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를 묶다가
일주일에 두 번 분리수거를 한다. 쓰레기가 가득 쌓인 비닐을 묶는 손이 무겁다. 덜 사고 덜 쓰려 노력하는데도 버리는 비닐과 플라스틱, 종이 박스가 한가득이다. 환경을 떠올리며 심란해하지만 정작 생활 방식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한 번은 계란을 주문했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계란 부피의 족히 다섯 배는 될 법한 종이 박스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계란 몇 알을 지키는 대신 환경은 철저하게 파괴하는 방식에 혀를 내둘렀다.
가끔 삶에 회의감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세상에 내보내는 것들이 이토록 보잘것없다니. 태어난 이상 소비는 불가피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소비는 늘고 만족감은 줄어드는 모순에 빠진다. 그러니 종교는 없지만 ‘원죄’의 의미를 떠올리며 인간의 불완전성에 깊이 고뇌하게 되는 것이다.
한때 업사이클링 제품에 빠져 있었다. 재활용 가방, 지갑, 다이어리 등. 물건들은 생각보다 감각적이고 멋이 있었다. 무엇보다 환경을 위해 무엇이라도 한다는 생각에 묘한 자부심마저 느꼈다.
재활용 쓰레기가 새 물건으로 만들어지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러니까 내가 사는 업사이클링 가방은 수십 톤의 물과 엄청난 전기, 수많은 부속품을 소비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낭비를 줄이기 위해 또 다른 낭비를 하는 모순인 셈이다.
이제는 물건을 사기 전에 며칠은 더 고민한다. 물욕과 양심 사이를 헤매며, 조금쯤 덜 가지려 한다. 환경 보호라는 허울 좋은 말 대신, 적어도 무심해지지 않기 위해 애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