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신미영 sopia
Apr 09. 2021
책 리뷰-{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작
이 작품은 중편소설로 레프 톨스토이 중, 단편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주인공의 죽음으로 소설의 서막을 연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주인공이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마와 싸우며, 죽음에 맞서 처절하게 변화되는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미치 앨봄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고, 주변을 정리하며 화해와 사랑을 통해 편안한 죽음을 맞이 한 것과 상반된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을 처음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과 두려움을 아주 솔직하고 리얼하게 담아내고 있다. 살다가 예고치 않는 병마와 만났을 때 누구나 이런 마음이 들거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반 일리치는 우리 이웃들이나 가족의 모습이며, 또한 나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검사로 엘리트 대로를 달리던 40대 중반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옆구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것이 깊은 병마로 이어지게 된다. 그가 가장 심하게 고통을 느꼈던 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처럼, 자기를 동정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주변 친구들은 이반의 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에 집중되었으며, 가족들 역시 진심으로 이반의 죽음을 걱정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일상적인 피해를 받는 것에만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짓말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당신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 아플 뿐이라고, 또 치료받으면 좋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해 댔다. 오직 하인 게라심만이 그의 처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걱정을 해 주었다. 이반 일리치는 아닐 거라고 부정하다가 자신의 병을 오진한 의사를 의심하다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명확한 의사를 찾기도 하였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차단해 주던, 예전의 사고방식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죽음 앞에서 끊임없이 분노하고 절망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냉혹함에 서러워하면서, 신의 부재를 탓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삶에서 뭐가 잘못된 건지, 닥친 불행에 대해 자신에게 되물으며 답을 찾으려 하였다. 죽음이 가까이 오면서 하나 둘 자신이 잘못 살아왔던 것들에 대해 허위와 가식의 껍질을 벗겨 나간다. 결국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순간에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가족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면서, 두려움 대신 다른 희망의 빛으로 마지막 순간을 맞는다.
죽음이라는 주제는 참으로 무겁지만 죽음 앞에선 모든 게 용서가 되고 화해가 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 마지막을 어떻게 하고 떠나는 것이 현명한지를 생각해 보았다. 죽음을 통해, 우리는 삶의 끝자락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이고 인간다운 삶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지금처럼 늘 현재를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지인분이 돌아가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몰랐는데 평소 부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갑자기 사고가 나서 지병을 앓고 있었는데 더 악화가 되었다. 남자로서 권위와 무조건 자신의 말을 강요하기만 했던 것들을 평소 살아가면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고 했다. 그런데 돌아가실 즈음 부인의 손을 잡고 그동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함께 살아 준거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냥 돌아가셨더라면 마음을 풀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가셨다면 살아있는 분에게는 그동안의 상처를 안고 있을 것이다. 이 세상을 떠날 때 주변에 준 상처와 잘못을 인정하고 표현하고 매듭을 풀고 간다면 떠나는이나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물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화해 없이 가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화해를 하고 갈 것이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음이라는 단어는 꺼내기조차 싫은 그리고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믿으며 산다. 그리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든지 죽음을 맞게 될 것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이유는 지금 살아가는 동안에 더 잘 살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한 물음을 자신에게 묻고, 또 물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