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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파이어족이라는 꿈과 헤어질 결심

의사라는 진로에 대한 새로운 생각

by 저삶의

초보가 차를 두 번 끌고 나가서 한 번은 사이드 미러를 해 먹고, 한 번은 주차하다 옆 차를 긁어 먹었다고 가정해 보자.

“왜 나는 매번 사고를 내지?” 하는 생각이 잠깐이라도 들 것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큰 사람이라면 “나는 운전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인가 봐.”라는 성급한 일반화에까지 이를 수 있다.


“나는 사회생활에 부적합한 사람인가 봐. 나는 조직에 낄 수 없나 봐. 나는 윗사람들이 싫어하는 성격인가 봐.”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후 2년 반 정도 다닌 회사를 그만두며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의대에 오기 앞서 발 담갔던 진로들에서 나는 실패자라는 셀프 낙인을 찍곤 했다.


NASA 연구원이 되겠다며 입학한 첫 대학에서는, 천재성이 없으면 천재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사람을 사귀는 법을 몰랐으니까. 집단에 동화되고 소속감을 느끼는 방법도 전혀 몰랐다.

연구실 인턴 때까지 좀 나아지긴 했어도 영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천문학을 ‘못 했다.’ 못 하다 보니 관심이 없어졌다.


대학원 진학을 단념하고 운 좋게 취업을 했다.

드디어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사람들에게 인사도 열심히 하고 스몰토크도 잘 나누고 다녔다.

그런데 내가 보좌해야 하는 상사는, 의미 없는 일을 계속 시키면서 틈만 나면 내 자리로 와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한번 늘어놓았다 하면 2시간 정도는 기본이었고 퇴근 시간도 곧잘 넘겼다.

매일 그런 상황을 견디면서 일 외적인 부분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는데 잘 되지는 않았다.

커리어도 쌓이는 게 없는 것 같아 평소 관심 있던 과학 기자 면접을 보러 다니던 차에 상사가 바뀌었다.

일 열심히 하는 사람인 것 같아서 안심했는데, 알고 보니 그냥 나르시시스트 그 자체였다.

이렇게 하라고 해서 이렇게 하면, 왜 저렇게 하지 않냐고 면박을 주고, 그래서 저렇게 해 주면 그런 식으로 일하지 말라고 인신공격을 섞어가며 화를 냈다.

거기에 같은 팀의 다른 상사도 합심해서 나를 문제 덩어리 취급했다. 고작 세 명짜리 팀에서 막내인데, 나보다 10살쯤 많은 두 명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다.


나 같은 사람은 사람들을 상대할 생각 하지 말고 가능한 한 빨리 자산을 확보해 이 사회에서 빠져 주는 게 피차 좋겠구나 싶었다. 약대 편입 시험 (PEET)을 준비할 때도, 병원 약국 조제실 같은 곳에서 일하면 사람을 안 만나도 되지 않을까 하고 나이브하게 상상했다.


의대에 들어와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내 진로에 대해 몇 가지 시나리오를 구상하곤 했다.

특별할 것은 없다. 초기에 최대한 집약적으로 일해 만든 시드머니로 자산을 불려 조기에 은퇴하고 싶었다. 어쨌든 사람을 최대한 상대하지 않는 미래를 그렸다.

그래. 나는 파이어족이 되고 싶었다.




의대에 등교하지 않은 지 1년 반이 넘었다. 전 정부의 의료 정책 때문에 대부분의 의대생이 비슷한 상황에 있다.

작년에 휴학을 결정하며 의료는 이 나라의 다른 여러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갈아 넣어 돌아가는 시스템이란 걸 알게 됐다. 어떤 정책이었는지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이 글의 취지와 맞지 않아 생략한다.

어쨌든 내가 볼 땐 건강보험 고갈을 앞두고 더 많은 사람을 더 세게 갈려나가게 만드는 권력을 보여줌으로써 취약한 시스템을 대충 가리려는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갈려나가는 의사도, 갈려나가는 의사에게 치료받는 환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의정 사태가 있기 전부터 나는 언젠가 영미권 국가에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미국의사시험(USMLE)을 아주 조금씩 공부했다.

그러다 이 상황이 되면서, 내가 의사로서 보람을 느끼며 일하고 신경외과 환자로서 평생 적절한 관리를 받기 위해서는 미국에 가는 것밖에는 답이 없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작년 초 뇌종양 진단도 받고 의정 사태도 터지면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내 뇌는 시야가 좁아졌다.

언젠가 뇌 수술도 받아야 되고, 미국도 가야 하고, 아기도 낳고 싶은데, 주어진 시간 안에 다 할 각이 안 나왔다. 게다가 임신 자체가 종양을 키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출산은 욕심처럼 느껴졌고, 미국 의사가 되기 위한 절차도 어느 타이밍에 때려 넣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나는 또다시 실패한 듯 느껴졌다.

저속노화 생활 습관을 실천하면서 열심히 요리하고 운동했던 것도 내 힘으로 당장 개선할 수 있는 게 건강밖에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활 습관이 개선되자 ‘실패자 마인드셋’을 가졌던 내 사고 흐름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하루 종일 누워있기를 갈망하던 사람에서, 오르막 계단을 만나면 쾌재를 부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잠이 부족해 멍한 상태로 하루를 견디고 저녁엔 진통제를 맞듯 탄수화물을 폭식하던 사람에서, 공부와 식사에 진심으로 집중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진로에 대한 관점도 변화했다.


스스로 잘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대학원 진학을 포기한 후로 직업을 파이어족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던 게 틀림없다.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 의학이 내 천직이라 느끼고 난 후로도, 사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랬었다.

어떻게 하면 빨리 돈 모아서 조기 은퇴할까 하는 궁리에 꽂혀 있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수영이나 달리기를 꾸준히 하면서 내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수준의 신체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그러면서 운동뿐만 아니라 이전에 힘들게 느껴졌던 여러 사소한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청소, 빨래, 설거지, 장 보기 같은 일상적인 일들이 그렇다.

예를 들어 재작년엔 공부하다가 빨래를 널어야 할 때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마음에도 권태감이 불붙듯 일어나곤 했다.

‘어? 더 이상 빨래 너는 게 힘들고 귀찮지 않네?’라고 느낀 건 최근이다.

어느새 집안일은 ‘시간을 잡아먹는, 누가 대신 해주면 좋겠는 일’에서 내 뇌를 쉬게 하고 몸을 풀어줄 수 있는 고마운 기회가 되어 있었다.


이런 사소한 변화들이 쌓이다 보니 직업 활동에 대해서도 달리 생각하게 되었다.

‘빨리 돈을 확보하고 그만둬야 하는 의미 없고 힘든 시간’에서

새로운 어려움을 만나고 해결하는 과정을 꾸준히 반복하면서 나를 평생 성장시키는 활동’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나는 평생 일하기로, 평생 성장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한 끝까지.

어차피 시간이 갈수록 어떤 직업이든 ‘파이어족’이 되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라는 환자에게 스스로 생활 습관을 처방하고 돌보는 경험을 하면서 의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이전까지 나는 전문의나 일반의가 되어 개인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 시스템 안에서의 미래만 생각해 왔다. 의사 면허증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의료 행위라는 일종의 경제적 해자에 기댄 사고방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의료 시스템의 경계를 벗어나 의학적 전문성을 활용할 여러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닥터프렌즈’의 우창윤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윔다이어트’에서는 다이어트를 위해 종합적인 생활 습관을 처방해 준다.

그런 생활 습관 처방을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면에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가 떠올린 아이디어 중 하나다. 너무 자세히 적으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하지 않겠다.


또한 미국의사시험(USMLE) Step1이라는, 내 학년에서는 다소 도전적인 시험에 합격하게 되면서 든 생각도 있다.

이 시험을 통해 질병과 치료를 단순히 암기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발병 원리와 경과에 대해 분자 수준부터 사회적 수준까지 이해하는 ‘참공부’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의학적 현상을 보는 내 시야가 넓어진 것이 느껴졌다.

AI가 최신 의학 정보를 척척 찾아주긴 하지만, 의학 공부를 제대로 거쳐 관련 내용을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조감할 수 있는 뇌와 그렇지 않은 뇌가 그 정보를 AI로부터 얻어내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치는 아주 큰 차이가 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커버 사진은 달리기 한 후 스트레칭이 끝날 때 머리 위를 보았을 때 찍었다.

달린 후 날카로워진 정신으로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을 관찰할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




이렇듯 지난 1년 반은 내가 파이어족이라는 망상 및 ‘실패자 마인드셋’과 이별하는 시간이었다.

자기 돌봄은 진로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계속해서 달려 나갈 자신감을 마련해 주었다.


이런 것까지 얻을 생각은 아니었는데…


다시 한번 <<저속노화 마인드셋>>이 꽂혀 있는 책장 쪽으로 눈웃음을 지으며 이 브런치북을 마무리하겠다.


이제 에필로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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