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저 의대생이에요
우리나라의 뇌종양 환자들은 의료 환경 특성 상 여러 대학병원에 발품을 파는 쪽을 선택하기 쉽게 되어 있다.
내가 진단을 받은 2024년 초반은 의정 갈등
(내 입장에서 솔직히 표현하면 ‘정부 주도 의료 초토화’이지만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독자분들을 위해 좀 더 널리 알려진 용어를 사용하겠다)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한국은 어느 외국과 비교해도 대학병원 진료 대기가 짧은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듯 뇌종양의 세부 분야로 들어갈수록 해당 파트를 전공한 의대 교수가 드물었다.
의식을 담당하는 머리에 침습적 치료를 받아야 할 지도 모르는 데다,
진료 대기가 몇 주에서 몇 개월 정도로 외국에 비해 길지 않고,
방문할 수 있는 3차 병원 수에 제한이 없고,
암 산정특례로 진료비 부담이 적은 상황에서 환자들은 자연스레 여러 대학병원을 방문하게 된다.
뇌종양의 경우 양성이라도 암 산정특례가 적용되어 진료비의 5%만 환자가 부담한다.
나는 이러한 소위 ‘의료 쇼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환경에서는 합리적 사고를 하는 누구든지 그렇게 선택하게 되어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조금이라도 내 질병 경과를 좋게 만들 수 있다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6개 대학 병원 진료를 본 후 최종 한 곳을 결정해 다니고 있다.
이 병원 저 병원 진료를 받으면서,
나는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또는 초진 예약 시 메모 남기는 칸에 의대생임을 밝혔다.
이런 행동은 몇 가지 의미가 있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 듣기 위한 게 가장 크다.
아무래도 카데바 선생님의 머리를 직접 열어보고 신경해부학 시험을 통과했으며
의료 영상을 보고 흰색 검은색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는 (적어도 그럴 거라고 기대되는)
환자에게 설명하는 게 의사 입장에서도 더 쉬울 것이었다.
교수님 또한 본과생이었던 적이 있으므로 내 스케줄이 어떤지 대충 알 것이고,
진료나 치료 일정을 잡을 때 구구절절 늘어놓기보다
‘저 의대생이에요’ 한 마디로 끝내는 게 훨씬 효율적이기도 했다.
물론 전국 의대생 대부분이 자발적으로 휴학계를 제출한 현 상황도 아실 테고.
음...부수적으로 약간의 동정심을 유발하고 싶기도 했다.
그럼 교수님은 어디 의대인지, 몇학년인지, 집은 어디인지 물어본다.
학교명을 알고 싶은 건 학기 중에 어느 지역에 있는지,
혹시 본인이 가르치는 학생이나 본인의 후배가 아닌지 파악용 질문이리라.
학년은 이 환자가 가진 의학 지식의 수준이나 대략적 스케줄을 알기 위해 물었을 거다.
(물론 의학 지식은 교수님이 이 질문을 통해 추정한 것보다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사물이 거울에 비치는 것보다 ‘멀리’ 있습니다.)
거주 지역은 아마 병원 다니기 편한 위치에 있는지를 아는 게 진료에 도움이 되어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커버 사진은 perplexity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