. 정말 이건 아니다고 말했지."


"아빠가 정말 장미를 뽑아버리셨어요? 다른 건 다 잘하시면서 왜 그러셨을까. 아빠, 엄마한테 물어보고 하시지 왜 그러셨을까요? 엄마한테 선물도 잘하시고 같이 놀러도 자주 다니시면서 꽃에는 박하셨네요."


 "그때 아주 무섭더라 너네 엄마. 아주 심장이 쫄깃했어. 정말 안 살고 나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겁이 났지. 나는 대분은 넓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보기 좋은데 장미가 자라서 입구가 점점 좁아지니까 그게 맘에 안 들었어. 그래서 뽑아 버린 거지."


 "맞아요. 아빠는 정리정돈이 습관이 되셔서 커다랗게 자라는 장미나무가 출입구를 좁히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겠어요. 그러니까 대화가 필요해요 아빠."


 "내가 그때 얼마나 울었던지 밭을 매는데 눈물이 떨어져서 이게 곡식인지 풀인지 분간이 안 되더라. 울면서 밭을 한참 매고 들어왔더니 장미가 그 자리에 다시 심어져 있어서 용서해 줬다. 그래서 너희 아빠 지금까지 엄마랑 살고 있는 거야."


"아빠도 젊었을 때라 그런 일이 있었던 거지. 그 후론 엄마한테 아주 잘해줬단다."


오랜만에 둘째 딸 부부가 오면 밤늦도록 이야기꽃이 피어납니다. 우리가 나눈 이야기꽃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집안에 가득 피어 집 밖까지 동네어귀까지 가득해질 만큼 말입니다. 대화 중 아빠가 코너에 몰리면 도와드려야 합니다. 엄마는 딸내미가 오면 힘을 얻어서 예전에 속상했던 이야기를 하십니다. 아빠는 엄마가 심장이 안 좋으셔서 병원에 돌아가실뻔한 적이 있기 때문에 인생 후반전에는 엄마의 마음을 맞춰주려고 부단히 노력하십니다.


 "아빠, 엄마가 그러셨어요. 아빠랑 선 봤을 때, 마음속으로 이렇게 키도 크고 잘 생긴 사람이 나의 남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잠도 안 오고 자꾸 마음속에 아빠 떠오르고 그랬대요."


 엄마는 이제 웃으시며 아빠를 봅니다. 과일을 포크에 찍어 건네주기도 하면서 말이지요. 아빠도 엄마를 보며 허허 웃으십니다. 올해 여든이 되시는 아버지의 얼굴과 그 보다 두 살 젊으신 엄마의 얼굴이 서로를 보고 웃습니다. 술잔이 오고 갑니다. 저는 평소에는 술을 잘 마시지 않지만 시골에 가면 아버지와 꼭 한 잔 합니다.


체력과 청력이 약해지시는 엄마를 걱정하며 엄마의 리듬에 아빠가 자신의 리듬을 맞추려 노력하시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을 때, 저는 박사논문을 막 쓰려던 시점이었습니다. 누워계신 엄마의 손을 잡고 저는 말했습니다.


"엄마, 일어나실 수 있어요. 엄마는 반드시 나으셔서 아빠가 계신 우리 집으로 갈 거예요. 저도 공부 마치면 엄마가 좋아하시는 거 사가지고 자주자주 집에 갈게요. 세상에 좋은 거 다 해 드릴게요."


 간절한 기도는 서로의 마음에 닿는 걸까요? 엄마는 제 손을 살짝 잡으셨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때의 감정이 한꺼번에 저를 찾아와 눈 가득 눈물이 고입니다.


‘그래, 그러자. 나도 집에 가고 싶구나. 고맙다.’


 엄마는 저의 말을, 자식들의 간절한 마음을 읽으시고 기적적으로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기실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었습니다. 저는 압니다. 아빠가 그때 시골에 계시면서 얼마나 힘들고 걱정스러운 나날을 보내셨는지를요. 언젠가 함께 고구마를 캐면서 아빠가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때, 너희가 번갈아 가며 밤새 엄마를 간호하는 것을 보고 아빠는 정말 고마웠다. 소와 개들을 건사하고 농사일을 하다가 지친 몸으로 현관에 들어오면 거기 엄마 신발이 있었거든. 그걸 보면 이 사람 저 신발을 다시 신지 못하면 어쩌나 제발 저 신발을 다시 신고 마당으로 밭으로 걸어 다녀야 할 텐데 생각했단다."


 이제 엄마는 담당 의사도 깜짝 놀랄 만큼 아빠 옆에서 심장이 더 튼튼해지신 상태로 예쁜 꽃을 가꾸고 상추와 감자, 마늘이며 생강까지 키워내시고 있습니다. 전에는 하지 않으시던 산책도 꼭 하십니다. 소나무 숲길로 저수지 둘레길로 강아지를 앞세워 함께 산책하십니다. 그리고 세 딸과 아들, 사위들은 자주 부모님을 찾아갑니다. 그중에 둘째 딸인 저는 이런저런 바쁜 일정으로 가장 뜸하게 부모님을 뵈러 갔지만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찾아뵈려고 마음먹었습니다.


2024년 계획 첫 번째, 부모님과 자주 밥 먹기!


 엄마는 제가 어릴 적에도 딸들에게 속마음을 간간이 보여주시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속마음을 보여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을 살펴주는데 더 정성을 쏟았어요. 이제 여든이 되시는 아빠는 이제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하게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삼겹살에 미나리며 상추를 뜯어 저녁을 먹고 식탁에 둘러앉아 옛날 젊었을 적 이야기, 엄마와 있었던 일, 마을 노인회장을 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일상을 저희와 공유하십니다.


 저는 기쁜 날에 제일 먼저 부모님을 생각합니다. 이번에 학교에서 좋은 일이 있어 상금을 받게 되었는데 고스란히 부모님 데이트 비용으로 드렸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의미 있는 돈이기에 더 좋아하셨지요. 그러면서 돌아올 때 똑같은 액수를 축하금으로 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좋은 일이 있을까요? 그런 날에 저는 맛있는 딸기 생크림케이크와 예쁜 꽃다발과 향긋한 원두를 사가지고 엄마아빠 계신 곳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동안 두 분이 장날에 시장에 나가서 어떤 데이트를 하셨는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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