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 뇌종양이 의심됩니다
의사가 아니라 환자가 먼저 될 줄은 몰랐다.
대학 병원을 활보하는 상상 속의 내 모습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는데, 의사면허증 대신 환자등록증을 먼저 손에 쥐게 되었다.
2024년 1월 말 남편과 함께 도쿄 여행을 다녀왔다.
도쿄바나나, 시로이코이비토, 로이스 초콜렛 등 각종 초가공식품을 캐리어 가득 사 와서 인천공항에 내렸다.
한국 유심으로 갈아끼웠더니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전화 몇통이 와 있다.
이상하다, 나는 여론조사 수신 거부 했는데.
집에 오니 문득 2주 전에 대학병원에서 건강 검진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마치 학점을 확인하듯 무덤덤한 척 하며 검진 결과를 열어 보았다.
‘뇌수막종 의증’이라는 추정진단과 함께 ‘다발성 결절종괴형 병변’이 좌뇌에서 관찰되었다는 말이 써있었다.
02로 시작하는 건 건강검진센터가 소속된 병원의 전화 번호였다.
시간은 벌써 자정, ‘설마 별거겠어?’하는 생각과 함께 떨떠름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보통 암은 ‘암종(-carcinoma, -adenocarcinoma)’이나 ‘육종(-sarcoma)’,
그것도 아니면 ‘모세포종(-blastoma)’이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배웠고,
‘뇌수막종’은 ‘종’자만 붙어있으니까 암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다소 정확도가 떨어지는 추론으로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건강 검진은 남편 회사에서 직원 복지 차원으로 제공하는 것을 이용했는데, 기본 검진에 몇 가지 항목을 추가해 받을 수 있었다.
갑상선 초음파, 대장 내시경, 유방 X선 검사, 관상동맥 검사 등 수십 가지 항목 중에 2가지를 고르는 형태였다.
나는 유방 초음파와 뇌 CT를 골랐다.
우선 만 30세가 가까워 오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유방암 스크리닝을 주기적으로 하는 것이 이득일 것 같았다.
다음으로 대장 내시경을 받으려고 했는데,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편이 대장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다는 판단에 따라 그에게 검진 전날 화장실 우선 사용권(즉, 대장 내시경)을 양보키로 했다.
갑상선 문제의 경우 증상 있을 때 검사해도 무방하다고 학교 수업에서 들은 적이 있어 제외했다.
결국 평소 즐겨 읽는 ‘팔호광장’ 선생님 인스타에 올라온 조언에 따라 뇌 CT를 찍게 되었다.
어이없는 사고를 피하기 위한 일종의 안전 수칙을 모아둔 포스팅이었는데,
그 중에 ‘젊은 사람들 뇌동맥류로 급사하는 경우가 있으니 뇌 MRI 찍어보라’는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뇌 CT에서 진짜로 뭔가 발견될 줄은 거의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 날 건강검진센터가 소속된 병원의 뇌수막종 전문 교수님 진료를 예약하고 주말동안 기다리는데 온갖 걱정이 머리 속을 채웠다.
“다발성이라는데 파종성(씨를 뿌린 것처럼 종양이 뇌막에 퍼져 있는 형태)이면 어떡하지?
개두술 후유증으로 분노 조절 문제나 기억력 장애, 편마비, 감각상실 있으면 어떡하지?
뇌수막종 아니고 무슨 괴악한 종양이면 어떡하지?
뇌수막종이지만 드물게 악성이면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