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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Apr 12. 2021

책리뷰- {야생초편지}

황대권 글과 그림 /출판사 도솔/287page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 2002년도에 발행된 다소 오래된 책으로 MBC 느낌표 '책을 읽읍시다'에 선정된 도서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겉으로 얼핏 봐서는 야생초 관찰 일기이지만, 실은 군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한 젊은이가 타율과 감시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했던 생명의 몸무림이었다고 말한다.


갱지 느낌의 누런 표지에 작가의 흐릿한 사진과 글씨, 야생초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의 추천 글이 인용되었다. 저자 황대권은 1955년 서울 출생으로 1985년 학원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는다. 제3세계 정치학을 공부한다는 이유였다. 이후 2001년 이 사건은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극으로 밝혀졌지만, 마흔네 살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였다. 가장 찬란한 인생의 30대 황금기를 국가 조작극으로 인해 희생된 그는 어떻게 감옥 생활을 이겨 냈을까?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 감옥 마당에서 무참히 뽑혀 나가는 야생초를 보며 나의 처지가 그와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밟아도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야생초의 끈질긴 생명력을 닮고자 하였다. 아무도 보여주지 않는 "잡초"이지만 그 안에 감추어진 무진장한 보물을 보며 하느님께서 내게 부여하신 무안한 가능성에 대해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우연히 교도소 벽에 도배된 가톨릭 신문의 천주교 순교사를 읽고 베드로 순우리말의 '바우'라는 세례명으로 종교생활을 시작했다. 황대권이 감옥에 있던 시절 이해인 수녀님은  편지를 보냈고 그 편지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황대권은 안동교도소, 대구교도소 그리고 대전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이때 그는 미선이라는 동생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옥살이의 외로움과 서글픔을 견딘다. 이 책의 특징은 편지글의 형식을 띠고 있어 편안하게 읽힌다.


저자는 교도소 마당에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의 잡초인 야생초에 관심을 갖는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야생초를 그림으로 그리기도 하고 식사할 때 고추장에 찍어먹는 음식으로 먹기도 한다. 그러면서 야생화들의 이름을 외우고 더욱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며 옥중의 힘듦과 고통을 잠시 잠시 잊기도 하였다.


옥중에서 돈을 모아 야생화 도감을 사서 본격적으로 야생화를 연구하기도 한다. 동생이 보내준 영어성경으로 공부도 하며 신앙을 키워 간다. 좁은 독방에 절반은 잠자는 공간으로 한쪽은 책무덤으로 한쪽은 그림도구와 화판을 놓았다. 그는 그걸 펼쳐 놓으면 방 안에서 궁뎅이도 돌리지 못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매일 똑같은 일상과 마주 대하는 똑같은 사람들에서 잠시 비껴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며 게다가 야생화에 관심을 갖고 관찰한다. 나름 그 안에서의 괴로움과 힘듦 그리고 외로움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기고 활력을 얻고자 노력을 하였다.


그가 그린 야생화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신사임당이 그린 그림과 닮아 있다. 딱지꽃, 방가지똥, 매듭풀, 땅빈대, 수까치 깨, 왕고들빼기, 비름, 국화 등의 그림은 더 그렇다. 제비꽃 그림은 특히 예쁘다. 그리고 제비꽃에 대한 그의 찬사가 다양하다. 제비꽃은 향기가 좋아 염료의 원료와 다양한 약초의 쓰임에 대해서 알려준다. 또 제비꽃을 모둠 야생초 무침에 넣으면 보라색  꽃이 구미를 당긴다고 한다. 그는 모둠 풀 물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고 야초 차에 탐닉하기도 한다.


저자는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 였다고 말한다. 옥중에서 쓴 황대권의 시는 옥중생활을 잘 묘사하고 있다.


보리밥에 꽁치 한 도막 먹고

소금으로 양치질한다

하늘색 법무부 담요 위로

비스듬히 기대어 누워

발 베개 뒤로하고

한 평 넓이 천장을 올려다본다

담배는 끊은 지 오래고

티브이도 말동무도 없다

아직 조금은 더 기다려야

거미 친구들도 얼굴을 내미리

언제나 이맘때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창살 너머 노을 진 하늘을 바라다본다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면

허공 가득히 떠오르는

그리운 얼굴들,,,,,,


야망이 컸던 한 젊은이의 30대와 40대 초반을 옥중에서 보냈다. 죄를 지었다면야 당연히 옥중생활을 할 수 있지만 국가기관에 의해 자신의 청춘을 교도소 수감생활로 바쳤다. 참 어이없고 가슴 아픈 일이다. 군부독재에서 이런 일들이 얼마나 비일비재했던가? 정치의 희생양이다. 누구도 책임지는 일이 없는 말도 안 되는 독재정치의 악랄한 행태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겠다.


그는 그렇지만 교도소 수감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즐거움과 나름대로의 보람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예쁜 책을 선물했다.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그런 책이다. 이후 그는 생태공동체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몇 권의 저서를 발행하면서 더욱 열심한 삶을 살고 있다. 근래의 그의 소식은 알 수. 없으나 그는 어디서든 최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야생초처럼 질긴 생명력과 끈기를 갖고 있으므로 말이다. 또한 싹둑 잘려 나간 그의 삶의 한 부분을 풍성하게 채워 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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