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싶은 거 거의 다 먹고 삽니다
“나도 건강하게 먹고 싶지. 근데 이 세상에 맛있는 게 너무 많은데 어떻게 그래?”
“난 그냥 먹을래. 안 먹고 오래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저속노화 식단을 비롯한 몸에 좋은 식습관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런 반응을 흔히 받을 수 있다.
나도 1년 반 전만 해도 그렇게 대답하던 사람이었다.
내 입맛이 떡볶이, 양념치킨, 고로케, 아이스크림을 선호하는데 어쩌라고?
무언가를 ‘짜서 맛없다’라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되고 (짤 수록 맛있지!)
빡빡한 하루 끝에 저녁으로 샐러드를 먹으러 가자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났다.
‘당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 8월부터 저속노화 식단에 발을 들인 후 좋아하는 음식이 점차 바뀌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뭔가를 먹으러 갈 때 구운 생선을 못 먹는다고 말할 정도로 싫어했는데,
이제는 일부러 생선구이 식당을 찾아간다.
나에게는 오이 싫어하는 유전자가 있는 게 틀림없으며 심지어 오이가 구역질 난다고 느끼기도 했는데,
이럴 수가! 오이는 그냥 맛있는 음식이었다.
에그마요만 들어있는 것보다 오이가 같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더 맛있고,
참치마요에는 아삭한 대파를 왕창 썰어 넣은 게 더 맛있다는 걸 깨우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친구가 라따뚜이나 구운 가지를 좋아한다는 얘길 들으면,
‘그게 가능한가? 혹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했었다.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에게 아주 솔직했으면 솔직했지.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게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는 데에 큰 동기부여가 되긴 했다.
하지만 일단 습관을 정착시킨 후 유지하는 데는 그다지 의지나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마치 아우토반을 전세 낸 것처럼 그냥 쭉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최근 비만 치료제에 대한 책인 <<매직필>>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식이조절을 통한 체중 감량이 1년 이상 유지되는 비율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즉 건강한 식생활이 습관으로 잘 자리 잡은 경우가 20% 정도라는 걸 의미한다.
나는 지금과 같은 식생활을 3개월 정도 더 유지하면 1년에 도달한다.
현 상태로는 이전 식생활로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고,
따라서 이전의 파행적 생활 습관에 대해 스스로 ‘완전 관해’ 판정을 내렸다.
일반적으로 어떤 만성 질환의 흔적이 관찰되지 않고, 재발 가능성이 존재하지만 비교적 낮은 상태를 완전 관해라 한다.
지금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의지력이 거의 관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결정적이다.
식습관 조절은 의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요즘 ‘학계의 정설’이다.
다이어트 또는 식이조절의 본질에 대한 책으로 닥터스윗비의 <<습관 하나로 평생 가벼워졌다>>, 그리고 미국 정신과 의사가 쓴 <<식탐 해방>>을 추천한다.
이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식생활에 의지나 강박이 최대한 개입하지 않아야 비로소 뇌 속에서 얽혀 있는 음식과의 관계가 풀린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포만감이나 공복감을 더 잘 인식하게 되고, 특정 음식에 대한 중독이 사라지고, 그저 갈망을 채우기 위해 입에 뭔가를 집어넣는 파괴적 습관에서 벗어나 먹는 행위의 진정한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내가 전수하려는 입맛 바꾸고 유지하기 꿀팁들도 이 책들과 결이 비슷하다.
식습관에 의식적인 채찍질이나 벌칙이 들어가지 않고 그저 자연스럽게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는지 조절하게 되는 방법이다.
초가공식품이 주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도파민에 익숙해져 있는 뇌에서 벗어나는 게 식습관 변화의 기본이다. 초가공식품이 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2-5장에서 다루었다.
이 단계가 체감상 입맛 바꾸기의 70% 정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즉 다른 단계를 무시하고 이 부분만 실행해 봐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이 단계 없이 다른 단계만 한다면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 <<매직필>>에는 초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쥐가 건강식 사료를 먹느니 차라리 쫄쫄 굶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초가공식품을 주로 먹던 시절에는 엄마나 남편이 만들어주던 일반적 식사는 뭔가 ’킥‘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런 비슷한 상태에서 야채나 생선이 맛있게 느껴지기는 어렵다.
초가공식품 줄이기를 시도할 때 초기에는 시간이나 비용이 전보다 많이 드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간편식 중에 초가공식품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음식에 대한 갈망이 줄어들고 음식을 소비할 필요가 줄면서 장기적으로 식비는 별로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초가공식품은 결국 많이 소비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선 쉬운 것부터 해 보자.
마트에서 사 먹던 박스 포장 과자 대신 제과점에서 만들어 파는 쿠키를,
편의점 샌드위치 대신 카페나 빵집 샌드위치를 사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냉동만두 대신 만두집에서 쪄서 파는 만두를 사 먹어 보자.
굳이 건강식이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냉동피자 대신 배달 피자를 고르기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단 가공육은 적게 든 걸로 고르자!)
마트에서 뭔가를 산다면 칼로리나 영양성분보다 원재료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 보자.
칼로리가 낮은 것보다는 뭔지 모르겠는 화학물질이 덜 들어있는 걸 우선적으로 골라 보자. 칼로리나 영양성분도 고려하면 더 좋고.
닭가슴살 소시지 대신 냉동 닭가슴살을 구매하고, 스팸 대신 구이용 앞다리살을 골라 보자.
사과당근주스 대신 사과와 당근을 구매해 씻어 먹어 보자.
뇌가 포만감을 인지하는 과정은 오감이 관여한다.
단순히 음식의 부피나 영양성분만을 감지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의 형태, 냄새, 질감, 씹는 시간 등 인지되는 감각의 세기와 시간이 포만감에 영향을 준다.
식사 때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스크롤링하거나 유튜브를 본다면,
식사의 도입부만이라도 먹는 행위에만 집중해 보자.
가능하면 더 오래 폰을 내려놓아도 좋다.
이렇게 음식에 빠져들 정도로 집중하게 되면 그 음식을 정말 본전 뽑을 수 있다.
음식을 뽕뽑는다는 것은 많이 먹는 게 아니라 한입 한입에서 쏟아지는 감각을 그대로 수용하는 일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데이트를 할 때 폰을 보면서 말하면,
폰으로 뭘 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데이트도 망치기 쉽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과 함께할 때, 그 음식에 나를 완전히 내맡겨 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오이, 가지, 애호박, 당근, 양파, 대파, 파프리카 (그래… 사실상 모든 야채를 안 좋아했었다.)의 소리, 식감, 맛, 형태, 향을 오감으로 완전히 감각해 본 후 사실은 이것들이 엄청나게 맛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물론 (1)의 초가공식품 줄이기가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야채가 계속 맛없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먹을 때 집중하는 것에 더해, 음식을 먹은 후 몸의 변화까지 살펴볼 수 있다면 더 좋다.
정희원 교수님이 가속노화 음식에 대해 설명할 때 ‘인슐린이 체액을 저류 시켜 다리가 붓는 느낌이 난다’고 하는 것을 듣고, 진짜 그런지 한동안 지켜봤던 적이 있다.
정제 탄수화물로 된 음식을 먹자 정말로 종아리가 땡땡해지면서 온몸에 기운이 없어지고 축 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을 여러 번 자각하자 뇌가 ‘이런 음식을 먹으면 나중에 기분이 안 좋아진다.’라는 학습을 한 듯하다.
그래서 한때 아주 좋아했던 떡볶이, 튀김, 돈까스, 면류 (짜장면, 짬뽕, 칼국수, 우동, 라면, 라멘, 비빔면, 볶음면), 과자류를 지금 생각하면 다리가 붓고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느낌이 바로 떠오른다.
이렇게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몸의 감각 때문에 이 음식들의 선호도는 많이 떨어졌다.
’앞으로 빵 절대 안 먹을 거야.‘
와 같이 극단적인 맹세를 하는 건 결국 식습관에 의지력이 개입하게 만든다.
어떤 음식을 ‘참아야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반대급부로 갈망이 생겨난다고 <<식탐 해방>>의 저자는 말한다.
나도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동의한다.
예를 들어 아무 생각 없이 가속노화 생활을 하던 시절에
다이어트 해보겠다고 치즈떡볶이를 며칠간 참으면 결국 그 음식을 손에 넣게 되었고,
입에 넣는 순간 마치 살인범 누명을 벗는 듯한 황홀경을 느끼게 되었다.
참지 않고 바로 먹었더라면 그 정돈 아니었을 텐데.
그런 황홀경을 맛보고 나면 뇌는 그 음식으로 큰 보상을 받았다고 인식해 더욱 그것을 갈망하게 된다.
그런 만큼, 전까지 좋아했던 음식을 완전히 끊겠다고 결심하는 건 위험하다.
“이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라고 투덜거렸던 때를 기억하는가?
그 말 맞다. 음식 종류와 조합이 무한한 세상이다.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음식뿐만 아니라 좋아하고 싶은 음식으로도 맛있게 먹을 방법이 정말 많다.
2-4 쉬어가기의 몸에 좋은 간식 예시만 하루에 1가지씩 해 먹으려 해도 10일이 넘게 걸릴 것이다.
나는 오늘도 이 방법을 사용했다.
집 근처에 일반 백밀로 만든 치아바타로 샌드위치를 기가 막히게 하는 집이 있고, 100% 통밀이나 호밀 빵을 기똥차게 만드는 빵집이 있다. 두 군데 중 고민하다가, 둘 다 실력이 쟁쟁하니까 좀 더 혈당 변동성이 낮은 통밀빵을 먹기로 했다.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나중에 먹으면 된다. 통밀빵집이 쉬는 날에 먹는다든지, 뭐 언젠가는 먹을 수 있을 거니까.
며칠 전에는 오후에 배가 고파 한줌 견과류와 초코맛 단백질바 중에 고민하다가 또 한줌 견과를 선택했다. 이로써 초코맛 단백질바는 몇 주 째 그대로다.
이런 식으로 맛있는 것과 맛있는 것 사이에서 고민이 될 때 좀 더 건강한 쪽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되면 결국엔 습관이 된다.
습관, 즉 뇌 속의 새로운 지름길이 형성되는 기간은 보통 짧게는 3주, 길게는 6개월 정도로 보는 듯하다.
2부에서 언급했듯, 나는 자칭 저속노화 학파이지만 가끔씩 에그타르트, 휘낭시에, 까눌레 같은 ‘가속노화 음식’을 먹는다.
이 디저트들은 내가 잡곡밥, 통밀빵, 야채, 생선을 주로 먹게 된 후로도 우선순위에서 크게 밀리지 않은 것들이다.
정제 탄수화물이 포함되어 있지만 부피가 작다 보니 (3)에서 언급한 다리 붓고 컨디션 나빠지는 느낌도 딱히 들지 않아서 살아남은 듯하다.
이것들 뿐만 아니라, 정말 맛있어 보이는 가게가 있으면 찐빵, 찹쌀떡, 설탕 치지 않은 꽈배기 (단맛 나는 조미료는 어릴 때부터 안 좋아한다), 애플파이 같은 고도의 가속노화 음식도 먹는다.
한 달에 1~2번 정도는 먹는 것 같다.
심지어 초가공식품도 필요할 때는 먹는다.
예를 들어 거의 모든 단백질바는 초가공식품으로 볼 수 있다.
(4)에서 말한 초코맛 단백질바는 미국의사시험(USMLE) Step1을 칠 때 점심 대용으로 사뒀던 게 몇 개 남아서, 아주 가끔 그릭요거트와 함께 먹는다.
또한 과식을 하는 게 몸에 좋지 않지만,
10km 대회를 뛰고 나서 결혼식장에 갔을 땐 뷔페 5 접시 정도를 꽉 채워 먹기도 했다.
어차피 다시 렌틸콩밥을 만들 게 될 것을 아니까, 잠깐 가속노화 음식 먹거나 한 달에 한두 번 배 터지게 먹는 건 그다지 걱정되지 않는다.
건강한 식생활을 하다가 가끔씩 길을 벗어났다고 해도 스스로 ’역시 난 건강한 습관을 유지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다 ‘ 라거나 '이렇게 자꾸 후회하고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그만두자‘ 와 같은 생각을 할 필요가 하등 없다.
어떤 라이프 스타일이 습관으로 자리 잡은 후에는 그 지점이 새로운 항상성이 된다.
건강한 식생활의 아우토반에 들어서면 쭉 달리려는 관성도 같이 생기니까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는 게 좋다.
나는 전과 비교해 식생활이 아주 건강하게 바뀌었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들이 나에 대해 기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내가 뭐 의지력이 남다르거나 자기 관리가 철저하거나 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사실상 식욕을 끝까지 채우면서 풀소유로 살고 있다.
지금처럼 식욕이 완전히 채워진 적이 없을 정도이다.
오히려 아침에 맥모닝, 점심에 떡볶이, 간식으로 얼박사, 저녁에 치킨을 먹던 2년 전에는 항상 더 먹기를 참아야 했다.
욕구를 최대한 만족시키며 지내기에 뇌가 이전 생활로 돌아가려는 고집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먹고 싶은 걸 거의 다 먹고 살지만, 싹 다 먹지는 못한다.
어떨 땐 통밀빵에 당근라페 조합과 렌틸콩밥에 취나물무침 조합이 둘 다 먹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점심에 통밀빵을 먹을 거니까 저녁에 렌틸콩밥을 짓자고 계획을 하고 나면,
적어도 건강에 해로운 음식이 들어올 기회가 많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