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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영 Sep 22. 2023

아빠는 이발사입니다

아빠만 떠올리면 어떤 일이든



아빠는 이발사다. 중학교 때부터 다른 사람 이발소에서 이발하는 걸 도와주다가 환갑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이발소를 하고 있다. 나는 작가다. 아빠가 이발소를 하는 것과 내가 글 쓰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글을 쓰기 전 자주 아빠를 떠올린다.      






아빠는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면 가까이 다가가 그의 외투를 자연스럽게 받아준다. 그리고 옷걸이에 걸면서 세 개의 좌석 중 어디에 앉으면 되는지를 손짓으로 얘기한다.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살방살방 걸어서 손님 옆으로 간다. 이발 가위를 들고. 손님에게 도착하면서 이발이 아닌 말을 시작한다.

 

“덥지예. 1시부터 시청 쪽에 시위 있는 날이라 하던데 아마 차 막혔을 낀데요.”


손님은 살짝 웃으며 대답한다. 이발을 하는 사이 아빠는 머리카락에 집중하지만, 중간중간 말을 계속 건넨다. 그리고 옆머리를 자를 때에 살짝 어깨가 올라가지만 금세 어깨의 힘을 뺀다. 어깨가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반복된다. 그사이 보통은 사이좋게 이발이 끝이 나지만 어떤 때에는 손님과 싸우기도 한다. 아빠가 의견을 굽히지 않는 대화의 소재가 몇 가지 있는데 가장 심한 건 정치 이야기이다. 서로 자기 의견만 내세우다가 손님이 결국 화를 내고, 이발이 끝나기도 전에 모자나 돋보기안경 같은 것들을 챙겨서 휙 나가버린다. 그럴 때마다 오래된 가게 문은 안쪽 바깥쪽 사이를 여러 번 왔다 갔다가 하며 삐그덕거린다. 그런데 다음 달 같은 시기에 손님은 다시 온다. 그 모자, 혹은 돋보기안경을 쓰고 문을 열고 들어온다. 자신이 들어오기만 하면 아빠가 자연스럽게 옷을 받아줄 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처럼.     

이발이 다 끝나면 아빠는 이발비 만 원을 양손으로 허리를 숙여 받는다.


“가입시데이.”


 아빠의 인사가 이발소 안을 잠시 채운다.     





나는 이 광경을 글을 쓰기 전 자주 떠올린다. 어깨가 내려가 있고 살방살방 걸음. 허리 숙여 돈을 받는. 가입시데이. 그 공간은 자연스럽고 가짜가 없다.  세상에는 많은 방식의 글쓰기가 존재하고 대단한 작가들이 많지만 나는 그런 작가는 되지 못하리라는 걸 안다. 예전에 누군가가 술을 마시면서 내게 말했다.


 “작가님, 작가님도 OO 작가님처럼 앞으로 되셨으면 좋겠어요.”

 “아, 그 작가님은 너무 대단한 작가님이죠. 그런데 저는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고 전 생각하지 않아서요. 그래도 저 같은 글을 계속 쓰고 싶기는 해요.”     




내 첫 책 ‘무심한 듯 씩씩하게’에는 실패한 나의 기록들이 담겨있다. 휴대폰 가게를 하다가 망하고, 공무원이 되려고 시험을 쳤지만 3년 내내 떨어지고 아파트 분양 상담직으로 일했지만, 계약을 못 한 이야기. 어쨌거나 그것이 내가 쓸 수 있는 이야기다. 아마도 앞으로도 나는 대단한 이야기를 쓰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나만의 리그에서 쓸 수 있는 글을 쓸 것이다. 그게 내가 글을 쓰는 이유고 작가를 하는,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유다. 진정성이니 일의 본질이라는 단어를 많이 입에 올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것들을 마치 아는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싶지 않다. 실제로 잘 모르니까.


구태여 누군가의 말에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내 세계에서만 아닐 수도 있기에. 내 세계에서 나는 텐션만 다를 뿐 같은 리듬으로 강연을 하고 글을 쓴다. 이 모든 일이 나만의 이발소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아빠만 떠올리면 모든 일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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