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데 내 머리 속에 월세도 안 내고 들어앉았냐
“급한 건 아니어 보이는데, MRI 찍어 봅시다. MRI로 뭐가 더 나올 수도 있어요.”
진료 때 신경외과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대로 급한 게 아니길 바라며 집 근처 2차 병원에서 MRI를 찍었다.
컴퓨터로 MRI 영상을 열어보니, 좌뇌 바깥쪽 뇌막에서 CT에선 안 보이던 더 많은 흰 동그라미들이 보였다.
뇌종양은 축외종양(뇌막, 뇌 혈관, 뇌척수신경, 뇌하수체 등, 뇌 실질이 아닌 조직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뇌수막종, 청신경초종, 뇌하수체선종 등)과
축내종양(대뇌피질 뇌 실질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성상세포종, 교모세포종 등)으로 나뉘는데,
내 뇌 영상 속 종괴는 확실히 축외종양으로 보였다.
구글에 ‘meningioma’를 검색하면 나오는 논문 속 이미지들과 비슷한 점들이 많았고,
특히 종양이 정상 뇌막과 연결되는 부분이 혜성의 꼬리처럼 삐죽 솟아 보이는 dural tail sign도 있었다.
나는 MRI 영상이 담긴 CD를 가지고 대학병원 총 여섯 곳을 돌며 진료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신경외과 교수님들 중 일부는 방사선 치료를 제안했고, 일부는 지켜보다 커지면 수술하자고 했다.
나는 나름의 치열한 고민을 통해 후자를 선택했다.
여러 치료 방안 중 결정하기 위해 나는 대학병원 진료 외에도 논문이나 치료 가이드라인을 찾아 읽어 보았다.
환자 커뮤니티에 올라온 선배 환자들의 글을 읽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내 머리 속 불법 체류자에 대한 신상 털이는 조금씩 진행되었다.
지금까지 알아낸 바에 따르면 이 자의 정체는 다음과 같다.
이름: 다발성 뇌수막종 (multiple meningioma 또는 meningiomatosis)
위치: 좌뇌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이 접하는 곳의 뇌고랑 (convexity)을 감싸는 뇌막
형태: 헤이즐넛이 군데군데 박힌 판 형태의 초콜릿처럼, 둥근 덩어리가 드문드문 있는 넓적한 형태로 뇌막이 올록볼록하게 두꺼워져 있음
성질: 악성이 아닌 양성, 1급인지 2급인지는 모름. 2급은 증식 속도가 다소 빨라 1급에 비해 예후가 좋지 않을 수 있음
발생 확률: 만 30세 기준 10만분의 1, 다발성 뇌수막종만 따지면 더 낮아짐
발생 원인: 불명. 그러나 여성호르몬 수용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여성호르몬에 노출될 경우 세포 분열이 촉진되어 크기가 커질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