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도 아니면서
가끔 나는 약속 시간을 안 지킵니다. 못 지키는 건 아닙니다. 사실 약속 시간을 지킬 수 있는 기회란 아주 많았으니까요. 어쨌든 나는 약속 시간을 잘 안 지키기도 하는 인간입니다.
그런데 왜 나는 내 친구가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화가 날까요. 인간은 이기적이라서 그런 걸까요? 왜냐하면 모두에게 자기 시간은 소중한데, 이 친구가 내 시간을 존중해 주지 않아서 화가 나는 거라면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나도 약속 시간을 잘 지켰어야죠. 여태까지 그 어떤 약속이라도 늦으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못했죠. 이것은 모순 아닌가요? 그러면 저는 곧 누군가에게 모순과 역석을 바라는 이기적인 마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확률적으로, 그리고 평균을 내어 생각해 봅시다. 나는 내 시간을 소중히 쓰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데에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그 시간에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보다 훨씬 더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항상 늦는 친구가 있다면, 내가 그 친구를 만날 때 나도 늦게 나가면 되지 않나요? 그 친구가 가령 삼십 분이 늦는다면 나도 정한 약속 시간에서 삼십 분 늦게 나가는 겁니다. 그러면 될까요?
사람은 상대방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보다 자신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을 더 힘들어합니다. 힘들어한다기보다 더욱 정확히 말하면 싫어합니다. 고의적으로 피하고, 절대적으로 하기 싫어합니다. 인간은 누군가 본인을 긍정하는 것보다 부정할 때 더욱 큰 반발심과 원동력을 얻습니다. 상대방이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지요.
저는 사람이 선하게도 악하게도 태어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본성에 대한 탐구는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착하거나 나쁜 편으로 나눌 정도까지 유의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환경의 영향을 모두 배제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유전적 특질이나 형질은 현대 사회에서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봅니다. 환경이란 우리가 직접 느끼는 것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한 매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으니까요.
나는 약속 시간에 늦는 친구가 짜증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친구가 약속 "시간"에 늦어서 짜증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나는 상호합의로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장소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그렇지 않아서입니다. 마치 내가 지키려고 했던 약속 시간이 틀린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내 말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인간은 여러 감정적 핑계를 댑니다. 그리고 이를 보고서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하지요.
종종 약속에 늦으면서도, 나는 상대방에게 천재지변처럼 내가 예상할 수 없는, 내 통제권 밖의 사건이 생겼으며 그 때문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내가 틀리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지요. 자체적으로 약속 시간을 변경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내가 상호합의 없이 뒤로 미뤄 버린 약속 시간이 옳다는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런 판단을 한 내가 옳다는 주장입니다.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합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누군가 내 의견에 반발을 했다는 뜻과 같습니다. 인간은 평생 스스로가 틀리지 않았음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죽을 때까지 누군가는 내 의견에 반기를 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 역시 죽을 때까지 누군가의 반기가 될 수 있겠죠.
여러분은 오늘도 누군가와의 약속에는 늦었고, 누군가와의 약속에는 정시간에 도착했으며, 누군가와의 약속에는 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을 것이며, 누군가와의 약속에서는 늦는 상대방을 기다리며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그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