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이~삼 년이 지났을 때였나? 와이프랑 침대에 누워서, 자기 전에 듣는 영미문학관 팟캐스트를 틀고 잠들 준비를 하고 나서 말했다. ‘연희야, 그냥 이렇게 요 상태로 죽어도 될 거 같아. 그냥 잠들고 안 일어나도 괜찮을 꺼 같애.’ 처는 그냥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넘겼고, 잠들었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무언가를 성취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런 날들 가운데, 그냥 오늘 접어도 괜찮다는 생각, 감정이 드는 날들이 있었다. 천주교 신자지만, 그렇게 독실하지는 않아, '겨우 신과 영혼의 존재를 믿는 정도'라서인가? 그래도 나는, 죽음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았었다.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니까.
하지만, 이후의 내 삶은 쪼금 달라졌는데, ‘나’라는 사람의 삶이 진행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리되었다. 특히 ‘아들’이라는 정의가 변하면서 그렇다. 내게 ‘아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나 자신’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들’ 하면 내 여덟 살, 네 살 된 아들 둘이 먼저 생각나게 되었다. ‘아들’이란 의미의 변화는 변화대로 납득할 만 하지만, 변치 않기를 바라건만 변해가는 의미들도 있는데, 지금 내게 ‘아버지’란 의미가 특히 그렇다.
그냥 아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들 둘의 아빠.
일곱 살 때쯤이었을까?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등에서 큰 고통이 느껴졌다. 소리를 악! 내지를 정도로 깜짝 놀라 다 팽개치고 집으로 펄쩍 뛰어 들어갔다. “아빠 등이 너무 아파!” 고통은 등의 어디랄 것 없이 침으로 콱콱 찔러대듯 여기저기 이어졌는데 눈물이 펑펑 나올 지경이었다. 황급히 내 윗도리를 벗긴 아버지는 이내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개미야, 개미. 개미가 물면 진짜 아파~ 하하하” 처음에는 ‘아니, 이게 재미있는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후엔 ‘큰일은 아닌가 보다…’라며 되려 안심이 됐다. 아버지는 집에 있는 ‘소주’를 손가락에 찍어 아픈 곳에 살살 발라주셨는데, 두 손가락이 상처 위를 뱅글뱅글 문지르자 고통이 사라졌다. 또 어찌나 시원해지던지 오히려 좋은 기억이 됐다.
나에게 ‘아버지’는 이런 의미였다. 뭔가 너무 무섭고 놀라운 일도, 하하~ 웃어넘길 수 있을 만큼, 크고 큰 고통도 살살 문지르면 시원하게 없앨 수 있는 대단한 것.
하지만 지금의 내게 ‘아버지’는 파킨슨병에 시들어가는 강인 함이자, 요양원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이어질 수 없는 노약함이다. 꽃이 한번 피어나면 시들어감이 당연하기에 이런 변화는 슬퍼하기보단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단편이고 이제는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르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도 내 아버지와 같이 늙어감을 되뇌면서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알고 오만하지 못하게 나를 돌아보게 해주는, 변해버린 의미, ‘아버지’.
내 아버지와 내 아들 둘
이처럼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라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끝없는 변화 속에서 늘 같은 것, 그래서 편안하고 특별한 것이 ‘자연’ 같다. ‘나’는 삶의 변화에 따라 울고, 웃고, 태어났으며 죽을 것이고, 이처럼 나를 중심으로 한 인간사는 변해가지만, 이를 둘러싸고 나를 바라보는 ‘자연’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을 것이다.
인간, 그리고 나의 죽음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벽이 아니라 문이니까. 단지, 삶이 진행됨에 따라, 우리 아들 둘이 세상에 나서기 전까지 준비를 시켜줄 시간이 조금 더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해졌고, 그래도 우리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자식의 죽음’이라는, 두 분이 겪지 않아도 될 슬픔을 더 해 드리고 싶지 않을 뿐이다. 그냥, 문을 열고 나가기 전에, 문 앞을 좀 잘 정리해 놓고 싶다는 그런 느낌?
그리고 마지막으로, 최근에 한 가지가 추가됐는데, 변치 않으므로 특별한 자연도 그 변치 않음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는 ‘인간이 자연을 너무 많이 낭비하고 괴롭혀서’라는 것도 깨달았다.
내 아들 둘은 2016년생, 2020년생인데, 얘네 둘이 백 살 정도는 살 수 있게, ‘그래도 2120년까지는 지구가 온전하도록 노력을 좀 하다가 가자’라는 결심을 하나 더했다. 우리 아들 둘이 ‘아빠가 엉망 쳐서 더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했다’라며, 문 열고 나와 나한테 따져 물으면 미안할 거 같다. 그리고, “앞으로 백 년? 그럼 내 애들, 아빠 손주들은요?”라고 그 둘이 내게 따져 물으면, “야 그건 니네가 또 해봐. 나는 너네 살만큼 내 뒷정리하는 것도 힘들었어.’라는 답변 정도는 좀 여유 있게 하고 싶다.
언젠가, 문 열고 나와서 우리 모두 다시 만나도, 서로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 예전에 제가 썼던, '변치 않는것'이란 글의 일부를 중간에 넣었습니다.
- 본 영상의 강의를 보고, 제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죽음은 문이다'라는 표현으로 정리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