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뒤엉킨 기억
태주는 몽띠냑을 나와 레제지로 향한다. 구석기 유물이 유독 많은 페리고르 지방의 선사박물관이 있는 곳이다.
“어, 저게 뭐지?”
거대한 바위산에 길게 홈이 파였고 그 안으로 무언가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다. 태주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바위산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길게 파인 홈의 길이가 꽤 길다. 1km는 족히 넘을 것 같다. 더 신기한 건 동굴처럼 파인 홈 안에서 꼬물거리던 것이 사람들이라는 것. 차림새들을 보니 관광객 같다. 호기심이 발동한 태주는 길게 파인 홈을 따라 차를 몬다.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 표지판이 하나 서 있다. ‘라 로크 생 크리스토프 혈거인 집단주거지’라고 쓰여 있다. 혈거인이라면 동굴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곳은 태주가 모르는, 그의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 않은 유적지가 틀림없다. 태주는 얼른 스마트폰을 열어서 검색한다. 바위산 절벽에 자연히 생긴 암벽 마을로 55,000년 전 구석기인들이 살기 시작한 곳이란다. 그 후, 석기시대와 철기시대를 거쳐 고대와 중세시대까지 마을이 형성됐었으나 1588년 종교전쟁으로 인해 마을이 붕괴했다, 고 적혀있다.
“설마, 여기도 들어갈 거 아니지?”
혈거인 집단주거지 입구에서 떠돌이 방랑자처럼 서성이는 그를 은서가 돌려세운다. 태주가 혈거인 거주지에 호기심을 보일 때부터 못마땅한 얼굴이더니, 들어가기 싫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한다. 태주는 혼자 라스코Ⅱ를 탐방하며 느낀 쓸쓸함을 떠올린다. 이제 혼자 하는 여행은 싫다.
“동굴이 신기하게 생겨서 그냥 본 거야. 가자!”
태주는 기분 좋은 웃음을 머금으며 은서의 손을 잡는다. 막 입구를 벗어나려는데, 맨발로 얼음을 디디고 선 듯 선뜻한 기분에 휩싸인다. 등 뒤로 서늘한 기운이 서린다. 누군가의 차가운 시선이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섬뜩한 느낌이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분명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게 오싹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는다.
“왜?”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태주는 슬그머니 잡고 있던 은서의 손을 놓으며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역시, 아무도 없다. 분명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는데,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의 뒤통수가 자꾸 서늘해진다. 무언가가 땅속에서 슬그머니 솟아올라 발목을 낚아채는 느낌이다. 그의 발걸음이 둔해진다. 있는 힘을 다해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의 등으로 몽글몽글 땀이 맺힌다. 왜 그래? 그의 변화를 감지한 은서가 눈으로 묻는다. 모르겠다. 갑자기 왜 그러는지 그도 잘 모르겠다. 아주 잠깐 눈을 감았다 뜨며 생각한다. 침착해야 한다고. 애써 평정을 찾은 태주는 별일 아니라는 듯 그녀를 향해 미소를 보낸다. 자동차에 오른 그는 서둘러 시동을 건다. 선사박물관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구석기시대에도 애절한 사랑은 존재했을 거야. 물론 일부일처제는 불가능했겠지만.”
한적한 선사박물관을 둘러보던 태주의 입에서 푸념 같은 말이 흘러나온다.
“일부일처제가 세계적인 대세가 된 것이 2백 년 조금 넘었다고 들었어. 구석기인들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윤리는 물론 없었겠지. 살고자 하는 원초적 본능만이 삶을 지배할 때였으니까.”
은서가 살아 움직일 것 같은 구석기인 모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간다.
“그때는 사랑도 복잡하거나 힘들지 않고 심플했을 것 같아.”
“왜, 사랑이 힘드니?”
“사랑만 힘든가? 사는 일이 쉽지는 않지.”
한숨처럼 짧은 푸념을 뱉어낸 그녀가 우람한 체격의 구석기인 모형과 마주 선다. 그녀의 눈길이 쓸쓸하다. 위로가 필요할 것 같다. 태주가 슬그머니 그녀의 손을 잡으려 할 때였다. 오싹한 기운이 예리한 칼날처럼 그의 등을 파고든다. 휘리릭 바람 한 점이 그를 스친다. 황급히 손을 거둔 태주가 떨리는 시선으로 뒤를 돌아본다. 아무도 없다. 머리가 쭈뼛 서며 으슬으슬한 한기가 몰려온다.
“언젠가 우리 삶도 저렇게 투명 유리관에 갇히게 되겠지? 지금 우리처럼 후손들이 와서 구경하면서 이러고저러고 우리가 살았던 삶을 비평할 테고. 근데, 그들은 우리를 뭐라고 이야기할까?”
축축하게 젖어드는 공포를 밀어내느라 잔뜩 신경이 곤두선 그는 은서가 하는 말을 듣지 못한다. 의아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그녀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어색해지는 상황을 깨트리듯 그녀가 그의 몸을 돌려세운다.
“태주야.”
“어? 미안. 뭐라고 했어?”
겨우 정신을 차린 그의 얼굴에서 낯선 기운이 느껴진다. 아니다. 너무 리얼해서 괴기스러운 구석기인 모형들 때문에 느낀 착각 일 거다. 은서는 초연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조용하게 웃는다.
“밥 먹자. 배고파.”
레제지 시청 앞에는 작고 예쁜 카페 레스토랑들이 즐비하다. 어디서 점심을 먹어야 좋을지 결정을 못 하는 태주와 달리, 은서가 성큼 앞장서서 ‘카페 드 라 메리’로 들어간다. 테이블마다 손님들이 가득한 걸 보니 이 동네 맛집 인가보다. 다행히 은서가 간단하게 피자를 시킨다. 태주는 주방장이 추천한 오늘의 요리, 라자냐를 주문한다. 공교롭게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 요리를 시켰다.
“유럽에 와서 느낀 건데, 여기저기 이탈리아 음식점이 참 많더라.”
테이블 위에 놓인 올리브 절임을 입안으로 가져가던 은서가 태주의 생각에 동의한다.
“맞아. 피짜리아는 거의 우리나라 분식집처럼 흔한 식당이지.”
“프랑스 사람들도 이탈리아 음식을 많이 먹지?”
“응. 집에서도 손쉽게 파스타나 피자를 만들어 먹으니까. 라비올리도 많이 먹고. 아, 우리 아빠도 이탈리아 요리를 참 좋아하셨는데……”
이탈리아 요리 이야기를 하던 은서의 표정이 촉촉해진다. 태주 역시, 유난스러울 정도로 은서를 아끼던 그분의 기억이 새롭다.
“아버님은 여전히 강건하시지? 눈빛이 참 강한 분이셨는데.”
“어, 언제 우리 아빠를 만난 적 있었나?”
당황한 태주는 우물거리던 올리브를 꿀꺽 삼킨다. 절인 올리브를 입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막 몸피와 씨를 분리하던 순간이었다. 올리브 씨의 뾰족한 부분이 급하게 식도를 통과하며 찌릿한 통증을 남긴다. 그날, 은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4학년 졸업반이 되고, 은서의 일상은 흔들리는 출렁다리를 걷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딸이 교수가 되기를 원했던 아버지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유학을 미루는 딸의 갈등과 대결은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며 높아져 갔다. 당연히 태주를 향한 은서의 모든 것들이 까칠해졌고 넋두리도 잦아졌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쥐가 된 기분이야.”
태주는 은서의 긴 한숨이 마음 아팠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그녀의 우울을 바라보던 그는 자신의 무능과 무기력함을 탓하며 열등감에 시달렸다. 갈 길이 멀었다. 사랑을 인정받기 위해 치러야 할 일도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시간을 견뎌내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장 그녀에게 희망을 보여줄 수 없지만, 그녀의 손을 잡고 빛을 향해 걸어가면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우리가 함께 유학이라는 걸 갈 수 있을까……”
어렴풋하게나마 낙천적인 미래를 꿈꾸었던 그와 달리 그녀가 바라본 앞날은 암울했다. 누구보다 그의 형편을 잘 알면서 불쑥불쑥 잔인한 미래를 이야기하며 그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꽉 막힌 현실의 벽을 확인할 때마다 태주에게 짜증을 내고 분풀이를 하며 마음의 앙금을 털어냈다. 매번 그녀의 액막이 노릇을 하는 일이 힘들었고 그녀를 달래느라 머리를 조아리는 일이 버거워졌으나 꿋꿋하게 참아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녀와 갈등이 깊어져 태주의 가슴이 너덜너덜해질 무렵, 은서 아버지가 그를 찾아왔다. 거만한 인상에 다부진 체격, 자신감으로 가득한 중년 신사였다.
“자네, 지금 우리 은서를 위해 뭘 할 수 있나?”
태주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거두절미하고, 그는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물었다. 은서 아버지가 원하는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은서와 유학을 가던가, 아니면 헤어지라는 것.
“5년만 기다려주십시오. 꼭 은서와 결혼하고 유학도 가겠습니다.”
주눅이 들어 저절로 비굴해지는 표정을 감추며 태주가 사정했다.
“그거 아나? 남자는 능력이 없으면 사랑도 없는 거네.”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저승사자처럼 무섭고 섬뜩했다. 모멸감으로 태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가시 돋친 말보다 경멸로 가득한 은서 아버지의 시선이 더 아팠다. 그것은 자존심의 급소를 정확하게 찔렀다. 상처 받은 자아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그에게 속삭였다. 솔직해지라고. 매일 상처 받고 아픈 사랑을 얼마나 더 견딜 수 있느냐고. 은서를 정말 사랑합니다. 제 자신보다 더 은서를 사랑합니다. 애절한 그의 외침을 뒤로하고 은서 아버지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섰다. 그 뒷모습이 나쁜 예감처럼 서늘했다.
은서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은서 아버지가 돌아가고 한 시간도 못 돼서, 찾아온 그녀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서러움에 온몸이 젖은 은서는 그에게 한바탕 화풀이와 넋두리를 풀어놓다가, 그의 어깨에 기대어 울고 싶었을 것이다. 그냥 평소처럼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그녀를 안아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은서와 마주친 그는 삐딱하게 기울어지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를 밀어냈다. 머리로는 그녀를 달래주고 보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능력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는 은서 아버지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모멸로 가득했던 시선이 그를 꼼짝 못 하게 옥죄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위로받지 못한 은서의 투정이 고조에 달했다. 급기야 그녀의 감정이 제멋대로 날뛰는 망나니처럼 춤을 추었다. 엎친 데 덮친 격,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한계에 달한 태주는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악에 받쳐 피를 쏟듯 뱉어낸 말, 헤어지자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 순간에는 그랬다. 죽어도 하지 말았어야 했으나 그 말이 튀어나오던 순간만큼은 진실이었다. 극도로 예민해진 신경 줄이 은서로 인해 끊어지자, 태주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별을 선언했다. 그리고 낭떠러지로 몸을 날리듯 군대로 몸을 숨겼다.
그 날 이후, 그는 은서를 잊었다. 아니 잊었다고 믿었다. 가슴 깊은 곳에 묻은 그의 사랑은 무덤에 뉘인 사체처럼 썩어 들어, 백골이 진토가 되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 질긴 것이 가닥가닥 살아나 그의 가슴에 생채기를 남길 줄 몰랐다. 옛사랑이 휘두른 칼에 베여 신음하느라 아내를 진실로 사랑하지 못했다. 그때 태주는 몰랐다. 자신이 너무 많은 것을 은서에게 주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래서였을까. 후배가 소개한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미안함이었다.
수학교사라는 딱딱한 이미지와 달리 아내의 첫인상은 적당히 부푼 풍선처럼 말랑말랑 편안했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아내와 그는 사소한 일상의 것부터 그즈음의 정세까지 술술 이야기가 잘 통했다. 신이 나서 눈을 반짝이며 서로의 꿈과 미래도 이야기했다. 비 갠 날의 시냇물처럼 거침없이 이어지는 말의 홍수 속에서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 그의 입가에는 달콤한 웃음이 묻어있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를 소개받으며 은서를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 아니,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은서와 비교하던 못된 버릇이 고개를 숙인 것이.
“연극 티켓이 있는데, 우리 같이 갈래요?”
애프터 신청을 한 것도 아내였다. 질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아내는 그의 마음을 향해 차분하게 걸어 들어왔다. 좋은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고 자란 아내는 마음이 따뜻한 여자였고, 남에게 자신을 맞추는 사람이었다. 소박한 그의 취향을 존중해주었고, 아무 불평 없이 따라주었다. 아, 세상에는 이렇게 착하고 편안한 사람도 있구나, 감탄하던 그는 어느새 그런 아내에게 익숙해졌다. 그리고 세상 모든 여자가 아내처럼 수더분하고 편하리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와, 내가 좋아하는 다락방도 있네?”
레제지에서 30분을 달려 도착한 작은 마을 후퓌낙. 호텔 르네상스로 들어서는데 또 아내 목소리가 들린다. 태주는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조수석을 노려본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노곤해진 은서가 조수석에 잠들어 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태주는 차 안을 둘러본다. 당연히 아내는 없다. 핸들을 잡은 손이 두려움으로 파르르 떨린다. 왜 이러는 걸까. 왜 자꾸 아내의 망상이 그를 짓누르는 걸까.
“벌써 다 왔어?”
잠에서 깨어난 은서가 철없는 아이처럼 해맑게 그를 바라본다. 은서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등으로 서늘한 바람이 스친다. 불안하고 어색한 기운이 그를 감싼다. 어서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 그는 초조함을 감추려고 그녀의 뺨에 입을 맞춘다. 어서 내리자. 마음이 급해진 그는 그녀의 입가로 연꽃 같은 미소가 피어났다 스러지는 것을 보지 못한다.
르네상스 호텔은 고풍스러운 저택 같은 분위기다. 1층에는 정원과 어우러진 레스토랑이 있고, 2층과 3층에 객실이 있는 아기자기하고 아담한 호텔. 딱 아내의 취향이다. 아 또, 불길한 기운이 엄습한다. 마수의 손길처럼 음습하게 다가오는 아내 생각으로부터 어서 도망쳐야 한다. 체크인하기 무섭게 그는 은서의 캐리어까지 들고 삐걱거리는 오래된 나무계단을 오른다. 허둥거리느라 그는 그녀를 챙기지 못한다. 3층 계단을 오르며 그는 그녀의 얼굴 위로 어둠이 깔리는 것을 보지 못한다. 티 내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그를 짓누르는 아내의 기억으로부터 도망치느라 빨라지는 걸음을 억제하지 못한다. 어서 몹쓸 생각들로부터 몸을 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방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태주는 쾅 소리 나게 문을 닫고 와락 은서를 끌어안는다. 불안한 가슴을 들키지 않으려는 몸부림으로, 추적자로부터 몸을 숨기듯, 성급하게 그녀의 입술을 더듬는다. 지금 그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괜찮아. 괜찮으니까 우리만의 여행을 즐기자고 그녀의 마음이 그의 가슴을 쓰다듬어 주기를 애절하게 바란다. 그런데 그녀가 이상하다. 그녀의 몸이 가시처럼 뾰족하고 냉골 마루처럼 차갑다.
“이러지 마, 피곤해.”
은서가 그를 뿌리치며 침대로 쓰러지듯 눕는다. 입술을 앙다문 표정이 북극 바람보다 더 쌀쌀하다. 스러진 붉은 동백꽃처럼 서러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